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83% 합법화 신고"

[현장]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합법화 신고 마지막 표정

등록 2003.11.01 10:58수정 2003.11.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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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31일 구로동에 위치한 출입국 관리소. 신고를 마치고 확인증을 받아 나오는 외국인 노동자와 고용주

31일 구로동에 위치한 출입국 관리소. 신고를 마치고 확인증을 받아 나오는 외국인 노동자와 고용주 ⓒ 김진석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합법화 신고율 83%"

불법체류하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19만 여명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내년 8월 시행될 고용허가제에 따라 9월 1일부터 시작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자진 신고 기간이 31일 마감됐다.

노동부는 마감 결과 합법화 대상(4년 미만 미등록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22만7000여 명 중 83%인 19만 명 정도가 등록을 마쳤다고 밝혔다. 그 중 3년 미만의 외국인 노동자 경우 16만2,000명 가운데 90.8%(14만7,015명)가 등록을 했다. 그러나 일단 출국 후 재입국 해야 하는 6만5,000명의 선택적 합법 대상자(3년 이상 4년 미만)들의 구제 등록률은 불과 64.9%(4만2,246명)에 그쳐 단속에 대항할 불법체류자들의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노동부는 11월 16일 이후 행해질 대대적인 단속에 강한 의지를 표명하며 불법체류자들을 내년 6월까지 강제 출국 시킬 계획이다. 불법체류자에게는 강제 출국 외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조치가 취해지고 불법체류자 고용주에게도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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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한편, 등록을 마친 외국인 가운데 '취업확인서' 까지 발급 받은 외국인은 16만 명 정도로 대략 71%를 차지한다. 노동부에 합법화 구제 신청을 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법무부가 신분 체류 변경 접수를 마감하는 날까지 일자리를 구해 취업확인서를 발급 받아야 비로소 합법적 노동자로 인정받게 된다.

초반 노동자 합법화 절차를 밟기 위해선 고용확인증명서, 사업자등록증, 표준근로계약서 등 여러 서류들과 복잡한 절차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고용확인서 등 여러 서류 발급을 미끼로 일부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또 브로커까지 활개치자 노동부는 '선 등록, 후 확인' 제도를 실시했다.

등록을 먼저 하고 확인증을 나중에 제출하는 제도가 시행된 10월 14일 이후 40%를 밑돌던 등록자가 막판에 갑자기 늘어났다. 취업하지 못 한 체 일단 먼저 등록을 마친 2만 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부는 취업박람회 등을 개최하며 일자리 알선을 도울 방침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합법화 절차는 2단계로 나뉜다. 먼저 노동부에 체류확인 신청 후 등록이 되면 법무부의 심사를 통해 최종 합법화 절차를 마친다. 법무부는 오는 15일까지 최종 합법화 심사를 마감할 계획이었으나 막판에 폭주하는 접수자들로 인해 11월 말까지 접수 날짜를 연장 할 계획이다.

또 법무부는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밤을 새며 오랜 시간 대기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선(先) 접수방식을 도입해 예약 접수증을 발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예약 접수증을 발급 받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새우잠을 청하는 등 추위에 떨며 오랜 시간 접수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면할 수 있게 됐다.


"10만 여명의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자 선택"

그러나 마감 결과 합법화 대상 외국인 노동자 중 3만 여명이 신청하지 않고 4년 이상 출국 대상자 7만 여명의 노동자가 잔류해 10여 만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여전히 남을 것으로 짐작된다.

4년 이상 체류자 및 출국 후 재입국 해야 하는 선택적 대상자들은 한국 전체 체류기간이 5년으로 제한돼 신청을 기피하고 또 재입국의 가능성마저 희박해 불법체류자로 남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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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구로 고용안정센터에 만난 조선족 동포 김아무개씨(29)는 실제로 주변에 있는 합법적 대상자들이 합법화 등록을 꺼려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들어 올 때 한국 돈 천 만원의 빚을 진 한 동료를 예로 들며 "빚 독촉에 시달려 중국에서 죽는 것 보다 차라리 한국에서 죽는 게 더 낫다" 고 말했다.

또 김씨는 "불법을 방지하려는 한국 정부의 의도에 대해선 공감하나 체류 기간을 근거로 무조건 4년 이상의 노동자들을 강제 출국시키는 건 너무하다" 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얻은 빚마저 못 갚은 노동자들이 태반인데 그들에 대한 실질적 대안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씨는 한국 정부에선 4년 이상 체류한 노동자들의 재입국을 보장하며 홍보하고 있지만, 이미 여러 번 뼈저리게 불신을 경험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2003년 초 자진 출국한 노동자들은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또 고용허가가 아닌 여행 비자 조차도 재입국을 거부하는 공항 심사와 현지 대사관 브로커의 무리한 금전 요구 등으로 인해 4년 이상의 체류자들은 강제 출국을 감수하며 불법체류를 선택한다.

불법 체류자들은 정부의 단속을 흔히 '인간사냥' 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정부의 인간 사냥으로 피해를 보는 건 사업주들도 마찬가지. 이미 한국말과 일에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해 생산성을 높였던 사업주들은 그들의 출국으로 인해 공장 가동 중단 위기까지 몰려있다.

4년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단지 체류 기간을 기준으로 강제 출국시키려는 정부의 정책에 '융통성' 을 호소한다. 한국에 온지 7년 된 인도네시아 노동자 라흐만(27)씨는 "우리들 가운데는 IMF로 인해 장기간 돈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고 또 초반 외국인 노동자를 노예 취급하는 악덕주에게 임금 체불을 당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 고 말했다.

또 그는 "외국인 노동자 도입 초기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그간 장기 체류한 노동자들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며 "맹목적인 강제 출국 외에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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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실질적인 공존의 해법 필요"

내년 8월부터 시행 될 고용허가제는 저임금과 인권침해의 폐해를 낳았던 산업연수생 제도의 대안으로 마련됐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실시로 인해 3년 동안 합법적 취업을 하며, 국내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3권 등 기본적 권리가 보장된다. 또 사업주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와 노동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는다.

이에 인력난에 허덕이는 3D 업종의 사업주들은 직업안정기관에 구인신청을 통해 외국인노동자를 고용 할 수 있어 송출비리 등 뒷돈 거래가 줄어들고 외국인 근로자의 안정적 활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노동허가제' 가 아닌 '고용허가제' 또한 노동자의 노동권을 사업주가 '제약' 하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어 이를 실행하는 사업주들의 도덕적 책임 의식이 촉구된다.

고용허가제에 앞서 불법체류자를 무조건 강제 출국 조치 시키려는 정부의 방침에 맞서 곧 이에 대응하는 불법체류자들과의 처절한 '숨바꼭질' 이 한바탕 벌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이제껏 법무부는 1992년부터 16번 자진 출국 유예 기한을 설정해 집중 단속을 발표 했지만,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것은 결국 불법체류자가 자진출국을 하지 않았고 또 그 수효를 감당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숫자였기 때문이다.

현재도 대략 10만 여명에 이르게 될 불법체류자를 정부가 한번에 모두 밀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모두가 신음했던 IMF때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3D업종은 인력난으로 허덕였다.

어차피 끊이지 않는 수요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의 공급이 존재하는 한 무조건적인 강제 단속보다는 '사업주 초청' 같은 좀더 실효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는 한국 경제의 일부를 지탱하고 있는 그들로 인해 공존 할 수 밖에 없다. 합리적 근거 없는 '인간사냥' 외에 불법체류자를 줄일 수 있는 정부의 다른 혜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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