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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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03.09.19 12:51수정 2003.09.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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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은 오래 전 태극목장을 공격한 바 있다. 맞아? 틀려?"

"어! 그, 그걸 네가 어떻게…?"


무림천자성이 대흥안령산맥에 있던 태극목장을 몰살시키고 일천이백여 마리에 달하는 대완구들을 끌고 온 것을 아는 사람은 불과 오십여 명뿐이다. 그 일을 지시했던 철기린과 철검당주인 방옥두, 그리고 자신과 정말 믿을만한 수하들뿐이다.

그 일이 혹시라도 외부에 알려지면 무림천자성의 명성에 금이 갈 것이기에 그것은 철저한 비밀이 되었다.

당시 철기린은 뇌흔과 방옥두에게 은자 50만냥을 상금으로 내렸다. 일인당 25만냥이나 준 것이다. 태극 목장을 다녀온 다른 제자들에겐 각기 2만냥씩의 은자가 지불되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정말 파격적인 포상이었기에 아무도 불평하는 자가 없었다. 이때 철기린이 말하길 향후 누구든 태극목장 건에 대하여 발설하는 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 하였다.

하여 지금껏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이회옥은 태극목장 몰살 사건 이후에 무림천자성에 몸담았기에 당연히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일순 당황한 것이다.

"이런 나쁜… 죽엇!"
쐐에에에에엑!


퍼억―!
"아아앗! 크으으윽!"

느닷없이 쇄도하는 봉을 피하려던 본능적으로 돌아 선 뇌흔은 등에서 느껴지는 작렬감에 비명을 토했다. 이 순간 이회옥의 봉은 그의 아혈(啞穴)을 제압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세게 치면 두개골이 빠개져 즉사하게 될 것이나 그렇게 하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태극목장 사람들의 원혼을 달랠 수 없어 일부러 혈도만 제압한 것이다.

"네놈은 세상을 살 가치도 없어. 죽엇!"
쇄에에에엑! 쓔아아아아앙!

퍽, 퍼억!
"윽! 으윽!"

이회옥이 봉을 휘두를 때마다 허공을 찢어발길 듯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고, 곧이어 뇌흔의 동체에 작렬하기 시작하였다.

아혈을 제압 당한 뇌흔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인의 수치라 할 수 있는 뇌려타곤까지 시전해 보았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이회옥의 봉은 눈이라도 달렸는지 휘둘러질 때마다 뇌흔의 신형을 정확히 타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경을 알기는 종이 울릴 무렵 마굿간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한 구가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오른 시신이었다. 수 없이 두들겨 맞았기에 시신은 시퍼런 빛을 띄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맞아죽은 모습이었다.

죽은 후에는 아무리 때려도 멍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 * *

"아닙니다! 정말 제가 안 그랬습니다. 속하가 왜 형제처럼 지내던 뇌 당주를 죽이겠습니까? 속하는 정말 억울합니다."

"뇌 당주의 시신 곁에 네 신패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너는 네 처소에 없었다. 그런데도 아니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그래? 좋아, 그렇다면 그 시간에 왜 아무도 없는 관제묘에 갔는지를 말해봐라."
"예? 그, 그게…"

방옥두는 제일호법의 말에 일순 대답을 못했다.

무영혈편 조경지는 아무리 털어도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라 소문난 사람이다. 어찌나 청렴결백한지 세상의 모든 사치를 부려도 누구하나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건만 그의 처소에는 침상과 탁자, 그리고 삐거덕거리는 의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명필의 글씨가 쓰인 족자도 없고, 아무런 그림도 없으며, 주련(柱聯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서 붙이는 글씨로 기둥(柱)에 시구를 연(聯)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주련은 경치 좋은 곳에 세운 누사(樓舍)나 여타의 다락집, 불교의 법당 등에도 건다. 주련에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소원하는 내용이나 덕담(德談)의 글귀 또는 아이들의 인격함양을 위한 좌우명이나, 수신(修身)하고 제가(齊家)하는데 참고가 되는 좋은 시를 걸기도 한다.)도 걸려있지 않다.

탁자 위의 문방사우를 보면 찢어지게 가난한 서생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벼루는 귀퉁이가 깨져 있었고, 붓은 털이 다 닳은 몽당 붓이었다. 그것은 먹도 마찬가지이다.

어찌나 작은지 먹을 갈고 나면 손에 먹물이 묻을 지경이다.

최근엔 매달 지급되는 봉록(俸祿)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의성장으로 보낸다고 한다. 그것으로 필요한 약재를 구입하거나 기타 의원에서 소모되는 것들을 사라는 것이다.

전에 산해관 무천장주가 막대한 은자를 횡령하여 직위해제가 되었을 때 혈면귀수가 대완구 한 마리와 수십만 냥에 달하는 은자를 보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무영혈편은 단 한푼도 쓰지 않고 모든 것을 총단에 귀속시켰다.

조경지는 누가 뇌물을 쓰면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그 인물이 합당한가를 냉정하게 따져 승차시킬만하면 승차시켰다. 승차가 되지 않더라도 받았던 은자를 되돌려주는 일은 없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뇌물을 바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며, 그런 은자는 없어도 되는 것이니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받은 뇌물을 공개하였고 즉각 총단 재정에 편입되었기에 뇌물을 주고도 승차하지 못한 자들은 돌려달라는 소리조차 못하고 돌아서야 하였다. 그나마 누가 뇌물을 바쳤는지를 공개하지 않아 망신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위안 삼았을 것이다.

이처럼 청렴결백하기에 부정한 방법으로 은자를 축적하다 걸리면 그야말로 추상같은 처벌을 내렸다. 이러한 것을 잘 알기에 방옥두가 대답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좋아, 말해봐라. 네가 왜 그 시간에, 아무도 없는 관제묘에 갔었는지를 말해보란 말이다."

"저어, 저어… 어휴! 아무튼 제가 안 죽였다니까요."

"이놈! 본좌가 한가해서 여기에 나온 줄 아느냐? 네놈이 하도 억울하다 한다기에 정말 억울한 사정이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 나왔거늘… 뭐? 아무튼 안 죽였으니 믿어 달라고?"

"예! 속하는 정말 억울합니다."

"이놈이 그래도…? 납득할만한 증거를 대란 말이다. 네가 안 죽였다는 증거를…"

"어휴! 정말… 미치겠네."

방옥두는 차마 부정한 방법으로 은자를 감춰둔 것을 어떤 놈이 알아 가지고 그것을 나누자는 쪽지를 받고 나갔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감춰둔 은자가 워낙 어마어마한 액수이기에 그것이 드러나면 이곳 규환동에 하옥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황산에 있는 팔열지옥갱으로 보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어휴, 정말이라니? 이놈, 뇌 당주의 시신의 옆에 네놈의 신패가 떨어져 있었다. 그 시간에 너는 네 처소에 없었고… 네 처가 말하길 그 시간에 네가 갈 곳이라면 철마당 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할 것이냐?"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속하는, 속하는… 흐흐흑! 흐흐흑!"

방옥두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울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경지의 찌푸려진 이맛살은 펴지지 않았다. 총단 내의 치안은 제일호법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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