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곡물자급율은 33%. OECD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27위이고, UN 가입국 175개국 중 119위에 불과하다.오마이뉴스
수입국 2위 한국... 곡물은 미국, 채소는 중국에 의존
우리나라의 곡물수입의 미국 의존도는 60%에 달한다. 이러한 사정은 IMF 외환위기 때 여실히 드러났다. 밀가루 가격이 70% 이상 상승하자 빵가게는 일찍 문을 닫았고 수입에 의존하는 사료를 감당할 수 없어 농민들은 가축을 '정리해고' 해야 했다. 곡물은 생산이 1%만 줄어도 가격이 47%나 폭등할 정도로 민감한 상품인 것이다.
특히 문제는 쌀이다. 우리나라가 소비하는 쌀품종은 자포니카계로 미국과 중국이 주로 생산하고 있지만 세계교역량은 우리 소비량의 1/3 불과하다. 올해와 같은 '최대 흉년'이 들어도 재고가 있어 만회할 수 있지만 쌀 시장이 개방된다면 중국과 미국의 사정에 꼼짝없이 놀아나게 된다. 밀과 옥수수의 자급율이 3%도 안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나마 쌀이 있어 곡물시장에서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소의 김태곤 연구위원은 최근 거대곡물기업의 동향에 대해 "인위적인 개입은 줄었지만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수송기술의 발달과 시장정보의 공개, 그리고 중국과 남미가 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일방의 가격주도는 다소 약화되었다는 분석이다. 그것은 이번 칸쿤협상 때 미국·유럽연합과 중국, 남미, 인도 등이 주도하는 개도국연합의 힘겨루기로 드러났다.
"중국이 수입국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나 자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0.5% 정도를 수출에 할당하고 있다. 작년 미국과 캐나다가 냉해로 수출물량을 줄였을 때 중국이 상승한 국제가격을 노리고 수출량을 늘렸다. 하지만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중국곡물은 가격, 품질면에서 미국에 경쟁력이 떨어진다. 최근 중국이 채소위주의 농업구조조정을 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다. 그렇게 되면 곡물에 있어 중국, 대만, 일본, 한국은 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수입시장을 다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곡물은 미국, 채소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김태곤 연구위원은 95% 이상을 내주고 있는 우리나라 식량사정에 대해 "쌀 이외의 품목은 거의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을 예로 들었다. 생산방식이나 농가규모, 품질, 자급율 등에 있어 우리와 가장 형편이 유사한 일본은 세계 1위의 곡물수입국. 그 뒤를 한국이 잇고 있지만 일본의 농업정책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일본은 식량자급율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법제화했다. 일본의 자급율은 28% 수준인데 '식료농업농촌기본법 기본계획'에는 2010년까지 자급율을 45%로 높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곡물뿐 아니라 야채, 과일, 음료까지 포괄하고 있다. 개방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자급율을 높이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식량위기에 대한 일본국민의 여론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다."
자급율 법제화만이 대안, 일본 여론업고 농업지키기 나서
일본은 우리와 같은 수입국이기는 하지만 처지는 다르다. 미국 시카고의 선물시장에 뛰어들어 유통에 적극 개입하고 있어 순수입국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여론과 제도가 뒷받침하고 있기에 사정은 우리보다 심각하지 않다. 사실 우리도 자급율에 대한 법제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농업기본법개정 당시 자급율 목표치를 명문화하려 했지만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부담으로 농림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도 있다"고 농림부 고위관계자는 귀띔한다.
농민계 역시 식량자급율의 법제화를 개방국면의 시급한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한농연의 김휘승 대외협력실 차장은 특히 "쌀 개방 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상에서 '밀리기' 전에 우리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 정부의 대책은 거의 '무대책의 대책'에 가깝다. 공산품 팔아서 그 돈으로 사먹으면 된다라는 개방논리로 가고 있다. 80년대 냉해피해가 났을 때 미국의 곡물을 5배 이상 가격으로 사들였다. 일본쌀을 사려고 했지만 미국의 압력으로 그랬던 거다. 또 IMF 시절 뜨거운 맛을 보지 않았나."
