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섞여야만 가족은 아니죠”

고아원이 없어지는 그날을 꿈꾼다

등록 2003.10.27 11:55수정 2003.10.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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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오선희(49)씨 집은 여느 집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올해 26살, 25살인 남매 외에도 17살 여자아이가 함께 산다. 그 아이는 그녀를 이모라고 부르지만 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 인연을 맺었다.

“사회복지법인에 가서 관장님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아이를 후원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어요. 후원의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물질적인 후원보다는 그 아이와의 관계 유지를 통한 후원을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만난 후 호칭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자신을 뭐라고 부르겠냐고 물어봤고 아이는 이모라고 답했다. 그때부터 이모가 됐고 그녀는 아이를 '꼬맹이'라 부른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토요일에는 집에서 재우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어린이날을 챙겨주거나 운동회가 있을 때 맛있는 것을 사가지고 찾아가며 정을 쌓아 나갔다.

“시설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가야 해요. 고등학교를 마친다고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꼬맹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으로 데려와서 결혼 할 때까지 돌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같이 살게 됐다. 이유는 아이의 잦은 방황이었다. 학교로도 시설로도 돌아갈 곳을 잃었던 아이를 집으로 받아들이기 전 가족들과 상의를 했다. 가족들 모두 걱정은 했지만 흔쾌히 받아들였다.


집에 온 아이는 그녀가 권하기도 했고 자신도 원한 미용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선희씨의 선배가 하는 미용실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배우러 갔고 너무나 신나했다. 미용실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그녀에게 가져다주고 용돈을 타 가기도 했다. 지금은 미용학원을 다니며 미용 쪽으로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꿈을 키우고 있다.

“꼬맹이가 상처가 워낙 커 사람들하고 자주 부딪혀요. 꼬맹이 때문에 하루하루가 재밌는 일도 많고 벌어지는 문제도 많아요. 남들은 골치 아픈 애라고 말하는데 그런 게 아니고 상처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아이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부모 선택과 외모 선택만은 하지 못하고 태어나는데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해선 안 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라고 말이다.

절대 화내지 말고 대들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대신 시간이 지난 후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얘기 하고는 사과를 받으라고 말해주는 오씨 때문에 아이에게 그런 상처는 서서히 없어졌다.

“고아가 아무리 많아도 정상적인 가정보다는 적잖아요. 나는 아이를 혼자 키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목사님 부부도 돌봐주시고 시설의 총무님도 같이 돌봐주시고 여럿의 그룹이 함께 키운다고 생각해요. 쉬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죠.”

그녀가 아는 누군가도 같은 일을 했지만 실패를 했다. 가족간의 충분한 상의 후에 데려와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로 인해 가정이 불편해지면 안 될뿐만 아니라 갑작스럽게 가족의 일원이 되기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만나 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가 경험해 본거니까 할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절차를 가지고 했으면 좋겠어요. 조금이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요. 영국에는 버려진 아이를 서로 데려가서 고아원이 없다는데 우리나라도 여럿이 한 아이만 맡아줘도 고아원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부터 시작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선희씨는 그녀의 아이들이 고등학생 2학년일 무렵에 꼬맹이와 연결이 됐듯이 이번에는 5~6살 남자아이를 후원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말만 앞서게 될까봐 걱정스럽다던 그녀는 이 일이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그녀는 분명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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