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에 실어보낸 참스승에 대한 보답

아이 담임선생님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등록 2003.10.04 09:54수정 2003.10.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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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나는 온전하고도 성실하게 받아온 '제도교육' 16년을 통틀어 존경스러운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뭘 몰라 그랬고 나이가 좀 들어서는 존경을 '느끼기도 전'에 그저 하루라도 빨리 이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해방'되기만을 바랬을 뿐이다. 지금도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소리 하나가 "군대 다시 가라면 가도 고등학교 다시 가라면 못 가겠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얘기를 다 할까.


내 부모 돈 많지 않으셨고 나 역시 공부 잘 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말썽 부리는 '문제아' 아니었던 나의 눈에 비친 7∼80년대 우리나라 제도교육의 현실은, 마땅히 본받아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스승의 존재를 잊고 살게 만들었다. 오히려 내가 보다 더 쉽게 보고들을 수 있었던 것은 '촌지'라는 검은 돈으로 인해 야기되는 교육계의 온갖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사건사고 소식들 뿐 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교육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 놓고는 학교와 교사로부터 나와 내 아이가 불편·부당한 대우를 받는 때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릴 정도였다. 그것은 "한 번 걸리기만 해 봐라! 못된 짓 하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 주마"하는 가진 것 없는 자의 일전불사의 시퍼렇게 날 선 의지였다.

그런데 큰아이가 1학년을 중간쯤 보냈을 때부터였으리라. 아이의 담임선생님에 관한 솔깃한 얘기들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선생님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는 우호적 '경험담들'이었다.

수업 중에도 아이들이 '엄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수업이 끝나도 교실에 남아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해 어머니들이 교실 청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햄버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김치 먹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김치주제가'라는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그래서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그 반은 늘 밥이 남지 않는다는, 급식을 다녀온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증언들.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도 우선, 단호하고도 공식적으로 '촌지'를 거부한다는 '명료한 선언' 등이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 조마조마한 학부모로서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애써 숨기고 강력한 '투쟁의지'를 드높이던 나에게는 그저 신선하기만 했다.

a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교실 뒤편에 모여 놀고 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교실 뒤편에 모여 놀고 있다 ⓒ 이양훈


결국 시간을 내어 아이를 따라 학교에 가 보았다. 학부모임을 밝히자 반가워하며 손수 커피 한 잔을 주시고는 이내 수업에 열중하신다. 그러나 뒤쪽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있다. 어느 순간 아이 하나가 '쪼르르' 앞으로 뛰어 나와서는 선생님께 '폭삭' 안겨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선생님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끝까지 얘기를 다 들어주신다. 그리고 수업은 다시 진행된다.


a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아이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아이 ⓒ 이양훈


이번엔 '소고놀이'를 위해 운동장으로 나가서 크게 원을 그리고 돌아가며 북을 친다. 아이들은 여전히 웃고 떠든다. 소고치는 방법과 노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하는데 운동장이라 선생님은 '악'을 '악'을 쓰신다.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저래서 수업이 제대로 될까?"하는 의구심 마저 일어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다. 아이들이 무질서하게 웃고 떠들며 선생님의 얘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에 수업이 멈추는 일은 없다. 조금 더디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른다. 떠들면서도 선생님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선생님께서도 이미 그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20여 년을 이렇듯 변함없이 수업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교사의 입장에서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귀찮고 힘이 드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왜냐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더 좋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a 운동장에서 소고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운동장에서 소고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 이양훈


나는 그 모든 장면 하나 하나를 다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그 사진을 선생님의 홈페이지에 올려 드렸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사진은 다시 아이들의 수업교재로 사용되었단다. 자기들 모습이 나오는 사진을 보고 아이들이 대단히 좋아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학교를 찾지 않았다. 학부모와 담임선생님이 필요 이상으로 자주 만나는 것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선생님이 만든 홈페이지를 이용해 내 아이에 관해서, 선생님의 교육관에 관해서 공개적인 얘기들을 주고받고는 했다. 학급의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는 연극을 준비하고 공연했다는 얘기도 들었고 1년 동안의 그 모든 자료들을 모아서 학년말에 문집을 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이제 가끔씩, 내 아이의 학급담임이 아닌 직업이 '교사'일 뿐인 선생님과 저녁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씩 하고는 한다. 서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쉽게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꿈이라는 선생님과 암울한 80년대를 피끓는 청년학생으로 관통했던 한 학부모에게 앞에 놓인 한 잔의 술은 이야기속에 그야말로 꿈처럼 녹아든다. 선생님은 초창기 '전교조' 가입교사다.

나는 매년 산지에서 직송되는 복숭아를 사 먹고는 한다. 아는 분께서 직접 과수원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올 해 나는 복숭아 두 상자를 주문했다. 하나는 우리가 먹고 하나는 선생님께 선물했다. 친한 선생님과 나눠 드시라는 요구도 잊지 않았다. 작년에도 이렇게 하고 싶었지만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라 그러지 못했다. 이제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드리는 뒤늦게 만난 '내 마음의 스승'에 대한 보답이다.

