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 행복한 베트남 여인

베트남인 '김완'씨와 형제실업

등록 2003.10.08 17:01수정 2003.10.08 20:40
0
원고료로 응원
한 주부 사원의 제보를 받고 득달같이 달려간 안양7동 형제실업. 드르륵 드르륵 미싱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인데 사원들의 손놀림만은 분주하다.

a 김완씨 부부

김완씨 부부

"집에서 부업하던 일감이 줄어 형제실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베트남에서 온 김완씨를 둘러싼 사랑과 관심이 피를 나눈 형제들 못지 않았어요. 대중 매체에서 외국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웠던 터라 귀감삼아 사장님과 동료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주부사원 조정숙(52·비산1동)씨의 제보 동기다. 이태호(44) 사장은 "기본적인 도리만 했을 뿐"이라며 취재를 극구 사양했다. 어렵게 인터뷰 허락을 받고 제보자와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곁에 있었던 김완씨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라인작업이라 자리를 비우기가 곤란했을 것"이라는 제보자의 말에 작업장으로 올라갔다.

스포츠 의류 공정에서 일하는 주부사원들은 다수가 3~40대. 그 틈에 20대로 유난히 왜소해 보이는 베트남 여인은 낮선 용모 때문에 금방 눈에 띄었다.

미싱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중앙에서 헤리(솔기를 감싸는 부분)박음질에 몰두하고 있는 김완(25)씨는 직원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막내로 회사에서는 와니로 불리고 있다. 미싱소리를 음악삼아 일하는 그녀의 얼굴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a 작업중인 이태호 사장

작업중인 이태호 사장 ⓒ 김재경

와니씨 뒤에서 미싱작업을 하던 신동국 이사는 "와니씨는 아주 성실하고 책임감이 대단해요. 처음엔 무슨 말을 해도 어림잡아 눈치로 '네'하고 대답만 할 뿐 의사 소통이 안 돼 힘들었지만 작은 실수는 모두가 웃음으로 넘기지요"라며 여전히 작업에 여념이 없다.

김완씨는 베트남 동료를 따라 2년 전 이 곳에 왔다. 이곳에서 6년째 일하고 있다는 이은자씨는 "김완씨를 줄곧 지켜보았는데 우리말이 다소 어눌하지만 붙임성도 있고, 지금은 뚱뚱한 동료를 돼지 같다거나 언니 미워, 예뻐 등의 가벼운 농담도 곧잘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고 말했다.

조정숙씨가 화분에 심었다며 따온 풋고추를 점심시간에 동료들끼리 함께 나눠 먹으며 하나를 권하자 '매워'라며 김완씨는 거절한다. 야들야들 보드라운 것을 골라 쌈장에 푸욱 찍어주자 이내 '맛있어'라며 활짝 웃는 귀염둥이다.


베트남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가끔 시무룩할 때면 조정숙씨는 "자신을 엄마처럼 생각해 달라"며 딸을 대하듯 마음을 도닥거린다.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고민은 많아요." 이태호 사장은 무역회사에 근무하다가 미래에는 기술이 최고일 것같은 생각에 17년 전 재단사로 이 회사에 입사했다. 경영자의 위치에 올랐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평탄치만은 않았다.


제일 맘이 아팠던 것은 금년 상반기에 일감이 없어 열흘 정도 휴업을 할 때였다. 사원들에게 70% 휴업 임금을 지급하지만 외국 근로자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다수가 돈을 따라 떠난다. 하지만 김완씨는 떠나지 않았다.

이사장은 한 달에 두 번은 사원들과 허심탄회하게 흉금을 터놓는 대화 시간을 갖는다. 얼마 전에는 밝게만 보였던 이 사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정이 생겨 봉급이 며칠 늦어질 것 같은데 입사해서 첫 봉급을 타는 사람과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 불안감이 생기듯 월급이 생명인 외국 근로자는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우리의 정서를 잘 모르는 외국 근로자에게는 제 날짜에 지급하도록 최선을 다 할 생각인데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경제불황으로 힘든 사장의 진솔함에 40여 명의 사원들은 서운함이 아닌 뜨거운 감동만이 울컥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하지만 봉급은 제 날짜에 나왔음).

