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시장바닥 이야기

이명랑의 <행복한 과일가게> <삼오식당>

등록 2003.10.05 14:08수정 2003.10.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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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명랑의 삶은 참 특이하다. 그는 왠지 잔잔하고 풍요로울 것 같은 작가의 삶과 소란스럽고 쫓기는 듯한 시장바닥 가게 아줌마의 삶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특이함은 밖에서 들여다보는 우리의 시선일 뿐이다. 안의 삶에서는 그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나는 내 삶이 뭐가 특이한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배경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한 것뿐이고 과일밖에 모르는 남자와 함께 살다 보니 자연히 나도 과일장사꾼이 다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남편도 이제는 문학잡지들을 읽곤 한다. 어쩌다 내 글이 실린 잡지가 배달되어 오면 내 글을 읽고 나서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기도 한다.

무언가를 선택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내가 선택한 대상을 향해 다가가 끊임없이 그 대상을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과일 장사를 시작한 뒤로 과일만 아는 남편에게, 과일 중도매인인 형부에게, 평생 밥장사를 하고 계시는 엄마에게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행복한 과일가게>,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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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과일가게>가 그의 산문집이라면 <삼오식당>은 실제로 이명랑의 엄마가 밥을 대주는('파는'이 아니라 '대주는'이라고 쓴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안다) 식당을 배경으로 한 '사실같은 소설'이다.

그의 글과 삶은 삶의 바탕을 부정하거나 도망치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그러면서도 애써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자기 삶의 선택이 그렇게 이끌려 왔고 그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담담하고 진솔한 고백이 있을 뿐이다. 그의 글은 시장 사람들의 살가운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바로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바로 그 삶이 우리에게 찡한 느낌을 준다.

작가소개

낮에는 수완 좋은 과일장수로, 밤에는 작품에 몰입하는 소설가로 살아가는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이명랑은 1973년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 1999년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문학 무크지 <새로운> 제1호에 [에피스와르의 꽃] 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체험과 풍부한 서사성을 바탕으로 삶의 허위와 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낸 성장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로 만만치 않은 개성과 저력을 가진 신예 작가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독특한 삶의 이력을 소재로 한 산문집 <행복한 과일가게>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선사한 바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와 함께 시장엘 자주 다녔지만 내가 봤던 시장터 풍경은 항상 밖의 시선이었다. 이명랑의 눈은 내가 절대 볼 수 없는 안의 시선으로 시장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커피장수 차씨 아줌사, 봉투 아줌마, 0번 아줌마, 악바리 할매, 똥할매, 로타리 할머니, 당진상회 할머니, 고물장수 박씨 할머니가 그 시선에 잡혀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 역시 그 시장바닥의 사람이기에 교차되는 시선 속에 작가의 모습도 드러난다. 이명랑은 담담하게 자기 삶을 드러낸다.


영등포 시장바닥엔 대형 할인마트의 정돈된 깔끔함이나 계산된 질서가 없다. 오히려 지저분함과 숭고함이, 삶의 극단적인 고통과 사랑이 함께 넘실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시장바닥이다.

이명랑의 글을 읽으며 경쟁과 착취의 칼날을 휘두르는 거대한 시장이 아닌 보살핌과 살벌함이 '당당히' 공존하고 있는 조그만 시장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명랑은 그 가능성을 된장찌개로 표현한다.

"다정한 음성으로 서로 인사를 나눌 줄도 모르고 일 년 내내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마실 줄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멋대가리 없고 무뚝뚝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막상 내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아픔을 모른 척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는 곰삭은 메주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두었을 때는 그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막상 청국장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이면 입 안 가득 군침이 돌게 만드는 메주처럼 말이다. 이보다 더 구수한 냄새가 어디 또 있을까?"
(<행복한 과일가게>, 79쪽)

어느 하나에만 신경을 써도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각박한 시대에 이명랑은 여전히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두 개의 삶이 작가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는 힘일지 모르겠다.

그 곳에서 벌어지는 무궁무진한 얘기가 다 그의 소재가 될 터이니. 글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히거나 눈시울이 젖어 온다. 책을 잠시 덮고 한숨을 뱉으며 나를 생각하기도 한다. 시끌법석하고 바쁜 시장의 이야기들이 내 마음 한 구석에 느림과 여유가 자리잡을 공간을 마련해 준다.

과일장수들에게 버티기 힘든 시절이라는 겨울이 오면 영등포 시장을 한번 찾아가고 싶다. 진상손님(물건은 안 사고 이것저것 따지고 캐묻고 악착같이 깎고 그냥 가는 사람)으로 오해받을지 모르지만 그 가게에서 귤 한 봉지 사들고 나오면 나도 그 명랑함을 조금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행복한 과일가게

이명랑 지음,
샘터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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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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