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가수 안치환씨가 `한-일 기독청년공동연수` 참가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3.1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안치환의 오래된 팬들 혹은 적어도 안치환 자신은 그렇게 자리매김 되는 것이 억울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국의 노래판에서 그만큼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또 꾸준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곡을 부르는 가수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방송 매체와 집회장 양쪽에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이름이 바로 안치환 아니던가.
안치환에 대한 비난은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그가 '상업적 성공의 주위를 항상 기웃거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과 '음반이 항상 똑같아서 지겹다'는 이 두가지가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에 대해, 나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변명을 조금 늘어놓아 볼까 한다.
사실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뮤지션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남들이 자기 노래를 좋아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안치환은 누군가 취한 상태로 자신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는 걸 듣고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지금은 복개되어버린 도림천변에서 형들과 함께 안치환의 노래를 부르던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가수가 상업적 성공을 바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곡이 여러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면 상업적 성공은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차라리 그의 성공은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그의 노래때문이라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 노래와 발라드 곡을 넣어서 인기를 얻은 것을 비난할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인의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고, 발라드라는 장르가 노래나 가수의 지향을 담지하지도 못할 진대, 그러한 비난은 어불성설이다.(그러한 비난이 비판이 되려면 먼저, 사랑 타령과 발라드로 점철된 한국의 대중 가요라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 하에 안치환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곡들을 통해 안치환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음반을 팔 수 있고, 다시 음반에 있는 다른 곡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상업적 성공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음악적 태도를 굽히면서 상업적인 것에 다가갔을 때 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이 부분에서 안치환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의 음반에서 상업적 의도를 가진 편곡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으며, 더우기 최근의 음반들에서 그가 음악적으로 조금 나태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의 음악이 항상 똑같아서 지겹다라는 것은 누구보다고 안치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안치환은 다섯번째 음반인 리메이크 앨범 'Nostalghia'(1997)를 내놓을 때까지는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있고, 우리는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는 1, 2집에서 숱한 민중가요 명곡들을 불렀고 민중가요 계에서는 확고히 자리매김을 했지만, 그 때까지 그는 대중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3집 'Confession'(1993)을 통해서야 비로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종 산물인 앨범만을 놓고 볼 때, 그는 3집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 고집을 고수하기 보다는 다소간 절충적인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상업적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안치환은 다시 1, 2집을 녹음하여 한장의 CD로 내놓는다.)
하지만, 3집을 내놓고 가진 그의 라이브 공연 팸플릿에서, 그는 자신이 업고 다니는 무거움 혹은 엄숙함이 과연 진지함의 발현인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향후로도 상당 기간 그러한 고민을 짊어지고 가야 할 것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내놓은 4집 '너를 사랑한 이유'(1995)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안치환은 대중들에게 가수 안치환이 아니라 밴드 '안치환과 자유'의 보컬로 새롭게 등장한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해서 그는 민중가수에서 록커로의 변신을 시도한 것이며, 대중들은 그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라디오에서 '내가 만일'이 흘러 나오면서, 동시에 공연에서의 연주와 스테이지 매너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그리고 정말 다시 불려져야 한다고 느꼈던 곡들을 다시 부른 리메이크 곡 모음집 'Nostalgia'를 내놓게 된다. 이것은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겠다는 그의 선언이었다.
하지만 전작과 동일 선상에 있던 5집 'Desire'(1997), 그리고 다소 지리멸렬했던 6집 'I Still Believe'(1999)에 이어 최근에 나온 7집 'Good Luck'(2001)에 이르기까지 그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들만 모은 'Remember'(2000)와 'Live Best 01-02'를 내놓았지만 이 역시 'Nostalgia'만큼 당당하진 못하다.
최근 몇 년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우리시대의 목소리'라는 수식어를 거둘 정도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