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 시인안병기
-작은 것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고 사시는데는 마치 도의 경지에 이르신 것처럼 보이시는군요.
"시라는걸 생각하면 시의 본질은 쓸쓸하고 외로운 거예요. 내 몸속에 그게 가득하지요. 나 자신은 내 속에 있는 시적인 천성을 어떻게 하면 다른 것과 맞춰 가지고 내가 평형을 이루면서 살 수 있는가를 생각했단 말이지요. 난 어릴 때 이미 내 속에 있는 시가 나를 망칠거라고 생각했어요. 열 일곱살에 말이예요.
그러므로 이 거를 어떻게 하면 맑게 투명하게 살아내도록 균형을 맞춰낼것인가를 고민했어요.그러자면 추를 다른쪽에도 놓아야 될거 아니에요. 한쪽에 시가 있는데,선천적으로 몸안에 들어와 있던 그것을 소년기에 처음으로 형상화 했지요. 그러므로 이것에 대응할 만한 무엇인가를 줘야 한다는 말이지요. 인생을 실패하지 않고 살려내려면 이것이 바로 남들이 작다, 좁다,가족주의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행복의 진정한 개념이란 말이지요.작은 것 사소한 것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거예요."
-좋아하는 시인이나 영향을 받은 시인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시인은 돌아가신 박용래 선생님, 또 김관식 선생님, 두 분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지요. 김종삼, 황동규 선생님 영향도 받았고요. 어떤 유명한 시인이 시집을 천 권 읽고 글을 썼다 했는데 난 그렇지 않아요. 시집을 그렇게 많이 읽지도 않았어요. 내 공부하는 방법이 한 권을 읽도 여러번 읽자는 거에요.왜 독서백편의자현이란 말 있지요? 천자문 이야기 하듯이 깊이 보는 거지요."
-참 좋은 독서 습관을 지니셨군요.저는 책을 건성으로 읽고 던져버리곤 합니다만...
"모든 지식의 출발이 물음이잖아요. 자꾸 읽다보면 새로운 물음이 생기지요. 속독으로 나가는 사람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 거지요.그런데 나는 올해 뜻밖의 경험을 했어요. 조정래씨의 <태백산맥> 있잖아요? 전 그때 그걸 안 읽었어요. 최근에 읽었어요. 열 권을.내가 지금 십 권 째 중반 부분을 읽어 나가는 중이예요.
내가 실은 재작년에 다리를 다쳐 수술하고나서 작년에 또 다리를 다쳐 사다리에서 미끌어져 떨어졌어요.그런데 내가 행동을 제약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일이 도스토에프스키 전집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책방을 수소문해서 크라운판으로 7권인가,뭐 <가난한 사람들>인가,그런거. <죄와 벌>도 읽고.그러다가 우연히 <태백산맥>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태백산맥>이 열 권이면 너무 방대하다 싶더라고요.그런데 외국 거를 봤으니까 우리 것도 보고 싶었어요. 누구한테 물어보니까 <태백산맥>을 보면 어떻겠냐고 그러더라고.그래서 그걸 구해서 열권을 보는거에요.그래서 내가 최근에 읽은 거는 <태백산맥> 열권.<태백산맥>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지요.거기에 삶. 민중들의 삶 때문에...
-이면우 시인이 인터넷에서 쓰고 있는"돌부처"라는 이름은 어떻게 해서 쓰게 되셨나요?
"어릴 때 누군가 별명을 그렇게 불렀던거 같아요. 누군가가 나한테 '넌 돌부처 같어' 그런 이야기를 했던거 같아요. 내가 어릴때는 말을 많이 안했어요. 그리고 힘이 셌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돌부처다. 누군가가 돌부처라고 잠깐 불렀던거 같아요."
-혹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가 있다면 어떤 시를 들 수 있을까요?
"내 자신의 시중에서요?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머나먼 저곳 스와니강>정도. 난 그게 애착이 가요. 왜냐하면 수몰된 곳에 국민학교가 있는데 난 사실 그 국민학교를 다니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러질 못하고 방학때만 가서 놀았어요. 그래서 추억이 많지요. 방학 때만 그 운동장에서 많이 놀았죠. 거기 다니고싶었는데...."
내 쪽배는 초등학교운동장 삼십 미터 상공을 지난다.
그 날의 풍금소리는 배 지나간 자리 물결무뉘로 올라온다.
