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고발한다"

MBC 이상호 기자의 탐사보도, 그 어렵고도 험한 길

등록 2003.10.16 10:00수정 2003.10.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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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얼마나 정의로우십니까?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우십니까?
당신은 얼마나 당당하십니까?
당신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당당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조금만 우회적으로 살면 그 만큼 편하게 두 발 뻗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진실여부에 상관없이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 더 편한 것도.

a 이상호 기자

이상호 기자 ⓒ 이성현

MBC의 이상호 기자. 그의 이력은 무척이나 특이하다. KBS 슈퍼 탤런트 대회에 차태현, 송윤아 등과 같이 대회에 참가 했으며 본선 무대까지 나갔다.

그 후 MBC 기자로 입성, 사회부 기자로 일하다 뉴스데스크의 사회 고발 코너인 카메라 출동에 '자원'했다. 이후 그의 열혈기자 정신은 <시사매거진 2580>으로 이어졌고, 현재는 언론의 건강한 비판을 추구하는 <미디어 비평>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의 이력만 보아도 뭔가 '강한' 아우라가 그의 뒤를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그에게 있어서 보도를 한다는 것은 사회와 사람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이는 행위이다.

그의 기사 취재의 큰 틀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정착되지 못하고 있지만 미디어 선진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탐사보도에 그 기본을 두고 있다.

팩트(fact)를 통한 주관 형성

탐사 보도란 무엇인가. 미국 미주리대 '탐사기자 및 편집인 협회 " (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에서 내린 정의에는 "개인이나 조직이 숨기고자 하는 중요한 사안을 독자적으로 파헤치는 보도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 자체만 본다면, 모든 기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보도행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러한 탐사보도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심층적으로 깊게 사건을 파고드는 고발보다는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스트레이트 기사가 대부분이다.


탐사보도에 있어서 척박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보도 현실 속에서 이상호 기자가 탐사보도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게 된 것은 카메라 출동 때부터이다. 그 이후 20여 차례의 소송과 협박에 시달릴 만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아이템들을 보도해온 이상호 기자에게 있어서 탐사보도라는 것은 단순히 취재 방법의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일관되게 실천하는 한 가지 방편이며 언론인이 된 목적이기도 하다.

탐사보도만을 고집하는 그에게 있어서 취재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그 첫 번째 순서이다. '최규선 게이트'와 '연예인 노예계약과 PR비', ' 잘못된 족보' 등을 보도한 그에게 있어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은 제보와 취재 네트워크이다. 모든 신문사나 방송사에는 제보가 하루에도 수 십 건씩 들어온다. 실제로 제보들을 통해서 사실 확인 끝에 보도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에게 있어 제보라는 것은 한 순간에 독이 될 수도 있고, 기자의 문제의식을 흐리는 돌이 되기도 한다. 그는 항상 제보가 들어오면 제보자들과 긴 싸움을 하며 '의도의 순수성'을 파악한다. 제보자의 순수성을 간과한 채 단순히 제보자를 믿고 취재를 하다 보면 청부해결사의 역할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확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자에게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친 청부 해결용 보도만큼 악(惡)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아이템 선정, 수집 시 가장 중요한 장은 그 만의 취재 네트워크이다. 평상시에 사회ㆍ정치ㆍ문화 각 직업, 지역별 등의 사회적 단체와 그물망을 짜놓는다. 지속적으로 관계하면서 그물망을 공고히 한다. 그는 자신만의 취재 네트워크가 없으면 탐사기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아이템이 걸리면 더블체크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의미한 의제 설정에 들어가고 보도를 준비한다.

그렇게 취재를 시작해서 실제 보도에 걸리는 시간은 사건마다 다르다. 실제로 그의 사건 파일들이 모인 사물함을 보면 7~8년 동안 지속적으로 취재만 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몇 년만에 종료된 사건도 있다. 이 기자는 탐사보도의 기본은 사건의 종결성에 있다고 이야기 한다.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변혁을 이끌어 내고, 끝까지 그것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 나갔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취재를 하면서 파일을 채워 나가는 것이죠. 그러다가 결정적인, 전체를 부각시켜줄 팩트(fact)가 잡히면 방송을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사회변화 개혁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하는 거죠."

