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유럽여행기] 고소공포증 VS 비행기 타기

등록 2003.10.18 09:30수정 2003.10.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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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건대 나에겐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심장이 콩알만해진다. 게다가 본능적으로 불길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균형을 잃는 순간의 실수로 땅으로 곤두박질쳐져 쥐포처럼 납작해지는 상상 말이다. 그래서 나는 깊게 숨을 내쉬어 보기도 하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나를 진정시켜 보려고 하지만 좀처럼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는 티켓을 끊었기 때문에 나는 무려 11시간을 비행기에서 버텨야만 했다. 상상해보시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한 인간이 비행기를 탄 채 쩔쩔 매는 상황을. 비행기를 타면 나는 늘 한가지 기도만을 되풀이 한다. 그건 제발 다시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10시간 넘게 고소공포증과 싸우면서 유럽배낭여행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날아오르기 위해선 어떤 두려움과 늘 맞서야 한다.
10시간 넘게 고소공포증과 싸우면서 유럽배낭여행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날아오르기 위해선 어떤 두려움과 늘 맞서야 한다.김태우
어쨌든 인천공항에서 탑승한 비행기는 나의 두려움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스튜어디스는 비상상태 시 필요한 구명조끼와 인공호흡기 사용법, 비행기 탈출법을 설명하여 공포를 더욱 배가시켰다. 비행기의 엔진이 하나, 둘 가동되었고, 비행기가 45도 각도로 창공을 날아올랐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나의 공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입으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으며 좌석의 손 받침대를 꽈악 움켜쥐었다.

비행기가 궤도에 올라 안정감을 되찾자 사람들은 잡담을 하거나 싸온 음식을 먹으며 여행의 설레임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잠을 청했다. 잠을 자야만 추락의 공포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내 의식은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책을 꺼내 들고 내 예민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감행했다.

비행기가 가장 큰 동력을 필요로 할 때는 활주로를 내달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이다. 그 도움닫기의 순간에 가장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날아 오르냐, 추락하느냐의 문제가 그 순간에 결정된다. 일단 비행기가 본 궤도에 오르면 도움닫기의 순간에 필요했던 동력의 일부만 있어도 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기회가 찾아온 어떤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창공을 날 수 있다.

예전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만약 비행기가 창공을 날아오르지 않는다면 추락의 위험은 전혀 없다. 하지만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 비행기란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그저 커다란 고철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새로운 도전에는 늘 추락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동력을 한 곳에 모으고 도움닫기를 힘차게 하면서 추락의 위험과 맞서야 한다.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지루한 11시간이 흐르고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의 불길한 상상이 그저 상상으로만 그친 게 너무 다행이었다. 이상기류를 만나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고, 롤러코스터가 하강하는 것처럼 비행기의 기체가 내려앉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나는 그 순간마다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고, 수시로 산소호흡기가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무사착륙이었다.

벌써부터 돌아갈 비행기를 탈 걱정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두려움은 늘 도전의 친구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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