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의 폭탄 대신 새해의 불꽃놀이를

<호주여행기14>시드니 '2002년 12월 31일 화요일'

등록 2003.10.01 10:54수정 2003.10.0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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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 잠자리에 있는 나오꼬와 인사를 하고 공항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 숙소를 찾기위해 다시 코치 터미널 인포메이션 센터(Travellers Information Coach Terminal)에 갔다. 우리가 숙소를 찾고 있는데 저쪽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걸어오며 말을 시킨다.

여행하면서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이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지요. 이름이 뭐예요?"하고 묻는다. 자기 이름은 조지이고 1인당 15A$에 방을 빌려주겠단다. 보통 백팩커스가 싼 게 24A$인데 이 정도면 거져다 라는 생각에 조지가 산다는 본다이졍션으로 따라나섰다.


아! 그런데 너무 멀었다. 할아버지는 쌩쌩 달리고 핸들도 팍팍 꺽으면서 운전해서 너무 무서웠다. 차 안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안 돼, 너무 멀어……" 미러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눈빛을 훔쳐봤다. 저 할아버지 혹시 예전에 깡패하던 사람 아닌가, 도대체가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겉모습으로는 알 수가 없다. 저 자글자글한 주름 속에 들어 있는 파란 눈동자가 갖는 의미를 말이다.

도착해 보니, 백팩커스가 아니라 개인집이었다. 자신의 짐을 서재로 가져가고 자기방을 내주며 여기를 쓰란다. 남의 침대를 쓰느냐, 다시 PC방엘 가느냐를 놓고 갈등하다가 3일 정도 후면 비는 백팩커스가 있을 거라고 결론 내린 우리는 3일 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아래층에 공부하는 한국인도 한 명이 있고, 일본인 커플도 있다고 하기에…….

우선 씻고 빨래를 해 널고 먹을 것을 챙겨 버스를 타고 오페라 하우스 앞으로 갔다. 에어즈록도 포기하고 온 그 대단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입구에서 보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빈 라덴의 폭탄 때문인지, 위험물 소지자 때문인지 가방 검사를 하고 있었다. 벌써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자리를 깔고 있는 사람들 옆에 피크닉 바구니를 보니, 아예 아침부터 진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5시간 정도를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이 불어 무척 추웠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정대며 페리에서 하는 선상 공연을 봤다.

그런데 이상하다. 낮에는 안그랬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유색 인종뿐이다. 지니와 눈이 마주쳤다. 애들레이드에서 빈 라덴의 폭죽을 피해 왔다던 여행객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잠깐, 무서웠다. 아는 사람들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며 꾹 참고 있었다. 말이라도 잘하면 옆에 있는 저 사람들과 얘기라도 해 보겠는데 우리끼리 뒤숭숭한 마음을 저울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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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


드디어 하버브릿지 기둥에 화면이 비춰지고 카운트에 들어갔다. "9, 8, 7,…… 3, 2, 1, 0" 하자 불꽃이 터졌다. "팡~파바방 빵~파바팡." 여기저기서 하늘에 불꽃을 던져댔다. 사람들은 터지는 불꽃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늘로만 치솟던 불꽃은 물이 되어 흐르기도 하고 춤을 추듯 너울거리다 다른 불꽃과 만나 더 화려한 불꽃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달링 하버의 불꽃과 겹쳐져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하늘에 오색불로 그리는 그림은 그야말로 불꽃 천지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불꽃 속에 빈 라덴의 폭탄이 어떻게 들어 올 수 있었겠는가? 정신 없이 터지던 불꽃은 20여분 가까이되자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고 불을 밝힌 배들이 바다 위를 일렁거리며 유람했다. 그리고 우린 잊었던 새해 인사를 했다.

"Happy New Year."

사람들이 하나, 둘 흥분을 잠재우지 못하고 맥콰리 스트릿으로 걸어나갔다. 우리도 따라서 걷다보니 저쪽 호텔 테라스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곳 주민들과 우리와 비슷한 배낭 여행객들은 몇 시간을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 불꽃놀이를 즐겼고 저들은 저기서 저렇게 근사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신났다.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새로운 1년이 똑같이 주어졌으니까. 시간을 돈 주고 살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도 놀아 봤으니 다음에는 저렇게 놀아보는 건 어때?" 하며 캔 맥주를 부딪쳤다. 그리고 "Happy New Year"를 외쳤다. 그들도 창문을 열고 "Happy New Year"를 외쳤다.

월드컵 경기가 끝난 후 종로통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맥콰리 스트릿을 밀려다니며 소리소리 지르고 놀았다.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뒤에 만난 한 친구는 소리소리지르면서 걸어 가서 본다이비치에서 일출을 봤다고 했다.

우리는 그 생각은 못하고 버스 끊기기 전에 숙소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귀소의 본능인지 길들여진 일상인지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서둘렀지만 버스는 끊어져 조지가 우리를 데릴러 나와야 했다. 조지가 "너무 늦으면 데리러 나가겠다"고는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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