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결정은 권력의 윤리적 파산될 것

[김민웅 칼럼] 찰라비 "이라크는 외국 군대 필요 없다" 발언

등록 2003.09.23 17:22수정 2003.09.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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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권은 그가 집권하기 이전에 비해, 결국 미국의 힘을 훨씬 약한 것으로 만들고 말 것"이라고 세계체제론자 임마뉴엘 월러스틴은 자신의 최근 저서 <미국의 힘, 그 쇠락(The Decline of American Power)>에서 일갈했다.

군사력에만 의존하는 것 이외의 정당성을 가진 수단을 잃어버린 제국이 되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이전의 위용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결정적 신호라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고스란히 전개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그러기에, 연일 제국의 군대가 희생당하고 있는 이라크 전선에 대한 우리의 전투병 파병 결정은, 쇠퇴해 가는 제국의 운명에 우리의 국가적 미래를 거는 어리석음에 다름이 아닌 것이 된다. 무고한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학살과 점령의 침략적 식민정책이 도달하는 역사적 사필귀정은 제국의 고립·몰락과 반식민지 해방투쟁의 승리인 것이다.

이라크 전선의 본질은 한 마디로 점령자와 피점령자 사이의 격돌이다. 이른바 대 테러 전의 연장이 아닌 것이다. 펜타곤의 군사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주둔 미군에 대한 저항은 이미 이라크 민중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점령세력의 조속한 철수와 이라크 민중들의 자주적 주권 회복에 있다. 이 두 가지를 향한 국제적 해법이 아닌 것은 이라크 민중들의 고통을 깊게하며 아메리카 제국의 야욕에 봉사하는 것이 될 뿐이다.

점령세력 조속 철수와 이라크 민중 주권 회복이 해결책

미국이 친미 이라크 정부 수립의 꼭두각시로 내세운 암하드 찰라비 마저도 이제는 미국이 이라크인들에 대한 주권 이양을 보다 빠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부시 정권으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전격 발언이었다. 부시 정권은 유엔에 도착하여 이러한 견해를 공표하고 있는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 당혹해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파월 국무장관은 이라크인들에 대한 주권 이양은 상황을 악화시켜나갈 뿐이라고 그 일정조차 논의하기를 거부했다. 이라크 민중들의 자주적 역량에 대한 제국의 철저한 기만적 능멸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손발이 되고 있는 친미 이라크 임시 정부 준비위원들이 이라크 민중들의 거듭되는 피격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찰라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어느새 '해방전쟁의 단계'로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전선의 현실 앞에서 미군정과 이들에 손아귀에 투항한 친미주의자들에 대한 이라크 민중들의 공격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외국군대까지 가세할 경우, 이들의 해방전쟁은 아랍권 전역에 불을 붙여 보다 거대한 전쟁의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찰라비는 바로 이 점을 주시하고 "이라크는 외국군대의 추가 주둔이 필요치 않다"고까지 공언함으로써 제3국들의 군사력을 유엔이라는 포장 아래 차출하려는 부시의 전략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래도, 결코 반길 수 없는 외국군대의 하나로 우리가 그곳에 나타나야 한단 말인가?

이라크 전선의 본질, 점령체제에 대한 이라크인의 해방투쟁

미국은 이라크 민중들에게 자주적 국가 성립의 역량이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도리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나라를 일구어갈 수 있는 자질과 힘이 없다고 악선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점령체제를 정당화하는 식민주의적 논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선제공격전략을 앞세운 미국의 일방주의가 정작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유엔의 협력을 내세워 자신들의 희생을 줄이고 부담을 전가하려는 미국의 위신에 일격을 가했다.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침략전쟁을 벌여놓고 여전히 주도권을 그대로 쥔 채 유엔의 이름만 이용하겠다는 미국에 대한 인류적 지탄의 대변이었다.

피 점령지의 문제는 점령상태의 해체가 아니고서는 평화의 가능성을 그 첫걸음에서부터 실현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그 평화의 근본을 가로막고 있는 이 모든 사태의 원인 제공자이다. 이 진실을 덮고 진행되는 일체의 파병 논의는 모두 거짓과 음모의 연속이 된다.

부시의 미국은 일방주의를 전략화한 전쟁국가로 변모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 일방주의가 제국의 지위를 흔들고 쇠락의 요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내부의 비판은 날로 거세어지고 있고, 한때 전면에 나서서 기세등등하게 전쟁을 지휘하던 자들은 꼬리를 감추고 있다.

미 언론들은 '빠른 승리, 피비린내 나는 평화(Quick Victory, Bloody Peace)'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이라크 정정을 보도하고 있다. 유혈의 늪 속에 빠지고 있는 미국의 악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몽의 짐을 미국은 지금 우리에게 지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피비린내 나는 평화', 그 비극에 가담하려는가?

동맹, 다국적군 지휘를 비롯하여 기타 경제적 이익 등 온갖 논리와 명분, 계산, 유혹으로 가려진 엄연한 진실은 우리의 젊은 생명이 아메리카 제국의 점령정책이 가져온 비극의 자리에 끌려가 죽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 더하여 자신의 나라를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이라크 민중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을 우리가 하게 된다는 현실이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인류적 범죄행위이다.

노무현 정권은 그 출발에 앞서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점령당한 민족이 자유와 해방을 위해 저항하고 있는 역사 앞에서 원칙과 상식은 무엇인가? 점령자의 수하부대로 그곳에 진군하여 이들의 한을 깊게 하는 것인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지 않는가?

생명과 평화의 문제는 전략과 계산의 차원을 넘는 존엄한 인류적 요구이다. 이 요구에 반하는 일체의 선택과 정책은 그를 수행하는 권력의 윤리적 파산과 역사적 응징을 반드시 결과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의 명령에 따른 이들의 무고한 희생을 낳는다. 그 희생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가?

이라크 침략전쟁의 연장과 정복자들의 야욕에 우리들의 젊은 생명이 개죽음 당하듯 헌납될 수 없다. 민족의 미래를 감당해야 할 세대의 목숨을 온갖 기만적 포장을 씌워 강대국의 요구에 바치는 권력이 되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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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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