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가지 양념도 아깝지 않아요"

[인터뷰]신림동 떡볶이 아줌마 정은수씨

등록 2003.10.10 03:16수정 2003.10.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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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아, 무엇을 줄까?"
"천사야, 넌 뭐 먹을 거니?"


그곳에 가면 누구나 이쁜이요, 천사가 되는 집이 있다. 떡볶이와 튀김 순대 등으로 학생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는 정은수(42)씨.

a 언제나 활짝 웃는 정은수씨

언제나 활짝 웃는 정은수씨 ⓒ 정희경

신림동 중앙시장 골목에 위치한 정씨의 가게는 늘 와글바글 줄을 서야 한다. 특히 세상 걱정 하나도 없는 듯 "아 행복해"를 입에 달고 사는 맑고 건강한 웃음을 보며 그녀의 사는 모습이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능력이라도 남에게 베풀며 살고자 한다"는 정씨는 단지 학생들의 먹거리만 요리해서 파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까지 베풀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하지요"라고 말하는 정씨는 마음으로 다가설 때 소위 '문제아'(그녀는 '마음이 외로운 아이들'이라 표현했다)들도 어느새 천사 대열에 서게 된다고 자신했다.

그곳은 간판이 없다. 백만 원이 넘는 간판을 다느니 차라리 그 돈 아껴서 학생들에게 더 좋은 재료로 더 많이 주겠다라는 생각이 먼저라서 간판을 달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많이 퍼주는 집' '맛있는 집' '예쁜이 아줌마집' 등으로 그 지역 학생들끼리는 다 통한다.

"우선 맛있고요, 항상 친절하게 좋은 말씀도 많이 해 주시고, 신세대 용어도 막 쓰시는 게 친근감이 들잖아요."
이것이 늦은 시간 귀가길에 들러 친구들과 떡볶이와 순대를 먹고 있던 신세욱(신림고2)군이 말하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단골 이유이다.


"내가 집에서 혼자 해 먹으려면 그렇게 많은 30가지 이상의 양념을 넣을 수가 없지요"
떡볶이 먹고 감기가 나았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을 때, 말썽쟁이 학생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그때 먹던 떡볶이의 감사함을 꽃다발로 한아름 안겨 줬을 때 '삶이 이런 거구나! 더 베풀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는 정씨의 떡볶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겨울이면 추위를 막느라 8개의 조끼를 껴 입어야 하고, 여름이면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전신이 흠뻑 젖기도 한다. 또 아이들의 실수로 펄펄 끓는 튀김 기름 에 손을 넣어 가게 문열고 처음으로 때 아닌 휴가(?)를 즐긴 적도 있다. 유독 그 집만이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탓에 주위의 다른 가게들의 시샘도 받지만 "누가 날 미워하는 만큼 그 사람의 복이 내게로 돌아온다"며 웃음으로 맞받아치는 정씨의 밝은 표정이 처음부터 타고난 성품은 아니었다.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린 정씨는 한쪽 다리가 몹시 불편하다. 철없던 친구들의 놀림은, 그녀를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소녀로 자라게 했다. 운동장에서 맘껏 뛰노는 동무들을 창너머로 막연히 바라보며 자신을 비관해야 했고, 학생들을 들뜨게 했던 소풍은 불편한 다리로 인해 한번도 따라 나서지 못했던 아픔이었다.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고 평가 하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강한 엄마 낙천적인 엄마로 되기까지는 결혼과 두 아이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엄마요? 몸도 불편하신데 늘 즐겁고 성실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워요."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또 다음날 준비 때문에 자녀들 아침조차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엄마에 대해, 미성중 3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자랑이다.

아픈 다리로 하루 12시간 이상 서서 일을 하는 정씨에게 작은 소망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것. 또한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청소년문화공간'을 마련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마음껏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는 터를 마련해 주고 싶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요리책을 보며 늘 연구를 하고 있다"는 그녀의 집념에서 반드시 꿈은 이루어 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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