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행복이 나의 행복"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 이주휘, 주봉 부자

등록 2003.09.23 10:22수정 2003.09.2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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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우리 아들이 몸은 비록 장애일 망정 내 기분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보다 대견합니다. ”


묵묵히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이주봉(33)씨의 손길이 바쁘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 이주휘(64)씨가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러움이 얼굴을 스친다.

대전 오정동 대길오토바이센터. 며칠 후 있을 가게 오픈을 앞두고 부자는 기대감이 들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한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 그리고 주봉씨는 뇌막염으로 인해 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다. 하지만 오토바이 수리실력은 똑 소리가 날 만큼 뛰어나다.

“뇌막염으로 다리가 불편하고 말이 어눌합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너무 부드러워서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했죠. 4살 정도에 뇌막염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완전히 성장한 후에 수술을 하라고 했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아직 수술을 못했습니다.”

주봉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15년 동안 오토바이 기술을 배웠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뜯었다 고쳤다가를 반복하는 그를 보고 오토바이 센터에서 기술을 배우게 했다. 그리고 지난 98년 가게를 차렸다. 주휘씨는 “이 당시가 가장 행복했었다”라고 말했다.


“친구들한테도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몸 건강하지, 돈 벌지, 내내 마음의 걱정이던 아들도 자리를 잡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었다. 착한 심성을 가진 주봉씨는 친구들에게 수시로 돈을 꿔줬고 보증을 서줬다. 급기야는 한 달 전 가게 문을 닫아야만 했다.


“5년 동안 너한테 잘하는 사람 경계하고 보증서주지 말아라, 돈 꿔주지 말라고 해도 너무 착해서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받아줬어요. 늘 아들이 걱정스럽고 제 마음이 안 좋습니다.”

권윤영
한 달 만에 다시 굳은 결심을 하고 동네를 옮겨 가게 오픈을 준비 중인 이들 부자. 가족들 모두가 이제는 가게를 차려줘서는 안된다며 반대했지만 그의 마음을 그렇지 않았다. 아들의 홀로서기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된 도리로 아들의 어려움을 극복해주고 뒤에서 협조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주봉씨에게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주봉씨 역시 “아버지가 주신 마지막 기회인데 잘못을 할 수 있겠느냐”며 “열심히 노력해서 아빠에게 힘을 보여주겠다고,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제 아들이 인사도 잘 못하고 손님과 대화도 잘 못해서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든 일처리를 다 해주기로 했어요. 제가 이제 돈을 벌면 뭐하겠어요. 제가 돈 벌어서 사는 날보다 아들이 살아야 할 날이 많으니 돈을 떠나서 아들의 홀로서기를 도와야지요.”

군대에서 20년 동안 이발기술을 배워서 이발소를 하다가 13년 전부터 건축 일을 하고 있다는 이씨는 주봉씨를 위해 15일 동안 일손을 놓고 있다.

“여기서 앉아 있어야 하니까 힘든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경제적으로 가장 힘드네요. 인건비 10만원 버리고 여기서 버는 2~3만원의 수입을 보고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죠.”

다행히도 오픈 전부터 일거리가 들어오고 있다. 기술이 좋다고 손님들의 평가도 좋다. 이씨는 연신 아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랑이다.

“나도 어느 정도 오토바이에 대해 알아야 뒷받침 해주잖아요. 엊그제 사고 난 오토바이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견적 뽑은 것이 30여 가지가 넘더라고요. 주봉이도 ‘아버진 못 배워요’하는데 보통 머리 갖곤 안 되겠어요.”

그동안 주봉씨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항상 아팠다. 앞으로 가게를 잘 해나간다면 더 이상 걱정이 없을 것 같다는 이주휘씨는 좋은 여자가 나타나서 아들이 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예전에 오토바이 센터를 할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아들이 다시 행복을 찾아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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