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방 찾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등록 2003.09.26 16:43수정 2003.09.2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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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간을 좋아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빳빳한 신간의 도서목록표를 보면 괜히 기분이 상쾌했고 사서 선생님이 전해주는, 대출경력이 전혀 없는 새책을 빌릴 때면 그렇게 기쁠 수 가 없었지요.

취직을 하고 제가 번 돈으로 책을 모으기 시작하고서도 새책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여전해서 신간정보에 늘 민감했고 신문을 봐도 늘 하단의 책 광고를 유심히 지켜보았지요.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박균호
그런데 그렇게 새책을 구입하고 소장도서가 서재를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서 이젠 책의 '수'보다 '질'에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무수히 쏟아지는 새 책 중에서 오래 소장할 만한 귀중한 책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스테디셀러에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되었고, 도서애호가 선배들은 어떤 책을 즐겨 읽었고 어떤 책을 소장하고 있나? 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예전에 출간된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과연 선배들이 즐겨 읽고 소장하는 책은 그만한 값어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는데 아쉬운 것은 그런 선배들의 발자취를 쫓고 싶어도 '절판'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책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독서광 조희봉 이 그의 책 '전작주의자의 꿈'에서 그토록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윤기'의 '하늘의 문1~3' 은 절판되어 구경조차 할 수 없고 저의 장서중 가장 아끼는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책을 펴낸 출판사 '뿌리깊은 나무'가 아예 문을 닫아버렸지요.

그래서 인터넷 헌 책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민중자서전
민중자서전박균호
사실 '전통사회의 황혼에선 사람들' 즉 내시, 백정 ,대장장이, 무당, 염장이 등의 삶을 진솔하게 그린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헌 책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라 여분의 소장용으로 구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저는 행복한 경우가 아닐까 싶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출간한 책을 가장 가치 있는 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책들이지만 이젠 출판사가 문을 닫아버려 더 이상 출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십 군대의 헌 책방을 헤맨 끝에 <숨어사는 외톨박이>를 몇 권 발견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물론 모두 장바구니에 담아버렸습니다. 더구나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1976년에 발간된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호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출판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소중한 작업으로 인정받아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역시 같은 출판사의 '한국의 발견(전11권)' 과 '민중자서전' 여러 권을 입수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그밖에 단 몇 시간동안 제가 건진 대어급 도서를 몇 권 더 소개합니다.

<미국 민중 저항사 1~2, 하워드 진> :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몇 안 되는 양심적인 지식인의 명작입니다.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의 시각으로 본 미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대어였습니다.

<청호경 금남경, 최창조역>: 풍수학 최고(最古)의 경전으로 여겨지고 있는 책입니다. 진작부터 최창조의 풍수학 관련서는 모두 소장하고 있는 터였는데 더 없는 원군을 만난 셈입니다.

<이 땅의 이 사람들, 뿌리깊은 나무> : 한국 근대 역사의 형성 과정에 등장한 마흔네 인물의 고통과 땀을 민족주의 역사관의 저울 위에 올린 새로운 형태의 전기문학이라고 평가받는 책입니다.

이런 귀중한 책들을 구하는 기쁨보다도 <육영수 여사 서거 기념 특별호 선데이 서울> 이나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창간호 등은 구경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사실 짧은 시간 동안 그나마 몇 권 남아 있지 안았던 '판매가능' 한 <뿌리깊은 나무> 의 책들을 모조리 '품절'로 변신시킨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지만 새책을 파는 서점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삶의 향기' 와 '보물을 찾는 쏠쏠한 재미'에 한동안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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