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장사익안병기
삶은 어디에서건 늘 나를 격동시킨다. 그리고 가슴 속의 많은 감정과 관념들은 서로 충돌하고 넘어지고 부딪치면서 나를 하나의 물결로 만들어버린다.
내 마음 속 노래는 그렇게 태어나곤 했다. 어떤 노래는 그냥 거품으로 사라져버리고 어떤 노래는 더러 굳은 살처럼 벡여 나와 오래 오래 분리되지 않은 채 삶의 바다의 격랑을 함께 떠다니곤 했다.
아무리 고단한 삶이라 해도 부를 결코 노래마저 바닥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 감정을 자기 내심(內心)으로 더욱 깊숙히 끌어들여 노래를 빚어 말랑말랑한 기쁨의 노래와 까칠까칠하고 굳은 슬픔의 노래를 토해낸다. 말하자면 삶이 그대를 격동시키는 순간이 바로 노래가 태어나는 순간인 것이다.
어제밤 나는 북한산 자락에 있는 '가나아트' 노천극장 시멘트 바닥에 앉아 오랫만에 장사익의 노래를 들었다. 하늘에 별은 두어 개 쯤 박혀 있었고 흰 구름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맨 처음 노래는 정호승 시에 곡을 붙인 '허허바다'였다.
찾아 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 와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 있네
암만 그리여. 삶이란 본디 눈 먼 장님 아닌감. 어허, 어허. 길이 없다면 막막함으로라도 밀고 가야제.
내 마음은 그렇게 그의 노래에 의미없는 추임새을 붙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삶의 온갖 형태가 다 망가져도 맨 마지막 까지 남아있는 건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같은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 겨자씨 한 알에 의지해서 사람들은 삶이란 망망바다를 건넌다. 노래 한 곡 부르고 나면 장사익은 몇 마디 너스레를 떨고…. 그가 마음껏 내지르는 고음은 청중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그도 목이 쉬었는지 소리가 갈라져내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오늘은 지가 자꾸 오버하는구만유."라는 말을 연발했다. 청중들은 그가 더욱 오버하기를, 그래서 본전을 뽑고 남기를 바라며 우레같은 박수를 보냈다.
아마도 영어로 over라는 말의 뜻은 넘친다는 뜻이거나 궤도를 벗어난다는 뜻일 것이다. 逸脫(일탈). 그러나 '그 밥에 그 나물'인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무가치한 삶인가를 생각한다.
산다는 것은 풍경에 나를 섞는 일이다. 절벽을 안간힘으로 기어오르는 욕망의 풍경, 추락하는 슬픔의 풍경에 나를 혼합하는 일이다. 노래는 그 두 개의 풍경 사이를 통과하는 일종의 산들바람 같은 것일 것이다. 삶을 격동시키는 노래, 삶을 일으켜 세우는 장사익의 공연은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제 가슴을 도려내고 도려내도 도려낼 가슴이 남는 딱다구리 같은 여자 '동백 아가씨'로 끝이났다.
세월은 괴로움 속에 오래 머문다
세월은 희망을 잠시 붙든다
음악처럼,
어떤 기억이라도 썰물을 만든다
현악의 높은 음은 이곳에서 흐리다
맑은 말이 떠미는 저녁이 어둠의 입구에서 멈칫거릴 때
길은 너무 미세하고 빠르므로 혹은
길은 우연인 듯 삶을 뒤쫓아 가므로
희미한 소리에 귀기울이는 이에게
공기는 이미 팽팽한 불덩이로 바뀌고 있다
보아라, 괴로움은 노을을 삼키고 붉다
송재학 詩 <노래> 전문
가을이다.푸르게 울리던 나뭇잎의 노래가 그쳤다."세월은 희망을 잠시 붙든다/음악처럼,"이라고 시인은 중얼거린다. 나뭇잎들이 하나 둘 가지에서 미끌어진다. "세상엔 붙잡을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그러므로 놓치지 않으려고, 붙잡으려고 사는 데 모두들 안간힘을 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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