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탈이데올로기 아니다, 맑스 교훈 지금도 유효" | | | '240만원짜리' 강의하는 지젝의 매력 | | | |
| | ▲ 강연이 끝난 뒤 지젝이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박형숙 | | 7일 지젝의 첫 강연이 있던 서울대 박물관 강당은 일찌감치 모든 좌석이 찼고, 계단도 모자라 서서 보는 사람들까지 총 350명 가량이 강연장을 메웠다.
'실제의 열망, 가상의 열망'이라는 주제의 지젝 강연은 3시간 가량 이어졌고, 질의응답과 사인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시간은 더 지연됐다. 더욱이 지젝은 말이 많았다. "주변의 사례를 동원해 설명하는데 거의 천재적인 재능가"라는 말처럼 지젝은 미리 배포된 강연문을 벗어난 즉흥적인 말들을 토해내 통역자의 정신을 빼놓았다.
지젝의 고급독자층(헤겔, 라캉, 프로이트 연구자)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젝을 찾는 사람들'이 꼽은 그의 매력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해준다"는 데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들쑤셔 놓는다는 것.
가령 이날 강연회에서 지젝은 행복의 개념을 "우리가 진짜로는 원하지 않는 대상을 꿈꾸는 위선적 행위"라고 뒤집었고, 또 관용은 "타자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의지로 수용이나 포용이 아닌 보호와 경계의 심리"하고 못박았다. 따라서 제3세계 기아에게 매달 3달러를 기부하는 것은, 기실 제3세계를 내 현실 저 편에 묶어두려는 행위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젝 강연일정을 관리하고 있는 김선욱 교수(숭실대. 정치철학)는 지젝의 매력에 대해 "헤겔, 맑스, 프로이프, 라깡 등의 어려운 이론들을 영화, 만화, 일상영역의 대중코드로 설명한다"는 점을 들었다. 김 교수는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말도 있지만(물론 한반도는 예외) 지젝에 따르면 단지 그렇게 보여질 뿐, 이데올로기는 일상 속에서 인간행동의 틀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령 지젝의 그 유명한 '변기'의 예를 들면, 미국·독일·프랑스의 변기구조가 다른 것은 각각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했기 때문. 가령 독일의 변기는 변이 떨어지는 걸 앞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독일인의 사변적·형이상학 태도를 반영한 결과라는 얘기다. 지젝은 "이데올로기는 전처럼 강압적이지는 않아도 우리의 일상적 삶에 녹아들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김선욱 교수는 지젝에 대해 "동구권 몰락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화 체제 내에서 저항의 동력을 찾아내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고 평가하면서, 오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소프트혁명의 시대'를 주목하라고 권한다. '소프트혁명'이란, 가령 영화기술의 발전처럼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실제(제3세계 전쟁)를 가상(영화)으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따라서 실제는 "어떤 악몽의 출현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는 장면이 단적인 예다.
지젝은 이날 강연회에서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금이 탈이데올로기 시대라고 전혀 생각지 않으며, 맑스의 교훈대로 이데올로기는 추상적 사상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실제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주도의 이데올로기에 좌우된다는 점을 덧붙였다.
한편 지젝 학문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라깡 등에 대한 출판 인프라가 빈약한 우리네 인문학 풍토에서, 그들을 '뛰어넘는' 지젝에 대한 과도한 열광은 또 다른 '지적패션'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5강좌를 하게 되는 지젝의 강연료는 약 1만 달러(우리 돈 1200만원). 인구 200만명, 국민소득 1만불의 슬로베니아 출신 지젝(55)은, 현재 류블랴나대학 교수로 적을 두고 있지만 학생들은 가르치지 않고,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로 돌면서 강연과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 박형숙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