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책임, 이승만 전 대통령과 미군에 있다'

4.3은 공권력에 의한 집단살상

등록 2003.10.15 21:32수정 2003.10.1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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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진상조사보고서'(이하 4.3 보고서)가 사건 발생 55년 만에 최초로 정부의 공식 보고서로 채택됐다.

제주 4.3 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이하 4.3 중앙위원회)는 10월 15일 오후 5시 정부중앙청사 9층 국무총리 회의실에서 제8차 회의를 열고 1시간 40분간의 논의 끝에 보고서를 채택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보고서 채택 소식을 접한 4.3 유족회원과 (사)제주4.3연구소,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서 보고서 채택 소식을 접한 4.3 유족회원과 (사)제주4.3연구소,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제주투데이
이번 최종 의결은 회의에 참석한 4.3 위원 17명 가운데 3명을 제외한 14명의 위원들의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한광덕(전 국방대학원장), 이황우(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유재갑(경기대 교수) 등 위원 3명은 보고서 채택에 불만을 품고 위원직 사퇴를 표명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4.3에 관한 정부 최초의 공식 보고서

이날 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확정된 4.3 보고서는 특별법에 의해 작성된 최초의 '정부 진상조사보고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 사건 발생 55년만에 정부 차원에서 작성된 '4.3 종합보고서'로서 사건 배경, 전개 과정, 피해 등을 종합적으로 다뤘으며 인권 침해 규명 여부에 역점을 뒀다. 특히 4.3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으로 규정함으로써 대규모 인명 희생에 대한 책임을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귀결시켰다.

하지만 위원회는 보고서 서문에 "4.3 특별법의 목적에 따라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에 중점을 두어 작성되었고, 사건의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는 차후 새로운 사료나 증거가 나타나면 보완할 수 있다"고 밝힘으로써 차후 역사적 성격을 명확히 규명짓기 위한 여지를 남겨두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4.3 사건의 희생자 수를 희생자심사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2286명에 대해 심사, 2282명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그동안 두차례 전체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된 2778명을 더하면 지금까지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은 모두 5060명에 이른다. 또 이날 결정된 희생자 중 129명은 후유장애자로 선정, 총 의료지원금 3억5100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4.3 집단 살상 책임은 이승만과 미군에게

사실 이번에 확정된 보고서는 지난 3월 29일 6개월 유예 기간을 조건으로 발간한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내용은 다음 9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미군정기에 제주도에서 시작된 제주 4.3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집단 살상에 관한 책임은 당시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을 쥐고 있던 미군에게 있다.

2. 이승만은 1948년 11월 계엄령을 선포했고, 1949년 1월 국무회의에서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고 지시했으며 미군은 미군정하에서 미군 대령이 제주지구사령관으로 직접 진압 작전을 지휘했고,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한미군사협정에 의해 제주 진압 작전에 관여했는가 하면,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켰던 9연대의 작전을 '성공한 작전'으로 높이 평가했다.

3. 사건 발발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을 계기로 제주 사회에 긴장이 조성되고, 남로당 제주도당이 이러한 긴장 상황을 5·10 단독 선거 반대 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 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4. 이 과정에서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까지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이다. 그리고 김달삼 등 무장대 지도부가 1948년 8월 해주 대회에 참석, 인민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지지함으로써 유혈 사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판단된다.

5. 1948년 11월부터 9연대에 의해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강경 진압 작전은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하였다. 강경 진압 작전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고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다.

6. 9연대에 이어 제주도에 들어온 2연대도 제대로 된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즉결처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주민 집단 총살 사건인 '북촌사건'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 마을 주민 400명 가량이 2연대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한 사건이다.

7. 4·3사건에 의한 희생자 숫자는 여러 자료와 인구 변동 통계 등을 감안, 4·3사건 인명 피해를 2만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

8.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1만4028명)의 가해별 통계는 토벌대 78.1%, 무장대 12.6%, 공란(空欄) 9%이나, 가해 표시를 하지 않은 공란을 제외해서 토벌대와 무장대에게 희생된 비율만 산출하면 86.1%와 13.9%로 대비된다.

9. 연좌제에 의한 피해도 극심했다. 죄의 유무에 관계없이, 4·3 사건 때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희생자의 가족들은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활동을 제약받았다.

최종 보고서, 33건 의견 추가·삭제

이날 확정된 제주 4.3 보고서는 전체 수정 의견 376건 가운데 33건에 대한 의견을 새롭게 포함하거나 삭제했다. 유형별로는 표현 수정 및 첨삭 21건, 사실 관계 수정 및 첨삭 10건, 새로운 자료에 의한 내용 추가 2건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첫째, 1948년 11월 계엄령 선포 당시의 법령에는 국회 통고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의무 조항으로 표현한 내용을 삭제했다.

둘째, 국방경비법은 민간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데도, 이를 적용할 수 없다고 표현한 내용을 삭제했다.

