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이 된 문어와 로또, 그러나 거기에 행복은 있었다

로또복권과 문어가 가져다 준 행복(3)

등록 2003.10.26 02:52수정 2003.10.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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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어낚시를 걷어올리는 선장님. 그러나 끝내 문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어낚시를 걷어올리는 선장님. 그러나 끝내 문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 김정은

배안에서 회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선장님의 얼굴에 언뜻 불안한 표정이 나타났다. 무슨 이유일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니, 아까 근처 배를 탄 친구가 별 문제는 아닌데 지금 바람도 세고 수심이 깊어지다보니 바닥에 담궈놓은 문어 표시가 바닥에 닿지 않아 바람에 밀려 자꾸만 떠내려간다네요. 건지지 않고 그냥 두면 문어가 아니라 통발 전체를 잃어버릴까봐 불안하네요. 암만해도 문어통발을 건져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배를 섭외할 테니 옮겨서 낚시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

이미 낚시에는 마음이 떠난데다가 회로 배는 부른 터라 그냥 선장이 문어 통발 건져 올리는거나 구경하자는 의견에 그만 낚시를 접고 문어 통발을 건지러 출발했다. 예견했던 대로 상태는 이미 심각해져 있었다.


줄줄이 늘어져 있던 깃발들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나머지 것들은 아마 파도에 밀려 어디론가 떠내려 갔나보다. 선장의 표정엔 근심이 가득하다. 38개의 낚시 표시를 한 곳에 띄워놓았는데 10개 정도가 사라져버렸으니 이 10개를 찾기 위해 바다를 헤매야 할 판이다.

결국 우리는 선장과 함께 없어진 10개의 문어낚시 깃발을 찾기위해 바다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보이는 족족 선장은 낚시를 거둬올리는데 스티로볼 깃발 아래에는 거대한 하얀색 돼지비게에 거세고 날카롭게 보이는 낚시바늘 4개가 호시탐탐 문어를 노리며 꽂아 있었다.

그러나 문어는 결국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고 선장은 하릴없이, 올라온 돼지비게마다 애꿎은 굵은 소금만 한주먹씩 뿌리더니 배밑창에 차곡차곡 넣고 놓았다.

문어잡이 미끼로 돼지비게도 신기한데 하물며 소금에 듬뿍 절인 돼지비게를 사용한다는게 너무 신기해서 물어보았다.
"이 돼지비게 다음 문어잡이 할 때 다시 쓰시나보죠."
선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마 잃어버린 낚시표시때문이리라.

a 허당 치고 돌아온 배 안에서 바라본 속초시내. 그러나 푸른 바다는 무심하게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허당 치고 돌아온 배 안에서 바라본 속초시내. 그러나 푸른 바다는 무심하게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 김정은

이래 저래 바다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결국 5개의 깃발표시는 찾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문어잡이는 그만 두고라도 밥줄을 잃어버렸으니 속 상할 밖에. 문득 아까 정동진 일출과 로또가 생각났다. 일출을 보고 로또를 사고나서는 온통 잘 풀리리라는 마음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온데간데 사라져버리고 한 마리도 구경못한 문어와 별로 좋지 않은 조황과 없어진 낚시표시 생각뿐이니...왠지 아까 산 로또가 꽝이 되어버릴 것같은 불길한 전조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다는 코발트 빛깔의 물감을 잔뜩 뿌려놓은 듯 시퍼렇기만 할 뿐 우리의 근심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새가 많아서 조도라 불리운다는 바위섬을 한바퀴 돌아 어느덧 배는 대포항에 정박했다.


다음에 오면 잘해주겠다며 미안해하는 선장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배안에서 다 먹어버려 별로 남지 않은 물고기 몇 마리에 광어 한 마리와 우럭 한 마리를 더 사서 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한계령 구비 구비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껴앉다

a 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설악산 단풍.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설악산 단풍.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 김정은

날씨 때문에 올해 단풍은 그리 선명하지 않다며 미시령보다는 한계령 단풍이 더 볼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한계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예전만큼의 단풍색깔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경치를 볼 수 있다는데 감격해서 운전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연신 감탄사를 남발하였다.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단풍에 물든 아름다운 설악산을 본다는 것만 해도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까 문어잡이의 섭섭함을 풀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축복 받은 사람이다. 비록 365일 동안 이런 해방감을 느끼는 날은 얼마 되지 않고 거의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찌들어 살지만 그래도 일출을 보고 싶을 때, 낚시하고 싶을 때 다 덮어두고 떠나서 훌훌 일출을 보고, 낚시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더불어 보너스로 이처럼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축복 아닐까?

로또와 문어, 비록 35개 통발 중에 한 마리도 건지지 못했고 주말에 발표한 로또의 결과는 꽝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 이 순간 단풍 든 설악산을 바라보며 휴게소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나는 누가 뭐래도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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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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