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 타임즈> 29일자에 실린 김재홍 경기대 교수(오마이뉴스 논설주간)의 반박문.
지난 14일자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영국의 한국학 연구자인 포스터-카터 씨의 칼럼을 보면 구시대적 관점에 지배돼 있었다.
오늘의 한국정치에 대해서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왜곡과 억지주장이 판치고 있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오늘의 한국정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구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수다.
그 비판적 성찰은 두가지 선행 조건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첫째는 분석과 비교평가의 능력이다. 비교평가는 한국정치사 자체에서 현재가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한 시차적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선진국 정치와의 비교보다 더 중요하다.
둘째는 학자든 저널리스트든 양식있는 지식인으로서 정의관과 도덕성을 가져야 잘못된 역사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12월 당선도 그렇고, 2003년 10월 10일 국민에게 신임을 묻겠다는 선언에 대해서도 구시대에 대한 비판적 안목이 없다면 제대로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
구시대 주류를 '세련된 엘리트'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은 노 대통령을 '검증되지 않은 시골풍의 포퓰리스트'라면서 구시대의 '세련된 엘리트'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썼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지지한 한국의 다수 유권자들은 그가 비주류의 길을 걸어 온 것을 장점으로 여긴다. 검은 돈 거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권위주의 냄새도 덜 나기 때문이다.
세련된 엘리트라 불리는 구시대의 주류로서 한국정치와 사회를 지배해 온 사람들이 누구인가. 30년 이상 지속된 군사권위주의 정권에 협력해서 영달을 누린 계층이다.
2002년 대통령선거는 이전의 어느 선거보다도 투명하게 TV와 인터넷 매체를 통한 미디어 토론이 활발했다. 그 결과 노 대통령은 21세기의 주역인 인터넷 정보화세대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은 주로 젊은 층의 지지라고 했지만, 20대 보다는 건강한 시민문화의 견인차에 해당하는 30대와 40대가 결정지은 선거였다.
나는 그 칼럼니스트가 노 대통령에 대해 무슨 근거로 '검증되지 않은 포퓰리스트'라고 주관적인 낙인을 찍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아마도 민주개혁 진영에 극도로 적대적인 한국의 보수 신문들을 자료로 삼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칼럼의 그런 표현은 선거문화를 질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서 노 대통령을 선택한 한국의 유권자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대선공약인 개혁정책 못 펴니 재신임 물어야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임을 묻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칼럼은 '터무니 없는 제스처'라거나 '마지막 도박', '즉흥적 여론 떠보기'라고 비하했다. 이야말로 한국정치에 대해 깊은 성찰의 노력도 없이 피상적 인상기를 늘어놓은 느낌이다.
신임을 묻겠다고 밝힌 날 노 대통령은 가장 큰 이유로 측근 참모의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꼽았다. 그러나 더 먼 원인으로 그는 야당이 절대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국회 구조와 감정적 적대논조의 언론 때문에 더이상 국정을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야당의 절대과반 의석은 순수하게 국민이 만들어 준 것이기보다는 의원들이 당적을 바꾼 결과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당적을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노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선거에서 공약한 개혁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재신임을 묻기로 한 점에서 타당하다.
노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한 개혁정책을 펼 수 없게 하는 두번째 여건으로 제기한 것은 언론환경이다. 언론자유를 실천하려는 기자들을 강제해직하면서 권력과 타협하고 그 비호아래 성장한 거대 신문사들이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아젠다 설정을 독과점하지 않았던가.
1974년 박정희 정권과 1980년 전두환 내란정권 당시 두차례에 걸쳐 기자들을 무더기로 강제해직한 것이 독재권력에 타협하고 협력했다는 증거다. 그렇게 수십년간 정권의 비호 아래 신문시장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한 신문사들은 또 반사회적 탈세범죄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탈세 언론사들이 개혁을 내세운 노 대통령에 대해 적대적인 공격을 해대고 있는 상황이다. 일반국민은 그런 독과점적 거대 신문들의 왜곡보도에 혼란스러우며 그 결과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토대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전환세대의 '권위 쇠약증'은 과도기 현상
한국정치의 변화 중 하나는 2002년 대선 이후엔 누가 대통령이 돼도 탈권위주의적 전환세대의 지도자로서 '권위 쇠약증'에 시달릴 것이라는 점이다. 해방 후 정당정치 제1세대 지도자는 독립투쟁으로 형성된 카리스마적 권위를 구사했다.
제2세대인 군사쿠데타 그룹은 이른바 총구에서 만들어진 '무서움'을 통치수단화 했다. 제3세대인 김영삼·김대중씨는 온갖 고초를 겪은 정치역정의 대가로 또 다른 카리스마를 향유했다.
그러나 두 김씨 이후 노 대통령을 포함한 제4세대 지도자들은 그런 카리스마를 갖지 못한다. 과도기적 혼란으로 비쳐지는 배경이다. 이는 실질적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적 현상 때문이며 한국정치가 지금 그런 발전과정에 들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에 따른 파문과 검은 선거자금 수사는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제4세대 정치를 정립하기 위한 진통이다.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은 안정적 행정관리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외국투자가들에게 한국의 동요와 불안은 이제 과거 용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이다.
| | 김재홍 교수, FT에 반박문 기고 | | | | (서울=연합뉴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지난 13일 리즈대학의 한국학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 박사가 기고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요청을 비판한 것과 관련, 경기대 김재홍 교수가 29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반박문을 실었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정치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포스터-카터 박사가 쓴 기고문을 읽고서 과연 그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한국정치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포스터-카터 박사가 어떤 근거로 노 대통령을 "시험받지 않은 포퓰리스트"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아마 이는 한국에서 민주개혁 진영에 적대적인 보수신문들에 의존한 결과로 여겨진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표현은 노 대통령을 선택한 한국민들에게 모욕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포스터-카터 박사는 또 노 대통령의 재신임 요청을 "막판의 도박"이라고 평가절하했으나 이는 한국 정치를 피상적으로 지켜본 결과일 따름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대선때 공약한 개혁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대통령직을 걸고 공개적 심판을 받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치가 당면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권력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며 이는 진정한 민주화로 나아가는 과정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1세대 정치지도자들의 경우 일제하 독립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카리스마적 권위를 행사했으며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2세대 지도자들은 통치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했고, 3세대에 해당하는 김영삼.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정치적 역정으로 비롯된 또 다른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음을 설명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경우 이같은 카리스마가 없으며 이것이 바로 과도기적 혼란의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외국인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에 대한 우려는 과거에 속하는 것들에 대한 우려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터-카터 교수는 지난 13일 `떠나려면 지금 떠나야'(If Roh is going, now is the time)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노 대통령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돈키호테식 행동으로 우려를 촉발하기 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자질 부족을 인정하고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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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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