셋째, 1950년 한국 전쟁 직후 미 대사관은 제주에서 무장대가 활동을 재개했다는 보고를 받자 시찰팀을 파견해 대책을 마련했다는 내용을 새롭게 추가했다.

넷째, 제2연대 선발대의 제주 도착 날짜를 수정하고, 2연대가 제주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날짜를 추가했다.

다섯째, 백조일손 희생자 시신 수습 날짜 수정했으며 '진상조사보고서 요약'을 '진상조사보고서 결론'으로 수정했다.

정부는 제주도민에 공식 사과해야

이번에 확정된 보고서는 차후 서문, 화보, 부록(4·3 일지, 참고문헌, 특별법령, 찾아보기) 등을 수정된 의견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보완해 오는 11월 말 출간할 예정이다.

또 정부 산하 4.3 지원단은 지난 3월 보고서 임시 채택 당시 정부에 건의한 7개항을 관계부처에 이첩해 본격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정부 건의 7개항은 다음과 같다.

1. 제주도민, 사건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사과
2. 정부 차원의 4·3 사건 추모기념일 제정
3. 4·3 진상보고서를 평화와 인권 교육 자료로 활용
4. '4·3 평화공원' 조성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
5. 생활이 어려운 유족에 대한 생계비 지원
6. 집단 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 사업 지원
7. 진상 규명 및 기념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6. 집단 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 사업 지원
7. 진상 규명 및 기념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제주4.3 재평가 되나
대통령 정부 공식 입장 표명 '관심'

55년 동안 감춰졌던 4·3의 진실이 정부의 공식 보고서로 채택되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공식 사과 수위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대로 제주 4·3 사건에 대해 과거 정부의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기로 일찌기 방침을 정한 바 있어 과거 혼란기에 발생한 4·3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재조명 또한 기대되고 있다. 더욱이 10월 30일 제주에서 열리는 평화포럼에 대통령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과 수위와 방법 등에도 다시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보고서 확정 이후 조치

50년 넘게 '반란을 일으킨 좌익 소탕을 위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관점에서 진실이 가려진 제주 4.3사건은 이번 정부 보고서를 통해 무고한 양민 희생과 정부의 책임이 명백히 가려졌다. 따라서 역사적 재평가와 함께 미약하게 진행됐던 희생자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보상 문제 등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제주 4.3은 이미 김대중 정부 때 4.3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정부차원의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희생자' 규정과 '명예 회복', '보상', '평화(위령)공원 조성' 등의 조치가 진행되어 왔다. 노 대통령이 공언한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은 이러한 흐름에 더욱 고삐를 당기게 할 전망이다.

특히 대통령의 사과 혹은 유감 표명은 4.3으로 인한 무고한 양민 피해에 대해 과거 정부의 연속성을 가진 현 행정 수반이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첫 사례임과 동시에 공권력 동원에 의한 국민 희생이라는 점을 공식 인정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4.3 단체의 줄기찬 '정부 사과' 요구

제주도 내 4.3 단체들은 그동안 세계 각국의 지도자가 인권 유린한 역사적 과오를 인정한 사례를 들며 4.3 사건에 대한 정부의 입장 표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실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98년 드레퓌스 사건 100주년을 맞아 공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을 사과했으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98년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해 노예 제도의 잘못을 사과한 바 있다. 또 크메르 루즈 지도자 키우 삼판과 누온 체아가 70년대 '킬링필드' 학살에 대해 98년 사과한 사례 등 역사의 진보와 함께 국가의 최고 수반이 직접 실천한 사례가 많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확정된 보고서에는 1948년 제주섬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 학살)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 같은 국제법이 요구하는 문명 사회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었으며, 국가 공권력이 법을 어기면서 민간인 살상 등 중대한 인권 유린과 과오가 있었다고 명백하게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는 "후세에 국가의 명예와 존엄성, 역사의 엄중함을 일깨우는 '역사 바로잡기' 차원에서도 조만간 대통령의 공식 언급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며 "단지 그 시기와 장소 등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라고 밝했다.

과연 '대통령 사과'는 어디에서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부터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에 대해 전면 재조사해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며 틈틈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유족 보상'을 다짐해 왔다.

이를 위해 청와대 비서실 정무(시민사회부) 행정관 관계자는 10월 12, 13일 도내 4.3 관련 단체 등을 돌며 의견수렴에 나서는 등 수순 밟기에 돌입한 상태다. 4.3 유족과 단체들은 "4.3 평화 공원에서 대통령의 공식 표명이 이뤄져야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제시했지만 청와대측은 당일 날씨 등의 문제를 고려, 고민 중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또 "평화 포럼 기조연설시 4.3에 대한 정부 공식 발언을 끼워넣는 것은 4.3의 역사가 갖는 중대성에 비춰볼 때 무게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15일 "현재로서는 4.3 평화공원, 평화포럼 행사장, 제3의 공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일각에서 우려하는 경호 문제는 어느 장소가 되든지 관계치 않고 있다"고 밝혔다. / 양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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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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