형제실업은 브랜드 납품에 이어 최근에는 자체 브랜드 하이픈(HYPHEN) 스포츠 캐쥬얼 의류를 개발하여 출시하고 있다. 재단사가 별도로 있어야할 규모지만 이 사장은 직접 재단사로 일하며 사원들과 함께 생산 현장에서 땀흘리고 있다.

a 베트남 의상을 입은 김완씨

베트남 의상을 입은 김완씨

이 회사는 사장도 이사도 직함일 뿐 사원들과 함께 똑같이 생산 현장에서 땀 흘리는 동지다. 그러기에 사원들의 애로나 아픔까지도 쉽게 파악해 서너 명의 사원들이 힘들어하자 사장은 한의사에게 왕진을 요청하여 진료받도록 배려했다. 2차 진료 때는 사장이 손수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까지 가서 사원들은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와니씨가 입사했을 때 사장은 식사 때마다 맵거나 짜지 않은 계란후라이 등의 별식을 준비하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와니씨가 부담스러워 해서 중단하게 되었다. 서로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픔을 읽을 수 있기에 서로 신뢰하는 형제실업은 노사가 따로 없는 동지이자 가족일뿐이다.

작업장 내 사장실은 견본 의류가 즐비하게 걸리고 재단본이 수북하다. 말이 사장이지 영락없는 생산직 사원이다. 이 사장은 와니씨에 대해 "내국인과 능력에는 차이가 없고 성실하지만 늘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매사에 꼼꼼하며 건강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 사장은 사업차 외국에 나갔다가 우리나라에 체류했던 근로자들을 만났던 얘기로 말문을 연다. "베트남에 갔을 때 한 근로자가 이 통장을 맡겼는데요. 동대문에서 일하다가 사장에 의해 불법 체류자로 고발되어 강제 출국하게 되었다며 돈을 찾아 달라더군요. 하지만 통장에 있던 1천여만 원은 간 데 없고, 사업주는 전화번호까지 바꾼 상태였지요"라며 허탈해 한다.

여기에서 일했던 근로자들은 몽골과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국적도 다양하다. 몽골에 갔을 때 이곳에서 일했던 한 몽골인을 만났는데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로 본국에서 관광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잘 된다며 다음에 몽골에 오면 융숭한 대접을 하겠으니 꼭 찾아달라더군요" 이 사장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외국인이라고 특별하게 대한 것은 없고, 여느 직원과 똑같이 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디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게 바람입니다."

a 신동국 이사, 조정숙 제보자, 김완씨

신동국 이사, 조정숙 제보자, 김완씨 ⓒ 김재경

일에만 몰두할 뿐 좀처럼 인터뷰 시간을 내 주지 않기에 잔업이 끝날 무렵(21시40분 경)까지 와니씨를 기다렸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녀를 따라 나선 곳은 덕천시장 부근의 다세대 주택 지하방이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남편 니엔(32)씨와 그녀에겐 비좁지 않은 에덴동산이었다.

자동차부품 회사에 나가는 남편과 그녀는 사글세 방에서 알뜰살뜰 살면서도 수입의 일부를 시각 장애인인 할아버지와 부모님께 꼬박꼬박 송금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생활 중 제일 어려웠을 때는 "베트남에서 단기에 한국어를 배우고 왔지만 언어소통이 힘들었고요. 돈 벌려고 왔는데 일자리가 없을 때는 막막했어요"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와니씨와 니엔씨는 호치민 같은 마을에서 출생했다. 함께 성장했기에 서로 잘 알고 있는 양가 부모의 합의하에 약혼을 했다. 와니씨는 먼저 우리나라에 온 니엔씨를 따라 오게 되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약혼식 때 사랑하는 남녀가 마음을 합해 '까오 짜오'란 열매를 함께 따서 양가 부모님께 드린다"며 의식이 담긴 사진첩을 펼친다.

가족들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와니씨가 "맘(엄마) 보고 싶어"울먹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다정히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는 남편의 모습은 한쌍의 원앙처럼 정겹기만 하다.

이들 부부는 "동료들의 친절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밥과 반찬,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까지도 우리와 비슷하다"며 우리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한다.

부부는 고국이 그리워지면 전통의상을 즐겨입고, 베트남 동료들끼리 토요일 저녁이면 전화로 만남을 약속한다. 일요일이면 서울이나 군포 등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찾아 베트남 음식도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일상에서의 시름을 털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은 항상 덥고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요. 여기에 와서 펑펑 내리는 눈을 처음 보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하고 말하는 이들 부부는 다정히 데이트겸 덕천시장에서 찬거리를 사고, 김완씨가 밥을 지으면 니엔씨는 청소를 하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니엔씨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으레 와니씨 마중을 나온다.

동료들이 누구냐고 넌지시 물으면 주저 없이 '설랑(신랑)'이라고 대답하는 그녀다. 이들은 와니씨의 체류가 끝나는 내년 쯤 베트남으로 돌아가서 여기서 배운 기술로 취업(한국인 사업장)할 꿈에 흠뻑 젖어 있었다. "고국에 간다해도 친절했던 한국인의 인정과 사랑, 알콩달콩 살았던 추억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며 활짝 웃는 이들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는 발길이 가볍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2. 2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3. 3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4. 4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5. 5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