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가을대운동회’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잊지 못할 추억 아직 그곳에 남아 있을까?

등록 2003.09.24 07:55수정 2003.09.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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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 원당 성라초등학교에서
부채춤. 원당 성라초등학교에서김규환
대운동회 전야 준비물 만드느라 바쁘고 비 오지 않기 만을 간절히 기원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던 길에 5~6학년 언니들 대여섯 명과 운동장 트랙을 그리시는 선생님은 바쁘다. 내일 비가 올지 모르지만 소사 아저씨는 만국기를 국기봉에서 시작하여 은행나무·느티나무·벚나무·삼나무·회전그네·그네에 열댓 갈래로 치렁치렁 매다느라 오후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4학년이던 나는 점방에 잠시 들러 노끈 한 뭉치를 사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해마다 운동회 전날이면 덧버선은 어머니나 누나가 만들어 주셨다. 형과 나는 각자 필요한 오자미 5개씩에 수술을 풀풀 날리는 응원도구를 두개 씩 만들어야 한다.

“거시기 아부지 낼 비 안 온다요?”
“아까 라디오 들어보니께 화창허다더만. 글도 몰러. 운동회 때마다 비 오는 것 못 봤는가?”
“내일 또 비 오면 금년에는 안 하고 넘어갈 모양인디….”
“나락(벼)도 늦벼는 비 오면 다 쓰러져불 것인디 이제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겄네.”

“아부지 아까침까장은 비 안 온다고 했제라우?”
“아믄. 글도 낼 아침에 봐야제. 백아산은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께.”

‘비야 절대 오지마라.’ 속으로 빌고 잠을 잤다.

만국기 펄럭이는 가을 하늘 공활한 날, 성라초등학교에서
만국기 펄럭이는 가을 하늘 공활한 날, 성라초등학교에서김규환
구름도 백아산 너머로 학처럼 날던 아침


일어나 보니 송단목장부터 안개가 걷혀 마당바위(756m 빨치산 활동의 주무대)를 둥둥 치고 백아산(810m) 상봉으로 가벼이 올라간다. 마치 나는 학(鶴) 같다. 날씨가 좋아 밤새 고즈넉이 ‘북면동국민학교’ 어린이들을 지켜주던 흰 구름도 날고 싶은가 보다. 시야도 탁 트여 기분이 상쾌하다. 그야말로 공활(空豁)한 가을 날씨였다.

나는 청군이다. 비닐 응원 머리띠를 방향을 돌려 푸른색이 밖으로 나오도록 둘러매고 집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엄마 후딱 가잔께요.”
“점심은 싸야 될 거 아니냐. 쇠죽 양껏 퍼주고 가거라.”
“예. 글면 먼저 가 있으끄라우?”
“니 성이랑 같이 가고 있그라.”
“오빠 같이가….
“연순이는 엄니가 데꼬 올라구라우?”
“오냐.”

취학 전 동생은 혼자 기다리려면 힘들다. 그날은 어린이 날보다 우리에겐 더 즐거운 날이니 아이들 세상이다.

“아참, 엄마.”
“왜? 서둘러 가지 않고?”
“거시기…. 점심 때 사야 될 것도 있는디요. 100원만 주싯쇼.”

엄마 치마 춤에 넣어 꼬깃꼬깃, 너덜너덜해진 100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받아 들고 돌길을 전속력을 내서 달려갔다. 평소 기다려주던 아이들도 잠시 돌아보지 않고 학교로 간다. 멀리 건넌 마을 강례 쪽에서도 아이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신작로를 돌아 네 가구 밖에 안 사는 학교 마을 안 길을 돌자 행진곡이 들려온다. 백아산 쪽에서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소리다.

벌써 아이들은 점방 앞에서 ‘쫀드기’를 사서 씹으며 달콤한 물을 쭉쭉 빨고 있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아이도 있다. 교문 앞엔 뻥튀기 아저씨가 '펑펑' 소리를 내며 달콤한 유혹을 하고 있었다.

