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핫! 이거 이 당주에게 잘못 보이면 큰일나겠는데?"
"큰일이 나요? 왜요?"
"왜긴 왜야? 본 당주가 보아하니 빙화 아가씨 아니 형당주가 이 당주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
"예에…? 하하하! 말도 안 됩니다. 핫핫, 말도 안 되지요. 형당주 같이 고귀하신 분이 어찌 소생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까? 하하! 이번엔 당주께서 잘못 짚으신 모양입니다."
"아닐세! 지금껏 내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네. 두고 보게. 조만간 형당주와 아주 가까워질 테니. 하하! 그나저나 그때가 되면 나를 잊지 마시게. 하하하!"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내기를 한다면 소생은 당주님의 이번 예감이 틀렸다는 데에 걸 겁니다."
"하하! 과연 그럴까? 하하, 난 이만 가네. 내일 또 보세."
"예! 내일 뵙죠."
철검당의 부당주였다가 신임 당주가 된 철완(鐵腕) 진병두(晉秉杜)는 환한 웃음을 지은 후 철검당 쪽으로 향했다.
이회옥은 무림천자성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겉이야 어떻든 속마음은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해 안달하는 아귀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특히 수뇌부에 있는 자들은 일반 대원들보다 훨씬 더 탐욕스럽고 악질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철완이었다.
지난 며칠 겪어본 바에 의하면 그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마음이 너그럽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며,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량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욕심이 있다면 자신의 손으로 지상 최강의 병장기를 만들겠다는 것뿐이다.
병장기를 제조해내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인덕 덕분에 철검당의 신임 당주가 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요즘 이회옥은 거의 매일 당주 회합에 참석해야 하였다. 조만간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마도 문파 가운데 하나를 박살낼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출병(出兵)을 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은 법이다. 그러려면 각 당 간에 유기적인 공조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회합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철검당 같은 당은 모든 병장기의 녹을 떨구고 날을 세워야 하기에 낮인지 밤인지 모를 정도로 바쁜 준비로 눈코 뜰 새가 없지만 철마당만은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이회옥이 당주가 된 이후 대완구를 비롯한 말들은 늘 최적의 상태에 있었으며, 안장이나 박차, 채찍 같은 것들도 완비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새롭게 준비해야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철마당에 당도한 이회옥은 습관처럼 마굿간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산책이라도 하듯 천천히 주청(酒廳)으로 향하였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기거하기에 무림천자성 곳곳에는 주청이 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동료애를 나누라고 준비되어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하나, 아주 유명한 곳이 있다. 백악루(百惡樓)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한때 무림천자성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비보전의 안가(安家)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을 백악루라 부르는 이유는 이곳에서 수많은 악행이 획책되었기 때문이다. 무림천자성이 오늘날과 같은 성세를 누리게 된 데에는 강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막대한 은자를 사용한 덕도 있지만 백악루의 밀실에서 꾸며진 음모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덕(德)이나 은자로 회유하는 것보다 제거하는 편이 훨씬 더 일이 수월할 것이다.
마음에 안 들면 죽여버리고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교체하는 편이 더 빨리 일이 해결될 뿐만 아니라 후환도 없기 때문이다.
백악루에서는 무림천자성의 뜻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실각(失脚)시키거나 암살할지를 꾸몄다.
하여 무림의 많은 명숙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비명횡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심지어는 백악루에서 꾸며진 음모에 의하여 사망한 사람 가운데에 무림천자성의 전대 성주들도 있다.
설사 성주라 할지라도 무림천자성의 이익에 반하면 암살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선무곡 사람이면서 무천서원의 전대 원주였던 무궁공자 이위소도 있다.
그로 인하여 천뢰탄 제조비법이 선무곡으로 새어나갈까 두려워 사고를 위장한 암살을 자행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백악루는 현재 주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무림천자성 내부의 사람들보다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한때나마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기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앗! 당주께서 친히 이곳을… 영광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백악루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은 취소입니다. 그런 건 없거든요. 헤헤헤!"
호객행위를 하던 점소이는 이회옥이 걸친 의복을 보고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그의 가슴에 수놓아진 황금빛 장검이 그가 당주급이라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하! 이렇게 환대를 해주어 고맙네. 본 당주는 백악루가 처음이네만 이곳에 전망 좋은 창가 자리가 있다면서? 구경한번 하고 싶은데 어떤가? 자리는 있는가?"
"헤헷! 물론입죠. 없으면 만들어 드리기라도 할 테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하핫! 고맙네. 자, 이건 자네 용돈이나 하시게."
"헷! 뭐 이런걸 다… 헤헷! 고맙습니다요. 자, 이쪽으로…"
이회옥이 건넨 은덩이를 받아든 점소이는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삼 층 창가 자리로 안내하였다.
"저, 술은 뭘로 준비할깝쇼?"
"흠! 일행이 하나 더 올 테니 찻잔을 하나 더 준비해주게. 그리고 술은 일행이 오는 대로 주문하겠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이회옥은 찻물을 손으로 찍어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찻잔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듯 창 밖의 풍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대략 일 각 가량 시간이 흘렀을 때 황삼을 걸친 청년 하나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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