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격동의 세기를 함께한 농민운동가"

'민중당·민교협 초석' 김상기 경북대 교수 2일 교단 떠나

등록 2003.10.03 22:57수정 2003.10.0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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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崖 김상기 교수 퇴임 고별 강연회가 열렸던 경북대 복현회관 대회의실
草崖 김상기 교수 퇴임 고별 강연회가 열렸던 경북대 복현회관 대회의실허미옥

지난 2일, 80년 격동의 시대 한국사회 민주화를 위해 대구지역에서 40여년 동안 힘껏 뛰어왔던 한 교수의 퇴임 고별 강연회가 있었다.

한국사회 농업문제 해결을 위해 농민운동가로,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민중당을 창당, 교육민주화에 대한 열정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경북대 농경제학과 김상기 교수(65ㆍ草崖). 그런 이유였는지 몰라도 이날 퇴임 강연회에는 현역 또는 은퇴한 농민운동가, 농업경영인 연합회, 농협 등 ‘한국사회 농업문제를 고민하는 현장활동가들'의 참석이 이채로웠다.

“한국 사회 민주화로 인해 무사히 ‘퇴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농담 섞인 송축사가 결코 낯설지 않았던, 경북대 김상기 교수의 퇴임 고별 강연내용을 요약했다.

'지식인과 사회'를 주제로 진행된 이 강연회에서 김상기 교수는 "입으로만 농민,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소외계층을 위한다고 떠들었던 40여년 간의 삶을 회고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지만,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들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고민하며 살겠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는 한국 민중의 표상이었다“

민중당 공동대표였던 김상기 교수가 터 놓은 민중당 실패의 교훈
민중당 공동대표였던 김상기 교수가 터 놓은 민중당 실패의 교훈허미옥
"나는 왜 민중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나? 우리 어머니는 무지하고 가진 것이 없는 가장 밑바닥 인생이었고, 한국 민중의 표상이었다“는 김 교수는 “20세기 초엽에 태어나 급작스럽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그들과 삶을 함께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질책했던 이유는, 나 자신도 민중 속에서 민중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잠재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소망과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문제의식에서 민중당을 창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민중당에 대해 김 교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정당을 만들고 당신들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목표로 민중당을 만들었지만, 당시 선거에 나선 사람들은 모두 탈락했고 정당은 소멸되었다“며 “사회적 약자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몰랐던 당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 사회 지식인이 기성사회로부터 억압과 소외받는 그들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동포애로 생각할 수 있냐“고 생각했던 김 교수는 “결국 사회적 약자를 위해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철벽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 했다.

“민중들은 사회적ㆍ자연적 재난에도 희생당하고 있다“

그는 이 땅의 민중들은 사회적ㆍ자연적 재난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다.

"얼마전 멕시코 칸쿤에서 한번의 폭풍이 있었고 한반도에서는 태풍 '매미'의 피해가 있었다"는 김 교수는 “‘매미‘의 폐해는 단순한 수해가 아니라, 지구촌 차원의 농업문제, 자본주의 거대 공룡에 대한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즉 지난해 폭우에 젖어 ‘죽겠다‘고 발악한 매미가 올해 드디어 발악을 했다는 것.

김상기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무자비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 보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상기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무자비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 보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허미옥
김 교수는 여기서도 민중 등 소외계층의 삶을 보호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재해라면 고층빌딩이 파묻혀야 하지만, 아무리 태풍이 와도 고층빌딩이나 부자들을 끄떡없다“며 “왜 재난의 대상은 항상 민중이어야 하는가? 결국, 현재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민중들에 대한 피해는 항상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 지식인들은 그들의 삶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기재 즉 완벽한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사민주의에서 보장해주고 있는 사회복지시스템은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무자비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 보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경제체제는 금융자본 주도 하에 각 국을 전 지구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그 틀 속에서 국민경제의 자율적 지평은 사라지고, 한국경제 또한 국제 자본주의 공룡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는 그는 “이 속에서 한국의 농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세계 자본주의의 패권적 지배 즉 약소국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이 거대한 흐름에서 한국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학문은 인간의 삶을 위해 탐구되어야 한다“

草崖 김상기 교수, 그는 누구인가?

1938년 5월 경남 창원 출생
1968년 8월 서울대 대학원 농경제학과 석사
1975년 미국 미쉬건주립대학교 대학원 시스템공학과 박사과정 수료

● 경력

1976 - 2003년 8월 : 경북대 농경제학과 교수
1987 - 89년 :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제1대, 2대 공동의장 (서울대 김진균, 전남대 송기숙 교수)
1987 - 1990년 :경북대학교 교수협의회 1,2대 부의장
1989년 9월 : 민중당 창당 준비위원장
1989년 1월 : 민중당 공동대표 (이우재 의원, 김낙중 선생)
1990년 - : 대구사회연구소 이사
2001년 8월 : WTO 국민연대 농업정책위원장
2002년 10월 : 대구서부교육시민모임 이사장
2001년 - : 진보적 지서과 양심의 소리 위원
2003년 3월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공동대표 / 허미옥
한편 그는 학생과 졸업생들에게도 학문의 편식 즉 ‘첨단학문에만 매몰되면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복합학문을 추구하고 있지만, 농업은 사양산업이어서 불필요하고, 공업이나 첨단산업을 한국의 대표산업이라고 규정한다면, 30년 후 한국사회는 엄청난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농업, 농민, 농촌사회를 외면한 채 외형적으로만 선진 산업국가가 된다면 그 내부는 피폐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뿐만 아니라 “농업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단지 그들에게 돈 몇푼 더 지원해주고, 농업정책 몇 가지를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균등 발전을 위해 한국경제시스템 자체를 전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었다.

김교수는 강연 마지막 부분에 “사회약자 편에 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뚜렷한 성과물도 없을 것이다“라며 “그렇지만 태생자체가 민중 속이었기 때문에 나의 삶의 기반은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소신을 밝혔다.

"지금은 강단을 떠나지만, 항상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 교수는 80년대 격동의 세기를 함께 했던 농민운동가"
[인터뷰] 가톨릭농민회 청송군 배용진 지회장

-김상기 교수와 인연은?
"80년대 격동의 세기에 이 땅의 농업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의논했었다. 절박한 농촌 현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농민시위로 인해 공권력의 압력을 받을 때 대처방법을 머리를 맞대고 찾았으며, 농업경영에 대한 전문가적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교수였기 보다는 이 땅 농민과 함께 했던 농민운동가였다."

-'김상기 교수 정년 퇴임'을 두고 감회가 새로울 것인데 ?
"지역에서는 김 교수처럼 농민현장에서 함께 했던 사람이 드물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그는 퇴임하더라도 다시 농촌현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는 항상 '농업을 경제논리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주장했었다. 이는 현장 농민운동가들과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병자대국'으로 향하고 있다. OECD국가 중 암 발생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 아닌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제 질병발생률 중 암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차지하고 있지만 점차 그 점유율은 높아지고 있다. 왜 그렇겠는가? 가장 핵심적 문제는 한국사회 농업기반이 거의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농업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의 병자대국화'는 점차 빨라질 것이다. 그때 후회하면 늦게 된다."


-김상기 교수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것 같던데?
"김 교수는 내가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현재 70이고, 김 교수보다는 5살 정도 많지만 이렇게 튼튼하다. 건강 유지의 비결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의 밥상에는 절대 화학조미료 등이 올라오지 않는다. 환경농업으로 재배한 것을 먹고 자연속에서 살다보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

이제 김상기 교수도 학교를 떠나게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자연 속에서 살면 예년의 건강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허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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