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이 광고를 기억하세요?

"담배를 피우는 것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등록 2003.10.02 12:47수정 2003.10.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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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희 학교에서는 금연에 관한 표어 만들기, 글짓기대회를 가졌습니다.

저희 반의 우수작품을 선정하느라 아이들의 작품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는데 흡연에 대한 어른의 책임이 크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어떤 녀석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담배를 피는 사람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TV 등에서 주인공들은 멋있게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다행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흡연장면이 금지되긴 했지만 그 조치가 시행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텔레비전도 사실 금연인구의 확대에 많은 기여(?)를 한 셈이지요. 사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알게 모르게 흡연을 조장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오늘 아침 우연히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보존판을 살펴보았는데 1978년 9월호에 실린 광고가 눈에 띄더군요. 실은 필자가 중학생이었을 때 한 은사님께서 이 광고 이야기를 저희들에게 들려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실체를 직접 목격했다는 감개무량한 느낌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더군요.

광고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78년 '뿌리깊은 나무'의  광고입니다.
1978년 '뿌리깊은 나무'의 광고입니다.박균호
몸에 해롭다는 담배를 만들어 국민에게 파는 전매청에서 그 담뱃갑에 구호로 한다는 말은 고작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일 뿐입니다.

알고 보면 지나친 흡연만이 건강에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조금 피우는 담배라고 해서 건강에 이로울 턱은 없습니다. 게다가, 지나친 흡연은 늘 조금 피우는 담배로 시작됩니다.


담배를 피우는 더러운 버릇에 아직 빠져들지 않은 젊은이들은, 멋으로 한 모금 빨고 싶은 막연한 호기심이 있더라도, 아예 끝까지 참읍시다. 멋으로 빨고 싶은 상태에서 참는 것이 중독된 상태에서 참는 것보다 훨씬 더 수월하니까요?

담배곽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가장 좋고, 굳이 있어야 한다면 그 구호는 이렇게 고쳐져야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 광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요즘 담뱃갑에 인쇄된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흡연으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질병은 '폐암 등 각종 질병'으로 간단히 요약되어 있어서 마치 흡연으로 유발되는 질병이 폐암뿐인 것처럼 이해될 수도 있으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다'는 문구는 다시 말하면 임신부나 청소년이 아닌 일반인들은 상대적으로 '덜' 해로우니까 피워도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조금 과장하면 이 문구 역시 교묘한 '담배 광고'가 아닐는지요?

진정으로 흡연을 경고하고 싶다면 차라리 25년 전 '뿌리깊은 나무'가 제안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건강에 해롭습니다"가 낫지 않을까요?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에서 "흡연은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로, 다시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로 마지 못해 경고의 수위를 강화했다지만 여전히 경고는 충분치 않습니다.

참고로 EU는 내년부터 흡연에 대한 경고 문구를 "흡연은 치명적인 폐암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또는 "흡연은 당신을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로 변경한다고 하는군요.

다행히도 우리나라도 '담배규제기본협약'을 준수, 내년부터 흡연에 대한 경고를 강화하고 경고 사진까지 담뱃갑에 인쇄하는 것을 의무화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EU 수준에 버금가는 내용의 경고가 이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이번엔 제발 오히려 흡연을 조장하는 금연문구가 아닌 경고다운 경고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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