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잘 누는 것이 보배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11.04 16:34수정 2003.11.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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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 똥 고드름 이야기


사람이 똥을 안 누고 살 수 있는가. 요즘 세상에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자기가 하기 싫으면 돈을 주고 남을 부릴 수도 있지만, 똥 누는 일만큼 예외다.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배설하게 되어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다. 제일 고역이 뒷간에 가는 일이다. 강원도 정선 산골짜기에 불어오는 바람은 매우 차다.

한겨울에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영하 10도라도 똥이 마려우면 뒷간으로 달려가야 한다. 똥을 누다보면 얼기설기 송판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엉덩이가 금방 추위에 얼어붙는다. 볼 일을 다 보고 방으로 들어오면 아랫목에서 한참 동안 엉덩이를 녹여야 한다. 나는 가급적 똥을 빨리 눈다. 느리게 천천히 누다 보면 엉덩이에 동상 걸리는 수가 있으니, 배에 힘을 한 번 세게 주고 한 번에 속에 있는 것을 떡 방앗간에서 가래떡 뽑듯이 다 빼낸다.

한겨울 뒷간에 똥을 누면 똥통이 드럼통이라, 깊지가 않아 고드름이 되어 쌓인다. 자칫하면 똥구멍을 찌를 수도 있다. 그러면 발로 냅다 찬다. 그러면 며칠 똥을 잘 눈다. 나중에는 똥 고드름이 발길질에도 안 부서질 정도로 단단하게 얼어붙으면, 도끼를 가지고 와서 냅다 후려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그 짓을 했다. 겨울철에 얼음 똥을 치울 수도 없고, 다행히 냄새는 안 난다.

여름 장마철에는 똥 구더기가 똥통에 바글바글하다. 똥통에서 가만히 있지를 않고 구더기가 탈출을 시도한다. 드럼통으로 올라오다 떨어지고, 또 올라오다 떨어지고…. 어느 때는 구더기가 탈출에 성공하여 볼일을 한참 보고 있는 아내의 종아리 맨 살에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면 아내는 비명을 질러대고 난리법석을 떤다.

그때는 내가 밥을 많이 먹을 때였다. 30대 초반이었으니 밥을 먹고 돌아앉기만 해도 금방 배가 고팠다. 먹은 게 많으니 배설하는 양도 많을 수밖에. 똥통이 금방 찬다. 사람 배 속에서 똥이 엄청나게 나온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그러면 똥지게를 지고 똥을 치운다. 똥지게에 똥을 담아 밭에다 뿌린다. 똥지게를 처음 지고 일어설 때 철렁하면서 똥물을 쏟는다. 똥을 치다 보면 조심해도 똥물이 옷에 튄다. 똥을 치는데 완전 초보라 나중에는 온몸에 똥칠을 해서 더러운 줄도 모르고 똥을 쳤다.

아내는 도망가서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똥 한 드럼통을 다 치고 나서 장강(長江)에 나가 멱을 감았다. 똥을 친 저녁에는 장강에 나가 넓적한 돌에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내가 내 몸에서 똥 냄새가 난다고 구박을 했지만 돼지고기 먹는 데는 아무 지장없다. 그 맛을 생각하면 저절로 침이 넘어간다.


건강한 사람은 똥 잘 누는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은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똥 잘 누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 똥 잘 누는 것이 참 보배이다. 똥 얘기를 하면 똥 냄새 난다고 할지 모른다. 만약 똥을 누지 못하면, 이를 일컬어 변비라 하는데, 그 사람은 피곤해지고 머리가 자주 아프고 속이 더부룩하고 그리고 급기야 만성 변비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똥을 매일 잘 누면 그 시원한 맛이야 이루 형용할 수 없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똥을 못 누고 변비에 걸리느냐? 버리지 못해서 그렇다. 버릴 것은 버리고, 줄 것은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꾸 쌓아 두려고만 하니 변비가 되는 것이다. 똥을 잘 눈다는 것이 무엇인가? 움켜쥐고 모아 들이는 것을 그치고 아쉬움 없이 버린다는 것 아니겠는가? 움켜쥐고 쌓아 두고 모아 두면 변비에 걸린다. 마구 아낌없이 주고 베풀고 섬기고 나누면 속이 시원해지고 또 복이 절로 들어오는 법이다.

나는 산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등산은 곧 나의 취미이자 삶의 부분처럼 소중하다. 처음에 산에 갈 때엔 마구 이것저것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쌀, 부식, 버너, 코펠, 양말, 책, 노트, 카메라, 속옷, 커피, 파카 등등….

그렇게 잔뜩 쑤셔 넣고 산을 오르면 그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죽을 고생이다. 등산 그 자체가 버겁고 힘겨울 수밖에. 산을 감상하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등짝에 짊어진 짐을 힘겹게 나르는 것에 불과하다.

어느 날 깨달았다. '아! 불필요한 것은 빼버리고 가장 필요하고 정말 소중한 것만 챙기자!' 그랬더니 배낭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그 뒤로 산행은 즐겁고 유쾌했다. 왜 그런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사를 해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인간이 어리석은지 말이다. 무엇을 그리 많이 사 모았을까. 불필요한 것이 많고 없어도 될 것이 참 많은데, 인간은 그것을 놓지 못한다. 그저 어디엔가 쌓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하다. 다 버려야 한다. 애초에 필요치 않은 것은 살 필요가 없다.

그렇다. 우리 삶에 짐들을 벗어야 한다. 무엇이 소중한가? 우리는 혹시 불필요한 것들을 등짝에 한 짐씩 짊어지고 사서 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왜 버리지 못하는가. 왜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살면서 그렇게 고생하는가. 우리가 어머니 모태에서 나올 적에 적신(赤身)으로 나왔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 1,21)

내 것이라고 우길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하느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 몸 붙여 살 동안 쓰시라고 주신 것이지, 어디 내 것이 있었는가?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것은 언젠가 다 내게 소용없는 것이란 것을 아는 것이 도(道)를 이루는 자의 삶이다. 그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살면 얼마나 그 인생이 자유롭고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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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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