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유치원 감 따 먹으러 간 날

등록 2003.10.17 13:54수정 2003.10.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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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을하늘을 이고 있는 붉은 홍시.

가을하늘을 이고 있는 붉은 홍시. ⓒ 신영숙

가을날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하나.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주홍색 감들이 달려있다.

가을이면 언제나 아이들에게 감을 따주는 것은 내 마음의 선물이다. 유치원 뒷 산자락 밭에 감 따먹으러 가자는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누구랄 것도 없이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다. 전래 동요부터 TV에서 배워온 영어노래까지 쉼 없이 이어서 부르더니 감나무 밑에서는 모두 조용하다.

a 감나무 밑에 서 있는 아이들

감나무 밑에 서 있는 아이들 ⓒ 신영숙


감나무 밑에 서면 주홍색 감들이 가슴 뿌듯하게 하여 말을 잃게 한다. 사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서도 속으로 감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내가 딸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감나무 밑에 주인 아저씨가 가져다 놓은 긴 장대와 함께 빨간 홍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a 언니, 장말  맛있어? 진짜야?

언니, 장말 맛있어? 진짜야? ⓒ 신영숙

장대로 떨어뜨려, 고구마 잎에 절반쯤 깨져서 떨어진 것을 아이들 손에 주었더니 처음엔 모두 싫단다.

"어떻게 먹어요? 더러워요."
누리의 손에 주면서
"야, 이거 감 젤리야. 먹어봐."
하니 누리가 먹는 것을 모두 들여다 본다.
"와-. 맜있다. "누리의 한마디에
"나도 줘요. 나도 줘요."


다섯개의 감을 따서 나눠 먹으라고 하였더니 서로 먹여 주고, 먹고, 입가에 가득 감붓칠을 한다.


"주용이 손은 왜 그렇게 깨끗해?"
"선생님, 주용이는 안먹는데요." 주용이에게 "너만 안먹으면 감귀신이 주용이 잡아라.쫓아올텐데."

협박 아닌 협박을 하여 먹였더니 한입 먹은 주용이는 뒤늦게 하나 더 따달라고 조른다.


a "주미야, 나도 줘! 나도 줘!"

"주미야, 나도 줘! 나도 줘!" ⓒ 신영숙

"애들아, 다 먹었는데 선생님만 안먹었다.선생님도 먹고 싶어." 아이들은 자신들이 따 준다고 긴 장대를 휘두르고 돌멩이도 던져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는 인심쓰듯 "선생님이 따 먹어요." 라고 말했다.

아이들 앞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놈으로 골라 땄더니 흙이 많이 묻어있다. " 선생님만 맛있는 것 먹고 나빠요."

민준이 징징대면서 더 달라고 달려들었다. 민준이 먹으라고 줬더니 흙묻어서 싫다면서 선생님 다 먹으라고 말했다. 더 따달라는 아이들에게 다음에 감 따 먹으러 오는 사람도 먹게 남겨둬야 한다고 달래서 돌아왔다.

수돗가에 데리고 와서 감으로 범벅이 된 손을 씻어주고 있는데 감나무 주인 아저씨가 오신다. 도둑이 제발 절인다고 이렇게 이실직고 했다.

"아저씨, 말씀도 안드리고 우리가 감 다섯개 따 먹었어요."
그 말씀을 들으신 아저씨, 파란 가을 하늘 배경으로 빙그레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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