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선생을 만나러 간 아이들

현장학습 의미 살린 삽교초등학교의 가을 소풍

등록 2003.10.14 15:21수정 2003.10.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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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옛날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은 아이들에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옛날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은 아이들에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장선애
“저기 제비집 봐” 흥부와 놀부 이야기 속에서 만났던 제비집을 오늘 이렇게 보겔 될 줄이야.
“저기 제비집 봐” 흥부와 놀부 이야기 속에서 만났던 제비집을 오늘 이렇게 보겔 될 줄이야.장선애
















“와, 저기 까치집이다.”
“어디, 어디?”

“얘들아 저건 까치집이 아니라 제비집이란다.”
“아, 놀부가 다리 부러뜨린 그 제비네 집?”

지난 9일 충남 예산군에 있는 추사 고택 안채는 소풍 나온 삽교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로 소란스러웠다.


한참 절구와 옛날 살림에 대해 설명하던 1반 담임 함경진 교사는 제비집을 발견하고 신기해 하는 아이들에 맞춰 자연스레 얘기의 주제를 바꾼다.

시골에 살아도 보기 어려웠던 제비집이 마냥 신기한지 “제비집이 저렇게 작아요?” “어떻게 만들어요? 풀로 붙여서 지어요?” 질문이 쏟아진다.


야외공간이어서 목청을 한껏 높인 함 교사는 아이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주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화순옹주묘를 지나 홍문을 거쳐 백송으로 이동하면서 아이들은 제법 아는 소리를 한다.

전날 학교에서 예비학습이 있었던 데다 이미 한번 이곳을 와본 아이들이 서로 아는 체를 하면서 마냥 즐겁다는 표정이다. 교실에서 배운 지식이 실물로 직접 보며 느끼는 현장학습에서 확인되는 순간 아이들의 반응은 백송 앞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림주인은 어딜가고 백송 한그루만 스케치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날 삽교초 1학년 학생들의 마음에는 천연기념물인 흰소나무가 한그루씩 심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림주인은 어딜가고 백송 한그루만 스케치북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날 삽교초 1학년 학생들의 마음에는 천연기념물인 흰소나무가 한그루씩 심어졌는지도 모른다.장선애
“와, 진짜 하얗네.”
“그런데 이파리는 안 하얗다. 초록색이야.”

이미 백송 앞 잔디밭에는 먼저 도착한 2반 친구들이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아이들이 김밥과 음료수, 과자를 욕심껏 채워 넣었을 두둑한 소풍가방 외에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있다.

“자 여기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 다 그리고 김밥 먹자.”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흰 도화지에 흰 소나무 한 그루, 옆 과수원의 사과나무, 파란 가을하늘을 그려 넣는 손놀림이 바쁘다.

한쪽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림 그리기는 뒤로하고 잔디밭 위를 구르는 개구쟁이들도 눈에 띈다.

자연과 어우러져 자유롭게 뛰놀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살아 계셨다면 아이들의 높고 맑은 웃음소리에 따라 빙그레 웃을 것만 같은 가을날이다.

“오늘요. 내가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우리 엄마 깨웠어요.”
“저는요, 너무 신나서 잠이 안와서 밤에 자꾸 눈이 떠졌어요.”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났더니 배 고파요.”

신이 난 아이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과자와 사탕을 선생님 손에 쥐어드린다.

“김밥은 역시 야외에서 먹어야 제맛이지” 새벽 일찍 일어나 예쁜 모양으로 싸느라 애썼을 엄마들의 정성은 볼이 미어져라고 입에 넣고 달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완성된다.
“김밥은 역시 야외에서 먹어야 제맛이지” 새벽 일찍 일어나 예쁜 모양으로 싸느라 애썼을 엄마들의 정성은 볼이 미어져라고 입에 넣고 달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완성된다.장선애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

워낙 걷지 않는 현대인의 환경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리 많이 걷지 않았는데도 “다리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던 아이들은 김밥을 ‘뚝딱’ 해치우고 너른 잔디밭에서 뛰어 논다.

선생님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다시 모인 아이들의 오락시간.

전통의 수건돌리기가 시작된다. 마땅한 수건이 없어 흰 모자로 대신해 ‘모자돌리기’가 됐지만 둥근 원으로 둘러앉은 아이들의 뒤를 슬며시 도는 술래나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자신의 뒤에 모자가 놓인지도 모르고 앉아 있다가 끝내 원안으로 불려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든 뭐든 하나를 해치우고 술래가 되고 마는 규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제 소풍이 아니라 현장학습이라고 부르면서도 거의 모든 학교가 멀리 놀이공원으로 가는 게 당연시 되고 있는 요즘의 풍토이기에 오히려 전통의 소풍 방식에, 그야말로 현장학습의 요소가 가미된 삽교초등학교의 가을소풍은 신선하기만 하다.

이날 추사 고택에서 만난 1학년 2반 강태휴 교사는 “사실은 제가 1학년은 하루 그냥 신나게 놀게 에버랜드로 가자고 주장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반대하셨어요. 추사 고택은 와본 아이들도 많고 너무 가까워 실망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까 좋네요”

소풍프로그램으로는 수건돌리기가 제일이지. 앗 그런데 수건이 모자가 된 사연은?
소풍프로그램으로는 수건돌리기가 제일이지. 앗 그런데 수건이 모자가 된 사연은?장선애
사실 이런 소풍장소는 교사들의 부담이 크다. 아이들을 인솔해 견학을 시키며 설명을 해야 하고 오락프로그램까지 마련해 진행하는 수고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삽교초는 3년전부터 이 방식을 고집해 오고 있다. 이 학교 출신으로 모교에 부임한 김광태 교장의 방침 때문에 시작된 일이지만 지금은 교사와 학부모, 아이들 모두 좋아한다.

실제로 올해 병설유치원의 경우 놀이공원과 추사 고택이 포함된 안을 갖고 학부모 여론조사를 벌였는데 압도적으로 ‘추사 고택’이 통과됐다고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때 왜 학부모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느냐”는 교장의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이날 추사 고택으로 장소를 선택한 병설유치원과 1학년의 경우 소풍 참가비는 없었다. 1인당 100원씩의 입장료는 담임교사들이 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갯벌체험을 마치고 돌아온 3, 4학년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마중나온 김광태 교장에게 바닷생물들을 보이며 자랑하고 있다
갯벌체험을 마치고 돌아온 3, 4학년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마중나온 김광태 교장에게 바닷생물들을 보이며 자랑하고 있다장선애
사전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와 학년별로 담임교사들끼리 장소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만 ‘저렴하고 학습적인 곳’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제는 교장과 교사, 학생들의 ‘코드’가 자연스레 맞는다.

이번 가을 소풍의 경우 2학년은 공주 자연학습장, 3·4학년은 갯벌체험과 석탄박물관 견학, 5·6학년은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다녀왔다.

김 교장은 “놀이공원 같은 데야 유치원 때도 가고 부모님들이랑 가기도 하는데 뭐하러 노다지(언제나) 가느냐.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수익 문화사업을 많이 벌이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면 교육효과도 있으면서도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풍장소가 많다”며 교장이 바뀐 뒤에도 이 같은 소풍문화가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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