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 농민 정치세력화를 향한 물꼬

민주노동당과 정치협상 타결...진보정당사 중대한 초석

등록 2003.10.21 16:24수정 2003.10.2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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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월 14일 오후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열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3000여명의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오후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열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3000여명의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정현찬. 이하 전농)이 농민의 정치세력화와 관련해 지난 15일 민주노동당과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에 따라 농민의 정치세력화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민주노동당과 전농은 ▲당명개정여부와 재창당을 포함한 민주노동당 확대발전방안 ▲농민의 중요성을 반영한 민주노동당 강령과 당헌 개정 ▲당 대의기구와 각급기관에 농민 대표성 반영 ▲농민대표의 의회진출을 위한 노력 ▲농민참여를 도모하기 위한 당권 규정 완화 등 주요 사항에 대해 합의했다.

민주노동당은 오는 23일 중앙위원회와 11월 1일 임시 당대회에서, 전농은 11월 4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논의를 통해 합의안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합의문이 민주노동당과 전농 최고의결기관에서 공식결정 될 경우 전농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농민의 정치세력화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농민·노동자 중심 진보정당 출현 가능성 높아져

김준기 민주노동당 농업회생본부장은 "전농의 결단은 당의 발전 차원뿐만 아니라 진보정치사에 농민, 노동자가 함께 주인으로 나선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농민의 정치세력화 방침은 침체 일로에 있는 농업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합의안에 대해 일부 이견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민중세력의 대동단결이란 차원에서 폭넓은 이해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농민에 기반한 전농이 결합함으로서 노동자 중심의 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회진출에 대한 가능성도 그만큼 더 높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환 전농 정책위원장은 "대의원 대회가 최종 남아 있지만 노동자 농민이 중심이 된 단일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함께 나눴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 농업문제 등 양 조직이 합의내용에 대해 책임지고 추진해 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정책위원장은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여년 넘게 투쟁해 왔지만 여전히 농업문제에 변화된 지점은 없었다"며 "농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중투쟁과 함께 광범위한 세력이 참여하는 진보정당운동도 중요한 투쟁방식으로 제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정치세력화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농 "정치세력화 외엔 대안 없어"


a 한때 농민지도자의 표상이었던 이경해씨의 자결은 오늘날 한국농업이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정치세력화는 위기의 농업문제를 해결가는 중요한 방편의 하나이다.

한때 농민지도자의 표상이었던 이경해씨의 자결은 오늘날 한국농업이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정치세력화는 위기의 농업문제를 해결가는 중요한 방편의 하나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진보정당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민주노총이 중심이 된 '노동자 정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전국정당화를 위해서는 선거구의 40%에 달하는 농촌지역 기반 마련을 위해 농민과의 연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농민이 참여하는 진보정당'이라는 면모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학생 등 각계각층과의 연대를 촉진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농촌지역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전농의 참여는 전국정당화에도 일대 전기가 될 전망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치러진 제3회 지방선거에서 정당비례 투표를 통해 9명의 광역시도의원을 당선시키기도 했는데, 이는 농촌지역 지구당이 없는 가운데에도 농민들의 지지에 힘입은바 크다. 광주와 전남, 전북에서는 10%대를 상회하는 득표를 보이며 민주당에 이어 정당득표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전남에서의 득표율은 15%에 이르렀다.

전농이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정치협상에 나선 것은 정권문제를 도외시한 채 농업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내부인식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12만여명의 농민이 여의도에 집결해 대선 후보들을 압박해 봤지만 농민의 요구는 전혀 관철되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또 그동안 선거시기 명확한 방침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안적 차원에서 몇몇 지도부가 정치권에 진출하거나 지지후보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보수정치권에 포섭되거나 청원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다.

결국 위기에 몰린 농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농민이 직접 정치권에 진출해 실제 현실정치 판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세력화 밖에는 없다는 것이 전농측의 인식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농업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농민이 더욱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 것도 정치세력화에 적극 나서게 된 주요한 배경이다.

일부 우려감...성공 여부 아직 속단 어려워

정치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양측 합의안이 각 조직에서 원안대로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협상안에 대해 신중한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특히 기층단위로부터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한 전농 일부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번 합의도 일선 활동가들의 결의가 모아지지 못한 가운데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양측이 당 대회와 대의원대회를 남겨두고 있어 아직 속단하기는 어려운 상태. 하지만 단일진보정당 출현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기환 전농 정책위원장은 "지역 시·군에 상당한 영향을 발휘하는 농민이 정치세력화에 참여하면 정치지형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남, '환영' 분위기 속 '신중론'
최종 결정 남겨둔 광주전남 양측 분위기

전농과 민주노동당의 정치합의를 누구보다 애타게 지켜봤던 곳은 민주노동당 전남도지부(지부장 김선동)였다. 민주노동당 전남도지부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적극 반기는 분위기다. 전남도지부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전북도지부와 함께 민주노동당이 전향적 입장에서 전농과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선동 전남도지부장은 "그동안 당내에서는 반쪽짜리 진보정당이라는 평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도시의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농민의 아들 딸이고 보면 경제활동 인구에 농민 숫자가 많고 적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노동운동은 현장을 떠난 생활전선에서는 무력한 모습이 많았지만, 농민운동은 지역운동이 결합된 형태여서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는 훨씬 큰 편"이라며 "농민의 정치적 진출을 위해 앞으로도 일정한 역할을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종덕 전남도의원(민주노동당. 비례)은 "농촌을 포괄하고 있는 지역이지만 그동안 농민과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단순히 합의안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과정에서도 농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지난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정치방침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지지를 보내 줬는데, 전농이 참여하게 되면 그 이상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누가 정말 농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인지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에 전농 광주전남연맹은 이번 정치합의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농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자칫 농민조직이 와해되거나 농민운동이 침체되지 않느냐는 우려 때문. 정치세력화를 통한 농업문제 해결방식에도 논의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인식이다.

김선호 광주전남연맹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논의가 없었던 것에 비춰, 아직 '조직적 참가'라는 표현보다는 '논의가 진행중'이라고 봐야 한다"며 "정당건설에 대한 경험이 없다보니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도 많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정치세력화 문제는 어떤 면에서 전농 창립보다 더 중요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농민운동도 벅찬데 정당운동까지 고민해야 하다보니 자생적 농민단체로서는 대중을 책임지는데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안주용 광주전남정책실장은 "정치권에 개인적으로 들어간 예는 있지만 정당운동을 통한 전면적 방식은 처음이어서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현장에서는 농민들과 만나면서 아직 대중운동 측면에서 풀어 가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의견도 분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정당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논의가 충분치 못한 가운데 합의안이 마련돼 당혹스러운 면이 있다"며 "현장활동을 책임져야 할 간부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와닿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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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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