쌀 한 숟가락에 밀가루처럼 잘게 빻은 사카린 조금을 넣고 “피식-.” 방귀소리를 내며 널찍한 스펀지 과자를 “펑펑” 쏟아낸다. 10원 드리면 10개 씩 준다. 입에 들어가자 씹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허망한 뻥튀기. 하지만 살살 녹는 그 맛에 10원어치를 더 먹었다.

부잣집 아이들은 환타나 사이다를 병 째 침을 발라가며 마시고 있다.

고학년들은 학교로 가서 운동회를 준비한다. 6학년 범병선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니 5, 6학년은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울긋불긋 가장 좋은 한복을 차려 입은 아주머니들이 양 손에 점심 꾸러미를 들고 몰려온다. 아저씨들은 점방에서 아침부터 막걸리 한 잔씩을 돌려가며 취기에 부끄러움을 달랜다.

박통터트리기
박통터트리기김규환
기부자마다 이름이 내걸리고 국민의례 통과

운동회 때만 걸리는 대형 천막에는 ‘金○○ 1,000원’, ‘吳○○ 5,000원’식으로 기부자와 기부금액이 적혀있다. 흰 종이에 세로로 글씨를 새긴 천막은 굴비처럼 걸려 하늘하늘 나풀거리며 춤추고 있다.

행진곡도 멈추고 널찍널찍하게 운동장에 늘어선 230여 아이들.

“애~ 지금부터 ‘북면동국민학교’ 가을대운동회를 시작하겠음(습)니다.”
“짝짝짝짝” 곳곳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국민의례가 있겠음(습)니다. 내빈 여러분과 학생 여러분은 단상 뒤쪽에 마련된 국기를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여러분 오늘 날씨 참 좋지요? (예!) 교장선생님도 어젯밤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 어린이 여러분은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맘껏 뛰어 놀기 바랍니다. 학부형 여러분께서도 자녀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어 육성회장 말씀이 이어졌다. 이런 행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밤새 만들었던 오자미
밤새 만들었던 오자미김규환
오전 경기는 주로 달리기 그리고 기차박수

가을대운동회, 얼마나 기다렸던가. 비가 두 번이나 와 연기를 거듭해서 오늘 치러지는 것이다.

맨 먼저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6학년, 1학년, 5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순서로 100m 달리기를 한다. 아주머니들은 “야, 병석아 얼른 달려.” “우리 아들 잘 한다.” 손에 손에 자신의 등수를 스탬프 도장으로 받고 자리에 줄지어 앉는다. 3등 밖에 못한 나는 잔뜩 풀이 죽어 있다.

이어 청군백군 릴레이가 이어졌다. 양쪽으로 나뉘어 바통을 주고 받는다. 양쪽에 학년 별로 대표 2명 씩 앉아서 대기하고 있다.

은행나무 밑 응원단에선 청백기가 휘날리고 기차 박수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 시킨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일제히 박수를 친다. 왼발과 왼손, 오른발과 오른손을 동시에 번갈아 움직이면 손바닥을 친다. 마치 기관차가 출발하여 점차 평지를 달리고 고개를 기어올라 다시 속력을 내서 올랐다가 도착하여 기적소리를 울리는 것 같다.

“기차 박수 시~작!”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짝짝짝짝짝짝!” “우와~ 워~”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짝짝짝짝짝짝!” “우와~ 워~”
“짝! 짝! 짝! 짝! 짝짝! “워~”
차차 속도를 높이면 마치 난타를 하는 듯하다. 저학년은 마구 때려 댄다.

“탕!” 소리와 함께 청군, 백군이 코너를 돌아 다음 선수가 기다리고 있는 곳 까지는 거의 같이 도착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작은 학교 운동장이 떠나갈 듯 하다.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돌아 마지막 바통 터치를 하는 순간 백군이 그만 바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근 보름 동안 그 순간을 연습했건만 왜 그 순간에 그 실수를 저질렀는지 모른다. 백군 응원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이 순간 안타까운 심정에 한 아이들을 남겨두고 선생님 두 분이 끼어들어 릴레이가 연장전에 돌입하였다. 아이들의 함성과 깃발은 펄럭이는 만국기와 함께 힘차게 휘저어졌다. 결국 우리 청군이 이겨 점수는 150대 80으로 벌어졌다.

