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보게 뇌 아우! 재미는 다 보았는가? 어서 나오시게."
"누구냣? 아, 자넨가? 자, 잠깐만 기다리게."
"당주님! 누가 이 깊은 밤에…?"
"하하! 방 당주인 모양이야. 너는 자지말고 기다려라. 알았지? 얼른 갔다 와서 한 번 더 품어줄게."
"어머! 또요? 호호! 밝히시긴… 그 나이에 정력도 좋으셔… 알았어요. 대신 얼른 갔다 오셔야 해요."
"핫핫! 요, 귀여운 것. 알았다. 알았어."
뇌흔은 기녀의 볼을 가볍게 꼬집고는 의복을 찾아 걸쳤다.
눈에 가시 같던 이회옥이 하옥된 이후 뇌흔은 매일 매일이 상쾌하였다. 평생의 숙적을 물리친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수하들을 데리고 기원을 찾아 몇날 며칠을 질펀하게 놀았다.
오늘도 그랬는데 모처럼 마음에 드는 기녀가 있어 그녀를 데리고 왔다. 평생 홀로 살며 생각날 때마다 계집들을 품어 왔지만 최근 들어 유난히도 잠자리가 허전하다 느껴왔던 터였다.
하여 아예 끼고 살 마음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오늘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으며 술을 한잔하였다. 그리고는 두 번이나 질펀한 운우지락을 나누고 이제 막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만일 이런 상황에 다른 사람이 왔다면 아마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방옥두라면 사정이 다르다.
친형제와 같은 사이이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 아니라 더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웃으면서 나갈 것이다.
잠시 후 밖으로 나선 뇌흔은 주위를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방옥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보게, 어디에 있는가? 어디 있어? 엉? 어서 나오게."
"…!"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뇌흔은 실소를 베어 불었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숨바꼭질이 생각났던 것이다.
"핫핫! 애들처럼 장난이라도 하자는 겐가? 좋네, 꽁꽁 숨어 있게. 하하! 일 각 안에 찾아내면 자네가 술을 사고, 못 찾으면 내가 술을 삼세. 핫핫! 이번엔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사는 것이네. 좋지? 하하!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군."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들면서 여기저기를 찾아보는 뇌흔의 입가에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가 어려 있었다.
숨바꼭질은 달이 없는 그믐이 제격이다. 그래야 어디에 숨든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보름이다.
게다가 구름 한 점 없기에 대낮처럼 환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사물은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웃는 것이다.
"하하! 어디에 숨었는가? 너무 꽁꽁 숨어서 못 찾으면 어쩌… 하하! 여기 있었군. 들켰으니 술은 자네가… 어엇! 이보게 그건 반칙일세. 좋아, 좋아! 그렇다고 못 찾을 줄 알고?"
뇌흔은 전각 기둥 뒤에 있던 방옥두가 마굿간 안으로 도주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마굿간은 입구가 출구인 곳이다.
따라서 입구에 서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굿간은 현재 비어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숨을 곳이 없기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것이다.
마굿간 안으로 들어선 뇌흔은 쌓아놓은 건초더미 뒤에 은신해 있던 인영을 발견하고는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한 자루 봉이 위에서 밑으로 섬전처럼 쇄도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두개골이 빠개질 판이다.
쇄에에에에엑―!
"아앗! 누구냐?"
퍼억―!
"으윽! 넌, 방 당주가 아니군. 누, 누구냐?"
뇌흔은 무인의 본능에 따라 엉겁결에 피한다고 피했지만 봉은 예상보다도 빨랐다. 하여 졸지에 어깨를 가격 당하자 노성을 터뜨렸지만 상대는 대꾸도 없이 봉만 휘두를 뿐이었다.
쓔아아아아아앙!
"허억! 이런 젠장! 네놈은 대체 누구냐니까?"
절정신법인 비룡신법을 구사한 덕에 간신히 피한 뇌흔은 노갈을 터뜨리며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러나 잡히는 것이 없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나오느라 무적검을 휴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는 사이 봉은 또 다시 쇄도하고 있었다. 당하지 않으려면 피하는 수밖에 없기에 허겁지겁 피했다. 그러면서도 반격할 기회를 노렸으나 좀처럼 그런 틈이 보이지 않았다.
상대의 봉이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너무도 날카롭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굿간은 날카로운 파공음과 뇌흔의 노갈로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이곳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소성주의 애마인 비룡이 사용하는 마굿간인데 현재 철기린이 출타중이기에 비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마당주의 처소 뒤에 마련된 이곳은 다른 전각들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에 웬만한 소리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쐐에에에에엑! 쓔아아아아앙!
"헉! 아앗!"
퍼억―!
"으으윽!"
비룡신법 덕분에 간발의 차이이기는 하지만 번번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할 수 있던 뇌흔은 수십여 초가 지나자 약간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 역시 백전노장이었던 것이다.
간신히 숨돌릴 틈은 찾은 뇌흔은 장법(掌法)으로 반격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바로 그 순간 갈비뼈가 부러져 나간 듯한 격한 통증을 느껴지자 다급성과 함께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후려치는 식이었던 지금까지와 달리 갑작스럽게 찌르는 초식으로 바뀌었기에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없어 당한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앗! 너, 너는…? 이회옥…? 네가 어떻게 여길…? 네놈은 하옥되어 있어야…? 허억! 왜, 왜 이래?"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이회옥을 본 뇌흔은 재빨리 물러서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병장기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마굿간에 병장기가 왜 있겠는가!
아쉬운 대로 병장기를 대용할 쇠스랑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입구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은 바닥에 깔린 두툼한 건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병장기가 될만한 것이 없는 곳이었다.
"이, 이보게 내가 자네를 고문한 것은 순전히… 허억!"
잔인했던 고문 때문에 자신을 찾은 것으로 오해한 뇌흔은 연신 물러서다가 다급성을 토했다. 등이 쌓아놓은 건초더미에 닿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이회옥의 음성이 있었다.
"내가 네놈이 고문한 것 때문에 찾아왔다고 생각하느냐?"
"미, 미안하네! 하지만 내가 안 그랬어도 형당에서…"
뇌흔은 무적검이 있다 하더라도 일대일로는 이회옥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섣부른 반격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대화로서 오해를 풀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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