▲요즘 보는 반딧불이는 늦반딧불이라고 합니다.김민수
"애들아, 아빠가 반딧불이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해 줄께."
아이들이 반딧불이를 놓아주고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 앉았습니다.
"반딧불이와 관련된 고사 중에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이 있단다. 옛날 가난한 선비들은 공부를 할 때 마땅한 등이 없어서 반딧불이 여러 마리를 호박꽃에 담거나 봉지에 넣어 그 빛을 이용해 공부를 했단다. 그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의 빛을 이용해서 공부를 했대.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끝없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고사성어란다. 너희들 이번 태풍 때문에 정전이 되니까 촛불을 켜놓았지? 촛불 켜놓고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반딧불이의 빛을 이용해서 공부를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막내가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한 마디 합니다.
"아빠, 아직 태풍에 날아가지 않은 호박꽃 있지? 그거 따다가 우리도 반딧불이 담아보자. 정말 보이나."
"용휘야, 그런데 반딧불이가 다치니까 불쌍하잖아. 옛날에는 무지무지 깨끗하니까 반딧불이가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없거든."
그래도 정말 반딧불이의 빛으로 글자가 보일까 의아해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반딧불이가 거실로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드디어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애들아 불 전부 다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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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서 그 위에 올려놓고 빛을 내기만을 기다립니다. 반딧불이가 빛을 반짝하고 내자 희미하게 글씨가 보입니다.
"와, 보인다. 정말 보여!"
그러나 반딧불이가 계속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반딧불이가 빛을 내기만을 바랍니다. 정말 여러 마리 있으면 그런 대로 책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개똥벌레라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큰딸이 피아노를 치고, 둘째는 리코더를 불고, 저는 기타를 쳤습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무덤이 내 집인걸'
노래를 부르는데 막내가 질문을 합니다.
"아빠, 반딧불이 노래하자더니 왜 개똥벌레야?"
"응, 반딧불이의 다른 이름이 개똥벌레거든. 개똥벌레가 반딧불이가 되는 거야."
"어? 개똥은 더러운 거 아니? 그런데 개똥에서 산다고?"
반딧불이 한 마리로도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마당에 모깃불을 놓고 멍석에 누워 별을 세며 별똥이 떨어지는 순간 소원을 빌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반딧불이가 반짝이며 까만 하늘의 별빛처럼 반짝이곤 했죠. 날아가던 반딧불이를 잡아 작은 고사리 손에 쥐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형광색의 반짝임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네온사인이나 화려한 불빛들이 많이 없던 시절이라 형광빛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신기했죠. 그리고 학교에서 더러운(?) 개똥벌레가 크면 예쁜 반딧불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으로부터 듣고 언젠가는 나도 아름다운 반딧불이처럼 까만 하늘을 반짝이며 날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여름이면 늘 곁에서 볼 수 있었던 친구같은 존재들이었는데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의 아이들도 보고 느끼며 자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텐데 그 길이 묘연하기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반딧불이를 마지막으로 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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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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