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속 북한이주민, 그들을 알고 싶다

<우리가 남이가 1> 폐쇄성이 강한 대구에서 살아가기

등록 2003.09.24 12:50수정 2003.09.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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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용사, 탈북자, 북한이주민, 그리고 최근에는 자발적 이주민, 정치적 망명자까지. 어린 시절 ‘귀순용사‘라며 탈북자를 보도했던 언론의 호들갑스러움은 사라졌지만, 북한주민의 탈북 행위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고, 중국 등에서는 또 다른 국제문제로까지 야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한국사회 유입도 증가하고 있고, 2002년부터 지역사회로 편입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또 하나의 조국 한국 땅을 밟은 북한이주민들이지만 이 속에서 정착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남이가> 시리즈는 대구 속 북한 이주민의 삶을 그대로 조명한다. 편협한 정보, 삶의 방식ㆍ문화ㆍ정서적 차이로 인해 쌍방이 공존할 수 없는 현실 자체를 담론이 아닌 생활모습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가장 폐쇄적인 도시 대구에서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우리가 남이가>시리즈가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자 주


“하나원 교육을 이수하고 대구로 온 이후 두 달 내내 집에만 있었던 이주민도 있었습니다“
“북한이주민들 중 엘리트 층에서는 남한에 내려온 후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곤 합니다. 하지만 그 자격증이 별 효용성이 없을 때 이들은 힘들어하죠“
“제3국에서 한국으로 온 아동들을 위해 방문미술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문제 등으로 인해 꽤나 불안해하거든요“
“북한이주민을 대상으로 준비된 프로그램에 연락없이 빠지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지속적인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들은 초기에 다소 무료해하고, 타인을 사귀는데 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요, 그리고 직업에 대한 애착이 매우 많습니다“
낯선 이방인 북한 이주민들은 대구에 와서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북한이주민, 우리에겐 낯선 이방인

취재과정 중에 들었던 또 다른 이야기. “이주민들은 시내에 나갈 때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겉모습은 대구시민들과 비슷하지만 독특한 억양으로 인해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그들은 사진찍기도 싫어합니다. 사진에 찍혀 얼굴이 알려지게 되면, 자신을 바라보던 눈길이 예년과 많이 달라진다고 해요.“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90년대 초. 경상도 사람이 서울에 가더라도, 왠지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입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사투리 등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에게 주목당하기 때문이다.


북한이주민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이주민지원센터 도홍희 팀장과 한국복지재단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송문주씨가 털어놓은 많은 사연들이다.

이 중에는 이웃의 노력으로 극복가능 한 것도 있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부분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웃의 노력‘이라는 측면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법제도적 장치마련은 너무나 먼 미래의 이야기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라고 평가받는 대구시민들은 북한이주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경향신문> 8월 22일 장도리
<경향신문> 8월 22일 장도리
대구시민, “북한이주민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북측 응원단으로 대구가 들떠있었던 지난 8월 22일. <경향신문> 4단 컷 만화 <장도리>는 북에서 온 응원단과 북한이주민(탈북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이중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사실 부산 아시안게임이나, 대구 U대회에서 많은 언론들이 주목한 것은 북측응원단이기도 했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빠지지 않는 인터뷰 대상자가 있었다. 바로 북한이주민. “‘북한이주민‘들이 경기장에서 북측 선수들을 응원할 것인가?, 응원단을 꾸려 공개적으로 응원을 할 것인가“하는 점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 언론의 인터뷰는 집요했을 것이고 당사자들은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북한이주민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관심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참석율은 그리 높지 않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 도 팀장은 “아직까지는 남북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데 다소 어색해하는 것 같다“며 “'남북통합가족봉사단‘ 즉, 남한가족들만을 대상으로 한 봉사자 모집에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남북가족이 함께 모이는 모임‘에 대해서는 남한측 가족들의 관심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고 말했다.

한국복지재단 종합사회복지관 송 복지사도 이런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남북 어린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즉 놀이동산, 캠프, 민속문화체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가을에는 캠프나 야유회 등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북 가족이 함께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한다.

북한이주민은 애써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고, 시민들은 그들과 함께 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2003년 현재 대구 거주 북한이주민과 대구시민들의 공존방식이다.

북한이주민, 가장 힘든 점은 교육ㆍ취업문제

북한이주민 사회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교육과 취업문제다. 대구거주 북한이주민 중 10대 중후반 층 즉 우리와 비교한다면 고등학생 정도 나이대의 청년층이 6명이 된다. 그들은 북에서 인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 과정은 이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현재 중등, 고등과정 검정고시에 매달리고 있지만, 꽤나 힘들어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자본주의식 학교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북한이주민 청소년 중 몇 명은 그들을 위한 대안학교 ‘하늘꿈학교‘(천안소재)로 전학간 학생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제도상에서 오는 문제. 대경인도주의실현의사협의회(이하 대경인의협) 임부돌 사무국장이 털어놓는 ‘한 의사의 딱한 사연‘. K모씨(36)는 북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지역사회 활동과 더불어 외과 근무 2년 차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와서 다시 의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 거주 북한이주민 실태

대구시 거주 북한이주민은 2003년 7월까지 총 120명이다. 2001년 이전까지는 24명정도였지만, 2002년 48명, 2003년 7월 5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역별로는 동구 8, 중구 1, 서구 4, 북구 28, 수성구 20, 달서구, 58, 달성군에 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의 취업은 무직 49, 정규직 5, 임시직 13, 자영업 2, 학생 19, 직업훈련 1, 기타 18명이다.