이에 대해 농림부는 법제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개방 전'에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즉 개방협상이 어떻게 이뤄질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섣불리 목표치를 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농림부 식량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관세가 유예될지, 또 어떤 수준에서 관세가 정해질지, 의무수입량은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지 않나"라고 반문한다.
"미국과 일본 등은 법제화하고 있지 않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농림부 관계자는 "강대국이 하는 걸 어쩌겠나"라고 말해 농산물 개방협상에 있어 힘의 논리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학교급식에 우리농산물을 사용토록하는 급식법개정에 대해서도 "WTO 규정의 내국민 보호조항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최근 나주시는 지방자치조례로 급식법개정을 했지만 이 같은 시비로 인해 우리농산물을 '우수농산물'이라고 표현을 바꾸기도 했다.
농민계가 급식법 개정을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농산물 수요를 늘리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권을 높이자는 취지다. 쌀을 제외하고 90% 이상 외국농산물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우리 곡물을 접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특히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의 입맛과 건강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갈수록 곡물마피아의 거만은 더해가 "우리가 세계를 부양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식량위기는 GMO(유전자변형식품)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유럽연합은 GMO식품의 수출을 허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힘없는 나라의 식량위기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
이처럼 거대 곡물기업에 의해 우리의 밥상, 나아가 농업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이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을 두고 '국수주의'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개방론자들은 이에 대해 솔직한 대답을 내놔야할 것이다.
| | 인사교류 통해 정부와 교감... WTO에 미국입김 반영 | | | 미국 곡물메이저 장악력 어디까지인가? | | | |
세계농업경제 전문가인 박진도 교수는 거대곡물기업의 특성에 대해 "철저한 자유시장무역"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가격 및 소득지지정책에 대해 비판적인데 농수산물 가격지지는 미국의 농산물시장가격을 상승시켜 수출을 저해하고 정부주도의 농산물 수출은 그들의 사업영역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농업정책'을 쓰는 유럽연합은 미국과 곡물기업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가 가트라운드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유럽공동농업정책을 공격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처럼 국내외 농업정책의 자유화라는 미국의 입장은 곡물메이저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칸쿤협상 때 미국은 개도국의 저항에 맞서기 위해 유럽연합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박 교수는 "거대곡물회사는 미국 농무성과의 인사교류, 정책입안, 로비 등을 통해 세계곡물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예로 카길사의 부회장이었던 윌리엄 피어스는 케네디·닉슨 양정권의 통상교섭 특별대표대리를 하였고, 닉슨정권의 농정차관이엇던 크라렌스 팜비는 콘티넨탈사(이후 카길이 인수합병)의 부사장으로 취임한 바 있다.
또한 팜비의 후임차관인 브란트헤이버는 곡물메이저의 하나였던 쿡크·인터스트리사 출신이고 1972년 국무차관인 사뮤엘스는 드레퓌스사의 사장으로 취임했고, 농무성 수출부장이었던 메리만은 드레퓌스사로 전출되었고, 그 후임 샨그린은 분게사의 워싱톤 지사장이었다.
이어 박 교수는 "곡물메이저들은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커다란 수출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드러난 것보다 크다"고 말한다. 프랑스는 세계 3, 4위의 밀 수출국인데 프랑스의 최대의 밀 수출상사는 카길사이다. 1973, 1974년 5대 곡물상사는 EU시장의 밀과 옥수수의 90%를, 캐나다의 보리수출의 90%, 아르헨티나 밀 수출의 80%, 오스트레일리아의 옥수수 수출의 90%를 차지했다.
카길 지사는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데 미국에 대한 우리의 곡물수입 의존도는 60%에 달한다. / 박형숙 기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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