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짜리 딸아이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한국 교육에 편입될 준비를 하는 딸을 보며

등록 2003.10.06 15:53수정 2003.10.0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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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6개월이 채 안된 딸아이지만 4살이라는 훈장을 달고 보니 종종 딸아이의 '교육'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거저 건강하고 맑고 웃음 진 얼굴을 보이던, 좋았던 시절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되기 전엔 제 아이를 제가 졸업한 고향의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오가면서 산과 들이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구경하고, 잠자리와 개구리를 벗삼아 자라나는 것을 원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그랬지요. 어쨌든 막상 아이가 생기고 커가다 보니 결혼 전에 생각했던 자녀 교육관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딸아이 또래의 다른 집 아이들이 유치원에 취학을 계획하고, 글쓰기, 읽기 공부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여전히 '야생'의 상태로 자라고 있는 딸아이가 은근히 걱정되는 겁니다.

박균호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이런 저런 학원을 보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초등학생들이 4~5개의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이 불쌍하게만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집사람도 은근히 이제 서서히 딸아이와 '교육'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나봅니다. 걱정하는 푸념을 몇 번 하더니 드디어 어제 저녁에 딸아이에게 '고구마, 감자…' 따위의 글씨를 하나 둘 따라 쓰도록 하더군요.

물론 딸아이는 사뭇 진지한 엄마와는 달리 글씨 쓰는 연습이 아직 '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교과서에서 말하는 '사회화'를 드디어 딸아이가 시작했다는 것을 축하해야할지 아니면 '공부라는 지겨울 굴레'로의 입문을 위로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박균호
사실 우리 나라의 '교육'이라는 것이 유난히 거칠고 편안하지 못하지요. 비용도 많이 들고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경쟁도 치열한 편입니다.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른 집 부모님도 다 그렇게 시키니까 우리 아이만 안 시키면 우리 아이만 바보 된다'는 식의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딸아이의 공부의 시작을 마냥 축하만 해줄 수 없고 기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이 지금은 웃고 즐기면서 '공부 놀이'를 즐기지만 앞으로 커가면서 공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좌절과 고민을 하게 될까를 생각하면 더더욱 심기가 편치 않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그런 난관을 뚫고 이겨 가는 것은 딸아이의 몫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커가면서 남을 앞서가는 것보다는 남과 협력하는 것을, 남을 이기는 것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게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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