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 산과 절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열리는 절집, 서산 개심사

등록 2003.09.27 12:23수정 2003.09.2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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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심사의 자연미를 좋아합니다. 불도저로 산을 깎아내고 중창불사를 감행한 요즈음의 절집과는 다릅니다. 그저 산에 동화되어 산과 함께 숨쉬는 절집이 개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개심사 입구-세심동
개심사 입구-세심동이종원

입구엔 '洗心洞(세심동)'과 '과 '開心寺 入口(개심사 입구)'란 작은 바윗돌이 서 있어 일주문을 대신합니다. '마음을 씻어야 마음이 열리는구나.' 억지로 마음을 씻을려고 하지 않아도 홍송이 가득한 비탈길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번뇌가 씻겨나갑니다.


개심사의 진입공간-오솔길
개심사의 진입공간-오솔길이종원

쉬엄쉬엄 올라가면 네모난 연못이 나옵니다. '鏡池'라고 쓰여있네요. 마음을 씻었는지 확인해보라고 이런 이름이 붙었나 봅니다. 아이들과 저는 연못에 얼굴을 비춰보았어요.

'아… 예쁘다.' 조금은 씻었나 봅니다.

코끼리 물통역할을 하고 있는 경지
코끼리 물통역할을 하고 있는 경지이종원

뒷산 상왕산의 형상이 코끼리 모습을 하고 있어 코끼리가 마실 물통을 이렇게 네모난 연못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원래 연못 가운데로 작은 나무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썩었는지 태풍에 날아 갔는지 보이지 않아 참 아쉽습니다.

범종루
범종루이종원

아스라이 계단을 오르면 범종루가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아마 구부러진 기둥 때문일까요? 범종 밑에는 지하세계에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큼직한 구멍이 뚫려 있어 이채롭습니다. 장중한 현판 글씨가 조용한 개심사와 잘 어울리네요. 전서체의 대가 해강 김규진의 글씨랍니다.

안양루
안양루이종원

종루 기둥에 기대면 그 안양루 창을 통해 탑과 대웅보전이 살포시 보입니다. 절묘한 광경입니다. 다시 뒤를 돌아보면 확 트여진 내포땅이 보입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그 시원한 눈 맛이란….


보통 절은 누각 밑으로 들어가 대웅보전을 만나지만 개심사는 오른쪽으로 돌아가 작은 해탈문을 들어서야만 대웅전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곡선의 미학이 개심사의 맛이며, 충청도인의 심성입니다.

원목기둥 그대로의 해탈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심검당 우측에 무량수각이 서 있고 가운데 대웅보전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대웅보전은 주심포와 다포식의 퓨전 형태로 두 개의 양식이 함께 공존하는 귀중한 건물이랍니다. 그래서 보물 143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대웅보전
대웅보전이종원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지붕이 예쁜 선을 만들어냅니다. 일렬로 늘어서 있는 자개 연봉은 기와장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지요. 그 연봉들의 크기가 제 각각이어서 이채롭습니다.

스님이 거처하는 무량수각에는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어 절집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부디 중생을 위해 기도 많이 해주세요.

심검당
심검당이종원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심검당의 굽은 기둥이야말로 개심사의 자연미를 말해주는 가장 큰 보물입니다. 굽은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할 생각을 했을까? 그 천진함에 탄성이 절로 납니다. 심검당 한쪽 방에서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흘러나옵니다. 조용한 절집에서 흘러나오는 클레식 음률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해우소
해우소이종원

개심사 해우소 가는 길은 참 아름답습니다. 굽은 기둥에 판자로 이어 만든 해우소…. 작년 어머님이 이 곳 신세를 지었을 때 화장실이 무너지는 줄 알고 벽을 꼭 붙들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일을 보았다고 합니다. 속인들에겐 근심을 푸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근심을 얻어가는 곳인가 봅니다. '용변 후 낙엽을 뿌려주세요'라는 글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명부전의 동자승
명부전의 동자승이종원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명부전'이 나옵니다. 중간에 스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텃밭을 볼 겁니다. 명부전은 길다란 창살도 눈에 뜨이지만 그 안에 모셔진 지장보살상과 시왕상들이 명작입니다. 작은 눈에 고개를 살며시 돌리는 모습이 참 생동감 있습니다. 특히 학과 사자를 들고 있는 동자승 조각은 섬뜩할 정도랍니다. 일체의 타협도 거부한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산등성이에 조금 올라가면 상왕산을 지키는 산신각이 보입니다. 12진산을 산신령과 호랑이가 지키고 있답니다. 산신각은 우리나라 사찰만의 특징이지요. 불교의 토착화라고 할까요. 산신각에서 본 개심사 절내의 모습이 참 아늑합니다.

제 아이들입니다. 산사의 맛에 취했는지 골아 떨어졌습니다.
제 아이들입니다. 산사의 맛에 취했는지 골아 떨어졌습니다.이종원

경내만 둘러봐도 마음이 활짝 열리는 곳이 개심사랍니다. 자연에 거스름 없이 부처님의 마음을 가득 담은 가람의 모습에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다시 세심동으로 내려갈 때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아마 열려진 마음으로 다시 세상을 보게 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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