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36

세상에 이럴 수가…! (5)

등록 2003.10.10 13:18수정 2003.10.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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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은 발굽의 뒷쪽 제구(蹄球)라고 부르는 부위에 외상으로 인한 염증 즉, 제구염(蹄球炎)을 앓고 있었다.

제구의 내부에는 발굽의 형태를 유지시키고 달릴 때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제연골(蹄軟骨)이라는 연골이 들어있다. 이것은 말이 달릴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는 없으나 마방(馬房)에서 뒷걸음질치다 외상을 입었는데 이를 방치하여 생긴 질병인 듯싶었다.

초기에 눈치챘다면 금방 치유되었을 것이었으나 보살피는 사람이 안목이 부족하거나 정성이 부족하여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만일 연골에까지 염증이 퍼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도 있는 질병이다.

"하하! 녀석, 걷는 데 불편했겠구나. 하지만 걱정 마라. 내가 누구냐? 제구염 따위는 금방 고칠 수 있단다. 그러니 걱정 마."

이회옥이 부드럽게 다독이며 중얼거린 말대로 제구염은 금방 호전되었고, 불과 한 달만에 전처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비룡을 보살피고 있던 이회옥은 누군가 들어서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마방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노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은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 영롱한 음성이 들리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호호호! 역시 여기에 계셨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엇! 누구…?"

"호호! 당주의 사면 복권과 승차(陞差)를 감축드려요."

"아니! 당주께서 여긴 어떻게…? 그, 그런데 승차라니요?"

화들짝 놀라며 일어선 이회옥은 서둘러 포권을 취했다. 빙화 구연혜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늘 걸치고 다니던 백의 경장 대신 화사한 궁장을 걸치고 있어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하였다.

백의 경장을 걸치고 있을 때에는 싸늘해 보였지만 연자색 궁장을 걸치고 있으니 마치 피어나는 한 송이 장미처럼 너무도 요염해 보였던 것이다.

"호호! 성주께서 공석이 된 철마 당주 자리에 이 공자가 적임이라 하시면서 사면 복권에 이어 승차를 결정하셨어요. 다시 한번 감축드려요."

"예에…? 그게 무슨…?"

이회옥은 잠시 어리둥절하였다.

사실 살인죄로 하옥되어 있던 자신을 가석방하여 행동이 자유로워진 것만으로도 대단한 특혜였다. 그런데 사면과 복권에 이어 승차까지 시켜주었다고 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본녀와 같은 당주가 되었으니 앞으로 잘해봐요."

"……!"

"호호! 철마당에서는 지금쯤 당주 취임식 준비가 되고 있을 거예요. 오늘은 그렇고 내일 저녁 저희 형당으로 한번 와 주세요. 이 공자님의 사면 복권과 승차를 감축하는 의미에서 철마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에서 조촐한 연회를 준비했어요. 아셨죠?"

"……!"

"호호! 그럼, 오시리라 믿고 소녀는 이만…"

"……!"

빙화는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회옥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일행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허공엔 연한 사향 냄새가 맴돌고 있었다. 방금 전 빙화가 왔다 갔다는 증거였다.

'사면…! 복권…! 승차…?'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멍해있던 이회옥이 정신을 차린 것은 빙화가 사라지고도 거의 반각이나 흐른 뒤였다. 그만큼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날 당주 취임식에 참석했던 이회옥은 생애 처음으로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톡톡히 깨달았다.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도록 술을 마신 결과였다.

다음날 형당을 방문하였던 이회옥은 자신이 어떤 연유로 당주에 임명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무림천자성 역사상 사면 복권과 동시에 승차된 인물은 전무하였다. 하여 다른 당주들도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어찌된 영문인지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 의문을 풀어준 사람은 빙화였다.

방옥두가 하옥된 후 성주인 철룡화존과 제일호법 조경지는 차기 철마당주로 누가 적합한지 결정하기 위하여 여러 인물을 물망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했다고 한다.

이때 부친에게 문안을 여쭈려고 갔던 빙화가 우연히 동석하게 되었기에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철마당주가 되려면 첫째 말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말은 기동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기동성은 전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따라서 말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자칫 전력(戰力) 손실과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철마당의 여러 인물들이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그만그만하여 결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둘째는 당주와 조련사들 간의 유대 관계가 어떠냐는 것이었다. 새로 당주될 사람이 철마당 내에서 신망을 잃은 인물이라면 제대로 통솔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는 파벌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생김생김이 다르고, 음성이 다른 것처럼 호불호(好不好) 또한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뭉치기 마련이고, 다른 것을 선호하면 배척하려는 습성이 있다.

철마당도 마찬가지인지라 세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

따라서 누구에게도 배척 당하지 않는 사람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여러 인물들에 대한 하마평(下馬評)이 오가는 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던 빙화가 이회옥을 화제에 올렸다.

철룡화존은 그가 누구냐고 물었고, 빙화는 살해 용의자로 수감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이에 어찌 살인범을 당주 같은 고위직에 임명하느냐는 반문이 있었다.

빙화는 이회옥이 살인 용의자로 수감되어 있다고는 하나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정당 방위였을 것이라 하였다.

사건 현장에 배루난의 병장기인 무적검은 있는 반면 이회옥이 애용하는 장봉이 없었던 것이 그 이유라고 하였다.

있다면 무적검에 의하여 현장에서 만들어진 죽창이 있을 뿐이었다. 이는 이회옥이 비무장 상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를 살해하려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병장기를 챙겼을 것이다. 그래서 정당방위였을 것이라 말한 것이다.

철룡화존의 시선을 받은 조경지는 철마당에 많은 조련사들이 있으나 어느 누구도 이회옥의 말 다루는 솜씨를 능가할 수 없다면서 비룡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조경지의 장단에 힘을 얻은 빙화는 형당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회옥이 철마당의 부당주 재직할 당시 수하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기에 신임 당주가 된다 하여도 일체의 알력이 발생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한동안 누구를 차기 당주에 임명할 것인가를 고심하던 철룡화존은 이회옥을 사면 복권함과 동시에 승차시킨다는 전무후무한 인사 결정을 내렸다.

여기엔 빙화의 영향력이 가장 큰 셈이었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이회옥은 여전히 하옥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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