운동회에 가장행렬이 들어선 것은 1980년대 중반
운동회에 가장행렬이 들어선 것은 1980년대 중반김규환
박통 터트리기와 국민투표 그리고 점심시간

(다음은 박통 터트리기를 시작하겠음(습)니다.)

두 명씩 상대 박통이 걸린 대나무를 잡고 있다. “휘리릭~”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상대편으로 가서 흩어 뿌려 놓았던 오자미를 힘껏 던진다. 하늘로 수없이 올라가는 까맣고 붉은 주머니. 더러 생콩이 흐르고 모래가 터져 나와 주르륵 샌다. 이 때 반칙을 하는 아이도 있다. 주머니에 몰래 자그마한 돌멩이를 숨겨가 던지기도 한다. 얼마나 단단히 묶었는지 잘 터지지 않았다.

“펑”소리가 나더니 “다음은 점심시간입니다”는 문구가 쫙 펼쳐졌다. 먼저 백군이 터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 22 국민투표에 참여하자”(1980년)고 큼지막하게 붓글씨로 쓴 선전물이 흘러나왔다.

바로 점심시간으로 이어졌다. 삼삼오오 줄을 지어 가족을 만나러 가느라 뛰는 아이들이 많다. ‘뭘 싸오셨을까?’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은 싸오셨을까?’ ‘또 창피하게 신김치 싸오셨으면 어쩌지?“ 다들 이런 생각을 하며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운동장, 관사 부근 뒤뜰로 간다.

옥수수, 고구마, 찐 밤, 삶은 달걀이 나오고 찬합(饌盒)에서는 나물과 화전(花煎), 달걀 찜과 생김치가 나온다. 고추에 멸치볶음도 있다. 밥은 그래도 오늘은 잔칫날이라 동부 콩을 넣어 지은 불그스름한 잡곡밥이다.

학생들은 얼른 먹어치우고 뒤뜰 우물가에 가서 물 한 바가지 씩 받아 마시고 교문 밖 점방으로 직행을 한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 음악 소리가 멎자 과자 봉지와 사탕을 물고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는 학생들.

학생이 많지 않아 어쩔 때는 5~6학년이 3~4학년 놀이에 불려가는 일도 있었다. 4학년 중 키가 큰 아이는 5~6학년이 되기도 했다. 이미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었다.

기다려졌던 점심시간. 피자도 나오고 치킨도 가져오는 오늘날
기다려졌던 점심시간. 피자도 나오고 치킨도 가져오는 오늘날김규환
또 다시 이어지는 신나는 응원전

'응원전'이 다시 펼쳐졌다. 오전에 여러 차례 해봤던 터라 웬만한 건 익숙해졌다. 고깔과 캐스터네츠, 탬버린을 흔들고 부드러운 빨강, 파랑, 노랑 노끈을 잘게 쪼개 수많은 술을 달아 만든 도구를 양손에 쥐고 흔든다. 어떤 아이는 아프리카 원주민 흉내를 내 윗옷을 벗어 던지고 허리춤에 빙 둘러 치렁치렁 늘어뜨렸다.

단장이 “삼삼칠 박수 시~작!” 하며 주먹을 반쯤 벌린 채 사선을 긋듯 흔들면 그 동작에 따라 박수가 3·3·7로 터져 나온다.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허리를 구부렸다. 훅 손을 치켜 올리면 “우와~” 하는 함성이 울린다.

노래도 끊이질 않는다.


이 세상에 청군 없으면 무슨 재미로
이리 봐도 백군! 저리 봐도 백군! 백군이 최고야~
아니야! 아니야! 청군이 최고야~ (아니야! 아니야! 백군이 최고야.)


트랙그리기는 변화가 없더군요.
트랙그리기는 변화가 없더군요.김규환
소고놀이와 남학생들의 기개를 볼 수 있는 차전놀이, 덤블링, 기마전

목이 갈라지 듯 소리를 지르고 바로 '소고놀이'부터 오후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태평소가 앞장서고 꽹과리가 나서 무리를 이끌고 징, 장고 등이 따르고 소고를 든 다수의 무리가 대열을 이룬다. 머리엔 빨강, 노랑, 하양 고깔을 쓰고 어깨띠가 걸려 있다.

