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 논. 한 배미에 4~50평이나 될까요?김규환
무서리 내리던 날 아침 일찍 벼 베러 가는 식구들
1979년 10월 26일 밤은 무던히도 맑아 별이 총총 하늘을 밝혔다. 차고 넘쳤는지 은하수가 죄다 쏟아져 내려 풀잎엔 하얗게 서리가 엉겨붙어 있었다. 감나무 잎도 하얀 색으로 바뀌어 따지 않은 감이 더욱 붉어 보였다.
마침 학교 가지 않는 날이다. 아버지는 쇠죽을 한 구유 가득 퍼주고 식구들 숫자에다 여벌 낫을 더 챙겨 숫돌에 가느라 아침 시간을 꽤 길게 보내고 계셨다.
된장 씰가리국(시래기국)에 미리 벤 통일벼를 찧은 햅쌀밥을 대충 말아먹고 낫과 숫돌, 새꺼리를 챙기느라 새벽부터 바쁘다. 싸늘한 아침 기운에 두껍게 걸쳐 입고 모자 하나씩 쓰고 여느 날이나 다름없이 아버지 애물(愛物) 라디오를 보자기에 튼튼하게 싸서 들고 집을 나섰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 멀지도 않아 200m만 가면 우리 논이다. 짧은 길이었지만 그래도 신작로 바닥에 쑥쑥 자란 말 풀과 질경이, 바랭이에 신발과 양말은 물에 젖은 듯 흥건하다.
1979년 이 때 들녘은 가을걷이가 막 시작되는 철이었다. 다섯 식구가 벼를 베어 나간다.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동생과 함께 하루 종일 베면 어른들과 형은 각각 한 마지기, 초등학생 둘 합해 한 마지기 200평을 벨 수 있으니 촌각을 다투는 보리 베기와는 달리 가을걷이는 그냥 식구끼리 해도 무방했다.
그래도 긴 방향 논두렁 쪽에서 시작하여 못줄 띄운 줄을 따라 야금야금 언덕을 향해 먹어들어 가는 벼 베기는 일년 농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대행사다.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는 두 포기, 형과 아버지는 네 포기를 한번에 잡고 몸 안쪽으로 움켜쥐듯 끌어안는 자세로 오른쪽 손에 들린 서슬 퍼런 왜낫을 잡아당긴다.
"쓱싹 쓱" "쓱쓱" "쓱-" 소리를 내며 물컹한 논 흙 바로 위를 간혹 스치며 벼 포기가 보일락 말락 밑둥까지 가지런히 베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