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도 살아계셨으면 이렇게 되셨을까?김규환
아들, 딸 몫 정해가며 힘내시는 우리들의 어머니
흰콩으로 메주를 쒀서 된장을 만들어 올적마다 한 통씩 나눠주리라. 검정콩은 당뇨 앓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전부 보내기로 되어 있다. 팥은 동지팥죽 좋아하는 큰딸에게 보낼 참이다.
들깨, 참깨로 기름을 짜서 각각 사이다 병에 담아 보낼 오진 생각에 힘겨운 줄 모른다. 동부콩은 밥에 올려 먹으라고 서너 홉씩 나눠줄 생각이다. 진저리콩은 시루에 콩나물이나 몇 번 길러 먹으면 긴 겨울 나물 걱정 끝이다.
행여 한 톨이라도 잃을까 두려워 침침한 눈을 부릅뜨고 콩알 찾는 할미의 손은 이제 거북 등보다 더 까칠하고 장작개비보다 딱딱하다. 저 붉은 감을 몇 개 따 놓으면 좋으련만 간지대 들 힘마저 없으니 이를 어쩔거나.
'가을볕은 며느리 몫'이었다. 이젠 이 노인 차지가 되었다. 지리산 뱀사골보다 더 움푹 팬 얼굴엔 땀이 고여있다. 벼 거둬 기나긴 한겨울을 준비하는 농부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어이 쉬 떨어지는 해를 탓하랴.
고구마를 캐 놓기는 했는데 그 무거운 것을 어찌 실어다가 아이들에게 부칠까 걱정이다. 배추포기 잘 들라고 지푸라기로 묶어주는 일은 내일로 미뤄야할 모양이다. 침침한 눈으로 어느새 곶감을 깎아서 실에 꿰어 널어놓은 바지런한 솜씨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