다음으로 남학생들의 '차전놀이'와 '덤블링'이 이어졌다. 차전놀이 때는 여학생들 중심으로 응원전이 펼쳐진다. 차전놀이는 대적을 하다 상대편 나무차 머리에 우군 대가리를 올려 알력으로 눌러 바닥에 닿게 하는 전승놀이다.

덤블링 첫째 방식은 덧버선을 신고 무릎을 꿇어 있는 사람 위에 차례차례 오르는 방식이다. 아래층엔 7명, 5명, 3명, 2명, 1명으로 한 층 올라갈 때마다 한 명씩 줄여 나가다가 마지막엔 가장 날렵하고 가벼운 아이 한 명이 있다. 양 어깨와 어깨 사이에 무릎을 꿇는다. 맨 꼭대기에 엎드린 아이가 다 올라가 균형을 잡으면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팔을 쭉 뻗어 허물어뜨린다. 2, 3층을 쌓다가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또 한 가지는 둥글게 원을 그려 어깨동무를 하고 앉아 있으면 그 위로 어깨를 밟고 올라가 밑둥이 서면 위가 선다. 그 다음 3층부터는 아래에서 큰 나무를 기어오르듯 두 층을 기어올라 균형을 잡고 4층엔 세 명, 5층 마지막엔 단 한 명이 올라 두 발을 쭉 펴서 아무렇지 않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자세를 취한다.

(이 때 곳곳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후 곧바로 격전이 펼쳐진다. 다름 아닌 기마전이다. 기마전은 듬직한 말대가리를 한 명 세우고 양쪽에 한 명씩 나란히 서서 한 손은 앞 사람 어깨를 잡고 한 손은 기수 발을 받칠 몫으로 두 사람끼리 손을 맞잡는다. 기수는 말 허리인 두 사람의 팔에 걸터앉듯 서서 상대를 응시한다.

이런 말이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4~50쌍이 만들어 진다. 좌로 돌고 우로 돌고 직진하였다가 서서히 뒤로 물러서서 적을 탐색하다 약한 말을 먼저 무너뜨리고 강자를 나중에 무너뜨려 상대편이 한 마리도 남지 않을 때까지 육박전을 벌인다.

머리가 쥐어 뜯기고 얼굴이 할퀴어 손톱자국이 난 일이 다반사다. 간혹 뒤로 뒤집어져 허리가 아프다는 아이도 있었으니 대 혈투였던 짜릿한 전투다. 이제 남학생들 내용은 거의 끝나간 듯하다.

이 좋은 가을날 대운동회를 다시 하고 싶다.
이 좋은 가을날 대운동회를 다시 하고 싶다.김규환
저 선녀들은 어디서 내려온 건가? 강강술래에 넋을 빼고

뭐니뭐니해도 가을대운동회의 절정은 부채춤과 강강술래다.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강강술래다. 나비가 훨훨 나는지, 선녀가 천상에서 내려온 건지 응원은 뒷전이고 쳐다보는데 급급하다. 그 때부터 나는 화려함에 물들었을까? 아니면 한복과 전통놀이, 전통기구에 빠진 걸까?

운동회 한 번 하려고 색동옷 차려 입은 시골 학생들 얼굴엔 벌써 웃음꽃이 피었다. 연지 곤지 찍고 쪽진 머리를 벌써 해보니 마냥 싱글벙글 신기하기만 한가 보다. 남자 아이들은 머리 뒷꽁무니를 잡아채기도 한다.

한복은 집이나 같은 마을에 중학교 간 언니가 있으면 아무 탈이 없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엄마 것은 막론하고 희뿌연 할머니 치마저고리라도 보자기에 싸와서 입어야 한다. 그런 아이들 눈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가득하여 그늘이 져 있다.

나비가 꽃을 찾듯 모두 손을 잡고 “강 강 수-월~래 가앙가앙수-월~래” 노랫가락에 맞춰 둥글고 가장 큰 원을 그려 살포시 뒤꿈치를 들어 옮기고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며 팔을 나긋나긋 나풀거린다.