스와니강, 아름다운 남자 포스터는 강마을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몰래 다녀갔다 나는 빈 운동장에서
열린 창으로, 붉은 커튼 사이로 흘러 나오는
선율 따라 산 넘고 강 건너
한없이 갔다.
생을 축음기에 얹어 되돌린다면
바늘이 가볍게 긁어내는 슬픔이 강처럼 흘러올 것이다
이면우 시 <물에 잠긴 스와니강> 전문
-혹 시적 형상화에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드신다면요?
"자기 표현이 제대로 안된 것 같다고 생각되는 작품말이지요? <공중정원> 같은 작품이 있는데 좀 이야기가 짧게 통하는 바람에...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속으로 표현이 아리송하게 됐다 하는걸 느껴요. 노숙자들 이야기를 하는데 하고 싶었는데.내 스스로 한테 갇헜는가 봐.그것을 내 스타일로 소화시킬려니까 안 맞었어요. 주제하고 내 스타일하고 안 맞았어.그래서 이런 건 모호하다."
-<술병빗돌>이란 시는 어떻게 쓰신 거지요? 창작에 사연이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만...
"네. 우리 고향에서 내가 버섯 농사를 짓고 있을 땐데,거기서 술주정뱅이라고 표현했지만,나보다 연세가 많은 양반이 돌아가셨는데 내가 그때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실제 제가 일을 해야지요.자식을 셋을 남겼는데 좀 친하게 지냈다고 봐야돼요.
내가 특징이 뭐냐면 노인 아이 처녀 가릴 것 없이 대화를 잘해요. 먼저 말을 거는 스타일이예요.그 세 아이들하고 죽 말을 하면서 지냈어요. 글에 나오는 아이들하고 말이지요.그때 '술병 빗돌'을 실제로 세운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세운거고.그놈이 울지 않았다는거,아들 놈이 울지 않았다는 거.누나들은 우는데,게가 그때 한 여섯 살쯤 되었는데,그런데 안울고 똘방똘방하게 놀더라고. 뛰어다니면서.
그 사내아이를 우연히 다시 만났어. 한 10년정도 되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더라고. 어느 찻집엘 갔는데.대학생이야.내가 물었어. 많이 본 거 같은 데 날 알겠냐고. 그러니까 우리 아이 이름을 대면서 상윤이 아빠시잖아요? 그러더라고.그래서 네가 그 아이냐 그러니까 맞다고 하더라고... 대학을 들어갔는데 특이하게 경호과 랍니다. 운동을 뭘 했느냐니까 합기도는 4단 다른 걸 또 했겠지?
술주정뱅이 이윽고 간경화로 죽었다 살아 다 마셔버렸으니 남은 건 고만고만한 아이 셋, 공동묘지 비탈에 끌어묻고 돌아나오는데 코훌쩍이 여섯살 사내애가 붉은 무덤 발치에 소주병을 묻는다 그것도 거꾸로 세워 묻는다
그거 왜 묻느냐니까 울어 퉁퉁 분 누나들 사이에서
뽀송한 눈으로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중에 안 잊어버릴라구요
이면우 시 <술병빗돌> 전문
-이면우 시인의 시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해 갈 것인지 기대가 큽니다.앞으로의 시 창작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거야 모르지요. 내가 왜 태어났는가를 아들이 물어볼 때가 있어요. 사춘기니까 물어보잖아요. 그러면 내가 이렇게 말해요. 그런 물음을 길게 가지면 안된다. 잠깐 갖고 움직여라. 길게 가지면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을 기쁨으로 누리는데는 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이. 뭔가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고 쓸고 닦고.
이런 것이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한다. 자기 존재를 들여다 보는 일에 너무 오래하지 말고 . 잠깐으로 끝내라. 왜냐하면 그런건 생산성이 없어. 생산성이 없으니까 실제적인 데서 기쁨을 누려라. 그렇게 하지. 내가 생각해봐도 난 나의 존재의 근원을 안쳐다 본단말여. 난 어릴 때 쳐다본거 같어 소년기때. 대체로 꼭같이 바라본거 같아요.
오랜 시간에 걸친 시인과의 대화가 끝났다.노동을 통해서 자신을 단련하면서 노동을 통해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연소시켜가는 시인의 삶에 대한 경건함이 느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이면우 시 <화염경배>를 생각하며 그의 일터를 나섰다.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 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 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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