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은 없지만 이대론 못 떠나"

불법체류자 일제단속 앞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심정

등록 2003.11.04 00:05수정 2003.11.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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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에 들어섰을 때 라죠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걸 보니 이번에도 거절을 당한 모양이다. 그는 "불법체류자는 어딜 가나 힘든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외국인이니까 참을 수밖에 없잖아요"

a 방글라데시에서 온 라죠

방글라데시에서 온 라죠 ⓒ 송민성

라죠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95년. 고국인 방글라데시에서 그는 법학을 전공한 인텔리였다. 그러나 직장을 얻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나라의 경제 사정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연히 '한국에 가면 기술도 배울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국의 상황이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동안 3개월짜리 비자는 기간만료되었고 그는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한국에 들어온 라죠는 의정부에 있는 한 자동차 하청업체에서 4년간 일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고 9시까지는 야간 근무를 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받은 돈이 월 90만 원. 야근수당은 꿈도 못꿀 일이었다.

"방세로 18만 원을 내고 가족들에게 보내고 나면 거의 돈이 남지 않아요. 한국, 방값이고 밥값이고 너무너무 비싸요. 사람들, 말해요. '너희 나라에서는 90만 원이면 큰 돈 아니냐' 그래요. 하지만 난 여기 살아요. 생활비 똑같이 들어요."

라죠는 그 곳에서 용접일과 프레스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일을 가르쳐주었던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


"기계를 잘 모르는데다 말도 잘 안통하다보니 일을 배우기가 어려웠어요. 한국인 노동자들은 걸핏하면 '멍청하다'며 주먹을 휘둘렀죠. 내가 일을 빨리 배워야 자기들이 쉴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많이 때렸어요."

라죠씨가 제법 일을 익히자 동료 한국인 노동자들은 자기 몫의 작업을 그에게 떠맡겼다.


"내가 일하는 동안 그 사람들은 담배 피고, 오토바이 타고 놀러가고 그랬어요. 그래놓고는 나보고 일 못한다고 간섭했어요."

한국인 노동자들의 횡포를 참지 못한 그는 기어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 사람에게 말했어요. '넌 사장도 아니고 나와 같은 직원일 뿐이야, 난 니가 말하지 않아도 잘하고 있어'라구요."

그 싸움 탓에 라죠는 일자리를 잃었다. 싸움을 일으킨 것도, 일을 게을리한 것도 동료 직원이었지만 직장에서 쫓겨난 쪽은 라죠였다.

"나는 법을 배웠고 또 잘못한 것이 없어 억울하다고 항의 많이 했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내 말 들어주지 않았어요."

a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에는 여섯명의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에는 여섯명의 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다. ⓒ 송민성

성수동에서 두 번째 일자리를 얻었지만 그 역시 길게 가지 않았다.

"사장님이 급하니까 얼른 물건을 실으라고 했어요. 바쁘게 일하는데 공장장이 와서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키고 청소를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장님이 시킨 일을 해야한다고 했더니 공장장이 날 때렸어요."

그때도 라죠는 참지 않았다. 파출소로 달려가 공장장을 신고하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둘이서 잘 해결하라"는 말뿐이었다.

"니가 불법체류자니까 신고하면 너도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둘이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두 번째 일자리를 잃었다. 라죠는 그제서야 현실의 냉혹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게되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외국인이니까 아무 말 못하는 거잖아요. 참아야 하는 거잖아요."

"왜 우리가 쫓겨나야 합니까?"

라죠는 2년 전부터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생활을 해오고 있다. 숙련공에다 한국말도 곧잘 하지만 11월 16일 불법체류자 일제 단속을 앞둔 시점에서 그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2개월 전에 어렵게 직장을 구했지만 지난 달 말에 해고됐어요. 나는 불법체류자니까 15일전에 가야하잖아요. 불법체류자는 어딜 가나 힘들어요. 불법체류자라는 딱지 때문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일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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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의 상황을 납득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한국 노동자들이 하지 않는 힘들고 어려운 일 합니다. 돈도 적게 받아가며 열심히 일했어요. 일을 하다 손가락을 잘리고 허리를 다쳐도 보상 한번 제대로 받은 일 없어요. 그렇게 일했는데 이제 와서 무작정 나가라고 해요. 왜 우리가 쫓겨나야 합니까?"

그는 고된 작업을 할 때보다 일을 하지 못하는 지금이 더욱 고통스럽다고 했다. 요즘 같아서는 밥도 먹기 싫단다. 3개월짜리 비자 하나만 믿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에 올만큼 자신만만했던 라죠는 이제 서슴없이 말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다"고.

이처럼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라죠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첫째는 한국에 오면서 그가 가졌던 꿈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과 별 다를 것 없는 방글라데시의 경제난 때문이다.

"한국에 올 때 그런 계획 있었어요. 2, 3년 열심히 일하고 기술 배워서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 제품을 방글라데시에 수출하는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구요. 하지만 이제 그러기 힘들어요. 모아놓은 돈도 다 떨어졌고 빚만 늘어가고 있어요. 가고 싶어도 비행기값이 없어서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라죠가 돌아가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여전히 희망을 품고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 생활에도 익숙해졌어요. 기술도 배웠구요. 이렇게 가고 싶지는 않아요."

라죠의 희망은 얼마 전 열린 강제추방 반대집회를 다녀온 후 조심스럽게 부풀고 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2천 명 정도 왔어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항의를 하고 한국분들도 많이 도와주니까 법이 바뀔 수도 있지않겠어요?"

라죠는 얼른 법이 바뀌어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매우 소박하다.

"병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고 추석이랑 설날에는 한국인 노동자들처럼 보너스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a 반지하방의 한쪽 벽면을 채우고있는 커다란 짐가방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반지하방의 한쪽 벽면을 채우고있는 커다란 짐가방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 송민성


한국에서 '후진국' 외국인으로 살기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특히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건을 사려고 가격을 물으면 '돈도 없는 주제에 뭘 사려고 하냐'는 경멸 어린 눈빛을 견뎌내야 했다.

식당에서 똑같은 돈 내고 밥을 먹으면서도 "빨리 먹고 가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야, 일어나!'라고 하면 자리를 양보해주어야 했다. 택시 기사가 일부러 돌아가는 바람에 요금이 많이 나와도 항의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라죠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에게 있어 확실한 것은 지금은 한국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코리안 드림 없어요. 누군가 한국 오겠다고 하면 말릴 거예요. 빨리 법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법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라죠의 말에서는 간절한 희망이 묻어 나왔다.

"기술 배우러 '좋은 나라' 한국에 왔지만..."

▲ 왼쪽부터 로니, 윈, 라죠
ⓒ송민성

라죠와 함께 쉼터에 머물고 있는 로니(필리핀)와 윈(미얀마)의 상황도 다를 것이 없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5년 전에 한국으로 온 로니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한다. 일을 하다 다쳤지만 로니의 고용주는 1회 치료비만 주고 쫓아냈다.

윈은 한국에 온지 7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한국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배 기술자로 일했다는 그는 '좋은 나라' 한국에서 기술을 배우고 싶었으나 2개월만에 해고되었다.

그런데도 로니와 윈 역시 한국을 떠날 마음이 없다. 로니와 윈은 각각 "필리핀으로 가봤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까" "사회주의인 고국에서는 자유가 없지만 여기는 자유가 있다"며 머물고 싶은 이유를 댔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불법체류자로 15일이 지나면 강제출국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 송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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