기자는 사회적 무당이다

a MBC <미디어 비평>을 녹화 중인 이상호 기자

MBC <미디어 비평>을 녹화 중인 이상호 기자 ⓒ 이성현

대한민국에서 탐사보도 기자로 살아가는 것은 꽤나 고달픈 일이다. 특히 출입처 제도가 깊게 박혀 있는 우리나라 취재 양태 속에서 탐사기자로서 외로움이 더한 것은 자명하다. <카메라 출동>과 <시사매거진2580>, <미디어 비평>을 해온 그가 기자로서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평탄한 길보다 어려운 길을 택한 그를 지탱해준 힘은 그만의 확실한 기자관에 있다.

"사실 사람이기 때문에 동료들이 부러운 때도 많아요. 하지만 사람은 선택한 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하소연도 들어주고 한도 풀어주고 사회적 권력자들을 감시하고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이 내가 기자된 이유입니다. "

그런 그만의 기자론이 바로 '무당기자론'이다.

"지금이야 무당의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지만, 예전에 무당은 종교적 역할 뿐 아니라 사회적 소통기제로서 큰 비중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입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다른 무엇과의 갈등해소에도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인류학적 의미에서 무당의 역할을 볼 때 언론의 역할이 무당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언론과 기자는 사회의 소통을 원활히 시켜주는 통로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시민이 권력을 위임한 대리인들과 권력의 원천인 시민들 간의 소통이 꽉 막혀 있는 것에 대해 사이비 무당 기자들이 판치고 있어 그렇다며 속상해 했다.

기자는 1인 NGO가 될 수 있다

기자에게 있어서 주관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기자가 갖는 건강한 주관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지만 어설픈 주관은 사회의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맥락에서 이상호 기자의 "기자는 1인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가 될 수 있다"는 발언은 조금은 이상해 보인다.

NGO가 갖는 속성상 기자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덕목인 객관성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호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기사를 보도함에 있어서 완벽한 객관 보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택적으로 사물을 보고 선택적으로 기사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사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죠. 아젠다(Agenda)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카메라를 들고 찍어도 그 카메라를 찍는 사람에 따라서 똑같은 장면도 다르게 나오듯이 기사 역시 그렇죠. 그러나 다만 중요한 것은 의제 설정을 하는 기자가 건강한 편향성을 가지고 과정의 보편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이템 선별에 있어서 주관성과 동시에 과정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그에게 기사를 만드는 특별한 2가지의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상식에 기초 한 것인가'와 두 번째로는 '사회적인 합의가 된 최소한의 정의관에서 나왔는가'이다. 사회적 상식과 정의관을 인식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팩트(FACT)에 의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도록 취재를 한다.

사실 이상호 기자가 기자는 1인 NGO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NGO, 언론, 정치발전'이라는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PR비 고발에 대한 두 번째 보도'를 하면서 NGO와 폭 넓게 만났다.

우선 기사가 얼마만큼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보도되는 사건이 왜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전 의사토론 과정을 통해서 시민단체의 동의를 얻어내며 보도가 나간 후 그것을 공론화시키는데 주력했다.

그는 단순히 언론이 사건을 보도하는 데에서 그 역할이 끝나버리면 언론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건을 그냥 보도하는 데에서 언론의 역할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그의 모습은 사회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휴머니스트와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고발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고발, 탐사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소송과 협박에 시달리게 될 것임을 예견한다. 또한 여러 제도들 사이에서 외롭게 떨어져 있을 가능성도 내포한다. 그 역시 그렇다. 그는 그 어떤 기자보다 소송과 친하게 지내왔다. 어떻게 보면 기사를 쓰는 것과 동시에 소송을 마음으로 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여 차례의 소송을 지나면서도 그의 소송 전과는 불패의 신화를 기록한다. 그는 추측이 아닌 진정한 팩트(FACT)에 의해서 보도를 하기 때문에 소송에서 질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에게 있어 기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며 시청자들을 대신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가는 사람이다. 또한 그에게 있어 기자는 비판적인 사람이다. 비판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화선을 제공하는 것이 그와 같은 기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원리 원칙보다는 정에 이끌리는 ’좋은 게 좋은 것’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사회에 대한 고발을 일삼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멈출 수 없기에, 그 애정이 짝사랑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오늘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정말 좋은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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