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이 연치가 니 연치다"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11>방아깨비

등록 2003.09.29 15:40수정 2003.09.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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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방아깨비

방아깨비 ⓒ 우리꽃 자생화

방아 방아 방-아 깨-비 아침 거-리 찧-어라
방아 방아 방-아 깨-비 우리 아-씨 흰 떡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방아 방아 방-아 깨-비 아침 거-리 찧-어라
방아 방아 방-아 깨-비 우리 아-씨 보리 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전래가사, 김동환 작곡)


"떼떼떼떼떼~ 떼떼떼떼떼~"

"저기 머슨 소리고? 연치가 내는 소리 아이가?"

"니 연치 숫넘이 와 저런 소리로 내는 줄 아나?"


"???"

"옆집 돌이 아재가 그라던데, 저 소리는 연치 숫넘이 연치 암넘캉 사랑을 나눌라꼬 내는 소리라 카더라."


그래. 해마다 벼가 제법 누렇게 익어가는 이맘때쯤이었지. 그때쯤이면 새칫골 들판 곳곳에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연치가 따가운 가을햇살을 출렁이며 낮게 날아다니곤 했어. 그중 떼떼떼떼 소리를 내며 벼이삭 사이를 잠자리처럼 날아다니는 연치도 있었지. 하지만 그 연치는 대부분 숫놈이었어.

숫연치는 암연치에 비해 몸집이 아주 작았어. 아니, 생긴 모습은 암 연치를 그대로 빼다 박았지만 몸집이 암연치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지. 하지만 우리들은 그 작은 숫 연치가 제 몸의 몇 배보다 큰 암연치의 등에 올라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어.

연치. 그래. 당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방아깨비를 '연치'라고 불렀지. 특히 암 연치는 동작이 재빠른 숫연치와 메뚜기에 비해 동작이 몹시 굼떴어. 그래서 우리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암 연치를 쉽게 잡을 수가 있었어. 또한 암 연치를 잡은 아이들은 대부분 연치의 뒷다리를 잡고 방아를 찧게 하며 놀다가 불에 구워먹기도 했고.

"우리 내기 하자."

"머슨 내기?"

"내 연치가 니 연치보다 방아로 더 빨리 찧으모, 인자부터(이제부터) 니캉 그 가시나캉 만나지 않는 내기."

"와 하필이모 그 가시나로 들먹이노? 니 그 가시나 그거 좋아하는 거 아이가?"
"아이다. 고마 나는 니캉 그 가시나캉 어울리는 기 보기 싫다카이."

그래. 그때가 그 가시나가 사는 집을 둘러싼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탱자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때였지, 아마. 마을에서 나와 단짝이었던 그 동무는 이상하게 그 가시나와 내가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어. 아니, 그 가시나를 나 몰래 몹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어.

"아싸~ 아싸~ 내 연치가 니 연치보다 방아로 더 많이 찧어뿟다. 인자 니 우짤끼고? 그래도 그 가시나 그거로 만날끼가?"

"… 니 아무래도 수상하다. 니 그 가시나 그기 억수로 좋제? 내한테만 살째기 말해 봐라. 그라모 내가 그 가시나 그거하고 다리로 놔 주꺼마."

그날, 나는 그 동무와의 연치 방아찧기 내기에서 일부러 져 주었어. 그리곤 그 동무가 보는 앞에서는 그 '가시나'를 만나지 않을 것을 약속했지. 또한 그 동무에게 그 가시나를 아무도 몰래 만나게 해 줄 것까지도 약속했고. 그때 나는 그 동무의 상기된 눈빛과 금새 붉게 물드는 볼따구니를 볼 수가 있었지.

a 그 많던 방아깨비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방아깨비 어디로 갔을까 ⓒ 우리꽃 자생화


"니 그 가시나 그기 오데가 그리도 좋더노?"

"…"

"니는 머스마가 돼가꼬 와 그래 숫기도 없노? 좋으모 좋다, 싫으모 싫다, 내한테 딱 부러지게 말로 해봐라. 그래야 내가 우째 해 볼 거 아이가."

"…부…부탁인데, 니 가시나 그거 만나더라도 내 말은 하지 마라."

"그래? 그라모 니 연치 그거 내한테 주라."

"뭐할라꼬?"

"그 연치 그거 그 가시나한테 갖다 주구로. 니가 주는 기라 카모 안 되것나?"

그날, 나는 계속해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그 동무의 연치를 뺏다시피 했어. 그런데 하필 그때 그 동무의 손에서 방아찧기를 계속하고 있던 그 연치의 다리 하나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지.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 동무의 연치를 새칫골 들판에 놓아주고 내 연치를 그 동무에게 주었다가 다시 받았어.

"인자 이 연치가 니 연치다."

"아… 아이다. 내 연치 다리가 뿌러지는 거 보모 내는 그 가시나하고 인연이 없는갑다. 고마 니캉 그 가시나캉 짝짜꿍 해뿌라."

"아…아이다. 내 연치가 니 끼 된 거 맨치로 인자 그 가시나 그거도 니 끼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 동무의 연치를 그 가시나한테 주지 못했어. 그날 오후, 마산쪽 하늘에 노을이 마악 질 때쯤 나는 연치를 들고 그 가시나 집 근처를 기웃거렸지. 하지만 그날따라 내가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를 아무리 기웃거려도 그 가시나의 얼굴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야.

"옴마!"

"와?"

"오늘은 저 집에 심부름 갈 거 없지예?"

"와? 그 집 옴마가 또 니한테 묵을 거로 좀 주더나?"

"아… 아입미더."

"그넘 참! 싱겁기는. 그라고 오늘은 그 집에 아무도 없다. 아까 저거 큰집에 제사 지내러 간다 카더라."

그래. 나는 지금까지도 그 동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 아니,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어. 왜냐하면 그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비비자마자 아버지의 빈 소줏병을 바라보았을 때, 그 연치가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었어.

"혹시 제 연치 못 봤습니꺼?"

"연치? 아, 소줏병에 넣어둔 그 연치 말이가?"

"예."

"그 연치 그거 아까 옆집 김산이 제사 지내고 와가꼬 아침 해장술 안주에 좋것다 캄시로 가져가뿟는데."

"예에에?"

그래. 결국 그 연치는 그 가시나 집으로 가기는 갔어. 그러나 그 연치는 그 가시나의 아버지 해장술 안주가 되고 말았지. 그날 아침, 등교길에서 그 친구를 만난 나는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어. 또한 그 친구도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더 이상 연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고.

"아나?"

"이기 뭐꼬? 시핀(가래떡) 아이가? 어제 제사 지내로 큰집에 갔다 카더마는 참말인가베."

"니가 그거로 우째 아노? 하여튼 퍼뜩 묵어라. 또 이상한 소문 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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