가족구성은 부모자녀가족이 21세대, 편부, 편모 가족이 8세대, 단독가족이 46세대에 동거가족이 7세대다,

부모자녀가족과 동거가족 총 28세대 중 그들의 결혼형태를 분류해보면 원가족이 5세대, 북북결합이 15세대, 북남 결합이 8세대에 해당한다. / 허미옥
북의 면허증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험생이 되어야 했던 것. 그러나 북한이주민에 대한 학비지원은 35세까지 만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K씨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북한이주민들의 취업도 그리 쉬운 편이 아니다. 그들은 대구에 정착하면서 가장 먼저 취업자리를 원한다고 하지만, 남북민 상호 정서차이로 인해 함께 어우러져 일하기는 아직까지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구시 거주 북한이주민 120명 중(2003년 7월 현재), 무직은 49명, 정규직 5명, 임시직 13명, 자영업 2명, 직업훈련 14명 이외에는 학생 등에 속하는 편이다. 정규직, 임시직, 자영업을 합쳐서 보더라도 취업률은 17%정도다.

올들어 7월까지 국내로 들어오는 북한이주민 수가 꾸준히 늘어나 전년 같은 기간 630명에 비해 12% 증가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이 지역사회로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라면, 북한이주민들의 교육, 취업문제는 조만간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방법 - 차이를 인정

2002년부터 대구지역 거주 북한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다. 올 6월에 개소한 북한이주민지원센터, 올초 부터 사업을 시작한 한국복지재단 종합사회복지관, 그리고 2001년에 결성된 천주교대구대교구 민족화해 후원회 그리고 각종 종교단체에서 진행하는 행사 등.

북한이주민과 관련된 행사들이 예년에 비해 많이 공개되고 있음에 반해 대구사회내에서 이들의 삶, 가장 힘든 고민, 대구시민이 되기 위해 쌍방이 노력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다.

북한이주민 대상 전문 자원활동가 교육 자료집에 의하면 사회적응단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심리적 적응기(1-2개월) → 직업훈련 및 진로모색기(3-12개월) → 사회정착기 단계에서 현재 대구지역 북한이주민은 2단계(직업훈련 및 진로모색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대구정착 북한 이주민이 급증하기 시작한지 거의 1년, 그리고 북한이주민 관련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올해 즉 2003년이다. 이들의 정착과정, 관계를 규정하고 진행사업을 평가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은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방인으로 이 사회 한켠에서 쓸쓸하게 보내야 할 그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이웃으로 어울릴 수 있는 그 날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는 발전의 과정으로 봐야 하지, 질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경향신문> 한 기자가 취재후담으로 인터넷에 공개한 ‘꽃제비‘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노래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이제 보니 나 홀로 남았다 /락엽따라 떨어진 이 한 목숨 /가시밭을 헤치며 걸었다 /열여섯살 꽃나이에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인가요 /누구의 잘못인가요 /배고플 땐 주먹을 깨물었다 /목마를 땐 눈물을 삼켰다 /의리로서 맺어진 우리의 정 /가시밭을 헤치며 걸었다 /열여섯살 꽃나이에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인가요 /누구의 잘못인가요."

“호기심만으로 북한 이주민을 대해서는 안될 것"
[인터뷰] 북한이주민지원센터 도홍희 팀장

▲ 도홍희 팀장
-북한이주민센터 개소 이후 진행된 프로그램은?
"북한이주민센터 사업방식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 지역사회에 초기 진입하는 이주민을 위해 주1회 8주 정도로 ‘정착가이드 프로그램‘, ▲ 지역주민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 남북통합 토론모임 하나되는 교실, 남북통합가족봉사단 ▲ 북한이주민 대상 전문 자원봉사자 교육 등을 진행했다."

-북한이주민 사업 초기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점은?
"북한이주민 사업을 담당하는 민간단체는 두 곳이다. 북구와 동구 거주자를 중심으로 한국복지재단 종합사회복지관이 달서구, 서구, 중구 등 나머지 지역 이 주민들은 북한이주민지원센터가 담당하고 있다. 북한이주민 관련 사업 초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정착 가이드 프로그램을 동일한 내용으로 표준화하는 것이다.

사업 주체가 여러 곳이 되면, 해당 지역 이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서비스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에 초기 진입하는 이주민들을 위해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가이드 책자를 공동제작, 배포하고 이를 교재로 교육하는 것 등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주민을 대할 때 ‘이것만은 피하자‘고 제안한다면?
"북한 이주민을 ‘호기심‘만으로 대하지 말라는 점이다. 초기에는 과도한 관심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그 궁금증이 충족되면 매몰차게 외면해버리는 경우가 몇 번 있었고, 그로 인해 해당 이주민은 심각한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 향후 사업계획은?
"10월부터 제2기 '하나되는 교실'이 운영된다.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되는 ‘하나되는 교실‘에서는 남북한의 사회, 문화 및 언어생활 등 매 주제마다 전문가 강의가 진행된다. 각 강좌에 참석한 남북한 주민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상호간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서로간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 / 허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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