그날 저녁, 복숭아를 선물로 받은 선생님은 그 두 배가 넘는 술값을 치러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올해 5학년 3반 담임을 맡은 조성실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학부모님들께 보낸 '공개서한'

아이들과 만난 지 이제 3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혼자서 올 1년 아이들을 이렇게 저렇게 가르쳐 보겠다고 생각하고 계획 할 때 보다 훨씬 신도 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기대도 많이 됩니다.

첫날 아이들은 '서먹서먹' 말도 하지 않고 목소리가 작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운동장에 나가서는 친구와 싸우기까지 하는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5학년이 되는 시간동안 나름대로 학교 생활의 습관이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서로 힘을 합하여 우리 3반의 생활을 새롭게 이루어 나가야 하겠지요.

저는 저의 경험에 비추어 아이들의 학교교육은 교사, 학부모, 아이들이 함께 같은 교육목표를 가지고 노력해야만 좋은 결과를 바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1년 동안 5학년 3반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향과 1년 동안의 교육활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부모님의 생각도 들어보면서 함께 이루어 가는 교육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학교 생활이나 일상생활 과정에서 스스로 기쁨을 얻고 자기 행동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로 삶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가꾼다고 하면 먼저 식물을 가꾼다는 의미를 연상하게 됩니다. 식물을 가꾸려면 씨를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리며 여러 날을 정성을 다해 물을 주며 보살펴야 합니다. 또한 싹이 난 후에, 크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거름을 주고 좋은 환경도 만들어 주고 잡초도 뽑으며 꽃이나 열매를 얻기 위해 소중한 노동을 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얻은 꽃이나 열매는 아름답기도 하고 쓸모 있기도 하며 무엇보다 가꾼 사람에게 귀한 의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씨앗을 심기 전에 어떤 씨를 심을까 하는 선택의 설레임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삶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식물을 가꾸듯이 삶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삶을 가꾸는 일은 학습을 하는 여러 활동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친구와 가치관을 나누고 하나됨을 느끼는 과정일 수도 있고 철저한 자기 반성에서 오는 존재의 중요성이나 생명 존중의 가치관에서 오는 철학적 사고일 수도 있고 역사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역할을 알고 행동하는 과정일 수도 있고 몸을 움직여서 얻는 땀흘리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일은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 활동은 크게 학습부분, 문학과 글쓰기 부분, 아이들과 아이들, 아이들과 교사, 아이들의 가족간의 관계부분으로 나누어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모든 활동을 진행함에 있어서 제가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는 몇 가지 원칙을 밝히려고 합니다.

첫째,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며 가르치려고 합니다. 사랑이라 함은 아이들을 무조건 받아주고 멋대로 하게 하는 방임적인 사랑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라는 사랑입니다. 아이들의 행동에는 대부분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되는 행동이나 거슬리는 행동조차도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 하나하나 이야기 들어가며 생각과 행동을 인정해 주는 사랑의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둘째, 저는 모든 아이들을 고루 사랑하려고 합니다. 고루 사랑한다 함은 일률적으로 같은 양을 측정하여 주는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의 가정 사정에 맞는 엄한 사랑도 있고 결손 가정의 아이에게 주는 풍성한 관심도 있습니다. 필요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소외되는 아이들, 관심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없도록 특히 애쓰려고 합니다.

셋째, 학부모님들이나 아이들과 가까운 관계가 되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교사와 학부모가 잘 알면 더욱 알찬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부모 상담이나 전화 상담, 홈페이지를 통한 의사소통을 언제나 자유스럽게 하려고 합니다.

학부모통신은 이제 홈페이지를 통해 정기적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 제가 하려고 하는 모든 교육 내용이나 방향이 바르게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학부모와 교사, 아이들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된 좋은 관계 속에서 밝은 아이들과 만나 참교육을 해보고 싶습니다.

끝으로 아이들이 끈이 되어 만나 참으로 반갑습니다. 전화, 이메일, 직접 방문 등 언제나 교육에 관한 의견 나누실 수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다음 통신에서나 학부모 총회에서 뵙겠습니다.

2003년 3월 5일 담임 조성실드림.

어떻습니까?

교육계 부조리의 온상인 '촌지'를 거부함으로 갖게 된 거침없는 '당당함'이 함빡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우리 교육, 특히 초등교육이 가야할 바람직한 모습의 일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계신 조성실 선생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어디 촌지뿐이겠습니까! 교육 주체의 하나인 학생과 학부모를 오로지 방관자로 전락시킨 지금 우리 교육계의 온갖 부조리와 비합리는 조성실 선생님처럼 개인의 헌신적 희생으로 극복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또, 오직 교사라는 이유 하나로 성직자에 버금가는 희생과 각오를 요구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신명나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바란다면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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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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