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금박무늬의 삼회장저고리김상욱
더운 여름에 주로 입는 적삼. 당시에는 아무리 더운 삼복더위라 하여도 반드시 속적삼을 받쳐입었다. 또 겨울에는 속적삼 위에 속저고리와 겉저고리를 입었다고. 모시로 만든 분홍적삼은 주로 새색시들이 입었던 것이라고 한다. 시집살이에서 속시원하라고 한겨울에도 모시적삼을 입었다니 당시 시집살이가 많이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 결혼을 한 사람은 노랑저고리에 남색치마를 입었다. 자주색고름은 남편이 있는 부인, 남색끝동(소매끝)은 아들이 있음을 나타냈다. 그런가하면 금박무늬는 왕가, 귀족들이나 새길수 있었던 문양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럭셔리'를 상징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양반이 급격히 늘어나는 조선후반에 가면 일반인들도 금박무늬를 옷에 새길수 있게 됐다.
저고리가 급격하게 짧아지면서 속살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인네들은 치마허리를 둘렀다. 젖가슴이 드러나면 대단히 부끄러워하는 요즘과는 달리 당시에 젖가슴은 다복(多福)과 다산(多産)을 상징했다. 때문에 과감했던 미니저고리(?)의 등장도 가능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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