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대 첫 직선 여성 총장 나오나

한남대 홍경표 교수 교수협의회 총장 직선 투표 1위

등록 2003.10.29 11:28수정 2003.10.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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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수 1만2천여 명 규모의 중부권 명문대인 대전 한남대에서 10월 13일 치러진 교협 총장 직선 투표 결과, 유럽어문학부 홍경표(62·불어불문학 전공) 교수가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함으로써 내년 1월 열릴 이사회의 총장 인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남녀공학대 총장 직선제 선거에서 여교수가 1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여성계는 더욱 더 여성 총장의 탄생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주목하고 있다. 더구나 국립대를 중심으로 여교수 채용 목표제가 강조되고 있고, 종합대의 여대생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 총장의 탄생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는 의견이다.

타지(他地)·여대·여성 출신 3중고 넘어선 女총장 후보

그러나 첫 직선 여성 총장의 탄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이 한남대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우선, 50년 전통의 보수적 미션 스쿨 계통에다 총장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사장을 포함한 13인의 이사진 모두가 60, 70대가 주를 이루는 남성들이기에 '여성'이 장애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이사진 대부분이 목사와 장로이고 1위를 한 홍 교수가 평신도란 점이 흠이라면 흠으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1991년, 1995년엔 교협 투표 1위 교수가 무리 없이 직선 총장이 될 수 있었는데, 지난 1999년부터 이 '묵계'가 허물어졌다는 선례가 문제다. 즉, 1999년 투표 당시 5위로 20여 표 정도밖에 득표를 못했던 교수가 이사회에 의해 최종적으로 총장으로 임명된 데다가 1위를 한 후보가 오히려 '부총장'직을 수락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선거를 기점으로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 교협 투표 1, 2위 교수를 비롯해 교직원 학생, 동문, 사회 지도층 인사 등 광범위한 집단으로부터 총장 후보를 추천받도록 했다. 이번 선거에선 이 추천위원회가 사라지면서 이사회는 총장 공모를 통해 후보를 모집했다.

그 결과, 홍 교수를 포함해 교협 추천 후보 2명과 교협 선거에 나서지 않았던 현 총장과 부총장 등 총 5명의 한남대 교수들과 기타 지원자 5명이 공모에 응해 총장 후보가 총 10명이 됐다.


여성계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종합대에서 첫 직선 '여성'총장이 나오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 상당히 긍정적이고 참신한 문화적 충격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충남대 교수 시절 수차례 총장 투표에 참여했던 장하진 한국여성개발원장은 "국립대건 사립대건 교협 선거에서 1위를 한 후보를 존중해 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이제 관행이 된 만큼, 홍경표 교수는 이사회의 최종 결정이 남았다 해도 50%의 성공이 아닌 95%의 성공을 성취한 것이다"며 한남대 이사회가 "홍 교수 1위의 의미를 100% 인정해 줄 것"을 희망했다.


장 원장은 "홍 교수는 '여성'일뿐만 아니라 대전이 아닌 타지역 출신에다가 여대(이화여대) 출신이란 3중고를 극복하고 교협 투표에서 1위를 했는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이다"고 말하며 홍 교수의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경숙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현 열린우리당 공동창당위원장)는 "지금은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이고, 그 중 중요한 화두가 여성 리더십인데, 홍 교수의 경우가 그에 해당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대표는 "홍 교수가 1월 총장으로 정식 임명된다면 한남대는 '선진적'대학으로 일약 사회의 주목을 끌게 될 테고, 결국 이것은 돈 안들이면서도 효과적인 대학 홍보가 아니겠는가"라며 실질적인 제언을 했다.

[인터뷰]홍경표 교수, "침체기 한남대 도약 초석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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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장철영

"지난 2000년 원칙을 어기고 비정통적 방법으로 총장이 임명된 것이 지금의 학교 위기를 몰고 왔다고 생각해 총장 선거에 출마했다. 현 총장 체제 하에서는 인근 대학들도 다 받은 교육부의 일정 지원금도 못 받는 등 학교의 외적 성장이 침체된 데다가 현 총장이 교직원과 학생들의 지지를 상실해 리더십이 부재한 채 학교 행정이 표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원칙을 안 지키면 교육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싶었다."

이번 교협 선거에서 학교 위기 해결사로 '119 홍'이란 애칭을 얻으며 1위를 차지,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로 떠오른 홍경표 교수. 그는 지난 4년간 학교가 방향타를 잃어가는 것을 보면서 "'4년 전 1, 2차 선거에서 1위를 했는데 억지로 무리하게라도 총장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동료 교수들의 안타까움을 듣고 무한한 책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9월 중순경만 하더라도 총장 출마 의사가 전혀 없었던 홍 교수는 동료 교수들의 강권에 밀려 뒤늦게 교협 선거를 준비했다. 이 과정 중에 10월 6일 일생 그의 동지였던 남편(박종률 전 통일민주당 사무총장, 8·12·13대 국회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도중에 출마를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남자들은 그런 일이 생겨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여성으로서, 가정사에 얽매인 개인적 문제를 극복하고 동료 여교수들에게 길을 열어주자고 결심했다."

당시 그는 스스로에게 "I cry tomorrow"란 주문을 걸면서 고비를 넘기곤 했다고 한다. 앞으로 남편을 위해 울 날은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해내자는 심정으로.

홍 교수는 "남편의 민주화 투쟁으로 나조차 요주의 인물로 찍혀 취직이 힘들던 1982년, 한남대에서 날 받아들여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라도 한남대를 도약시키는 총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선거에 그대로 반영된 여교수들의 자매애와 연대 의식에 감사했다. 현재 300여 명의 교수 중 30여 명에 불과한 여교수들은 그를 중심으로 출신 지역, 학교를 불문하고 '여교수'란 공통분모로 뭉쳐 "여성끼리 뭉치고 화합해 즐겁게 살자"를 직장 생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조금만 무엇을 하려 하면 '설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이번 선거에서도 여교수들은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며 나를 위해 선거 운동에 최선을 다해줬다. 여교수들은 아직은 소수 집단이지만 그 결속력과 실행력으로 남성 교수들의 의식을 전환시켜 나가고 있다."

90년대 중반 문과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종합대 최초의 직선 여학장으로도 주목을 받았던 홍 교수는 한남대가 교육부로부터 '우수 대학' 평가를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교육부의 BK(Brain Korea)21 프로젝트를 한남대에 유치하는 등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검증된 능력 때문에 동료 교수들은 "홍 교수를 중심으로 학교의 패러다임을 한번 바꿔보자"는 의욕에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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