빠르고 거칠어져 앞에서 메기고 받고 뒤에서 받고 자진모리로 시작하여 왼발부터 한 발짝 옮겨 천천히 돈다. 안팎으로 걷고 진양조로 조금 느려지며 중중모리로 빨라진다. 이 때부터는 손을 놓치면 전체가 흐트러진다.

다시 자진모리로 빨라져 덩실덩실 뛰니 더 힘차다. 이어 남생이랑 촐래촐래 몽그작거리며 놀고, 다함께 ‘개고리 타령’을 부르니 요란하다. 앉아서 놀다가 고사리 대사리 꺾는다. 고사리 꺾기는 앉았다가 이끄는 사람이 훌쩍 뛰어 뒷사람 손을 넘고 차례차례 일어나 자신의 뒷사람을 넘는다.

청어 엮고, 비 오거나 볕 나면 덕석 몰고 풀며, 한 줄로 엎드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앞 사람 왼쪽 허리에 바짝 붙이고 앞 사람의 허리를 잡는다. 그 위로 한 사람이 밟고 지나는데 이 때 양 옆에서 손을 잡아 주어 기와 밟기를 한다.

휘몰아쳐 따비질(논밭갈이)과 손치기하고 바늘귀 꿰 놓고, 대문열기 끝나면 자연스레 두 편이 되는데 맨 앞 사람이 다른 편 줄의 맨 뒤꼬리를 잡으면 이기게 된다. 진 편 사람들이 이긴 편을 업어 주면서 "잡았네 잡았네 문(쥔)쥐새끼를 잡았네 콩하나 퐅(팥)팥하나 띵했더니 오곡백곡(과)가 절시구" 노래한다. '진강강술래'로 넘어와 막을 내린다.


앉아서 살포시 절하니 누가 박수 안 치고 가만히 있겠는가? 선녀들이 한바탕 놀고 간 뒤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때론 작은 동그라미가 어질어질하게 여러 개 비~잉~빙 돌고 작은 동그라미가 합쳐져 서너 개로 바뀌기도 하고 작은 원을 큰 원이 감싸기도 한다. 원을 풀 때는 두 줄 또는 한 줄로 길게 늘어서 풀쩍풀쩍 앞꿈치 만으로 툭툭 튀어간다.

얼마나 빠른지 앞 사람 손을 잡고 따라가지 못 하기도 하고 덧버선이 벗겨지는 수도 있다. 치맛자락이 뒷사람 발에 밟히는 수도 있는데 그게 대수인가? 구경하는 이도 흥겨움과 어깨춤이 절로 난다.

10분 가량 뛰었으니 여학생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100명의 여학생들은 한 덩어리 움직였다. 젖 뗀지 얼마 안 되었으니 연습을 보름 넘게 했어도 가락 하나하나에 율동을 접목하여 연결시키기가 보통이 아니었을 테지만 낙오자 없이 다 해냈다.

마냥 즐거운 어린이들
마냥 즐거운 어린이들김규환
상품 하나씩 받고 바가지 하나 들고 각자 집으로

왕복 4km 단축마라톤을 끝으로 공식 행사가 끝을 맺었다. 끝나고 나서는 등수에 따라 ‘賞’자에 월계수 잎이 그려진 공책을 받고 연필과 지우개, 국어사전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누구도 받지 않은 학생이 없이 골고루 돌아갔다.

어른들도 하다못해 바가지 하나에 양재기, 백철 솥을 들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동네잔치에서 객을 빈손으로 보내는 건 우리네 인심이 아니다. 어른들은 가는 길에 장구를 치며 마을로 돌아가셨다. 오늘 얼마나 긴 밤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아이들은 목이 쉴 대로 쉬었고 모는 행사를 마치고 돌아갈 즈음 싸늘한 기운과 하루 내내 탔던 거친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오늘은 청군 1250 : 백군 1100으로 우리가 이겼다. 백군에 속했던 아이들이 우리가 기마전에서 반칙을 하는 바람에 졌다고 우겼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너무 기분 좋은 하루가 이내 저물어 갔다.

성라초등학교는 백군이 이겼습니다.
성라초등학교는 백군이 이겼습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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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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