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동네인심을 사납게 하나

2003년 늦가을, 우리 동네 인심

등록 2003.11.05 16:51수정 2003.11.0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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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 집 '갑돌이'가 짖어 댔습니다. 누군가 사랑채 옆길을 통해 대나무 숲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집 뒤 대나무 숲 쪽에서 두런두런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대나무 숲 쪽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며칠 전 나무를 사겠다고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던 외지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헌데 외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할머니 두 분과 동네 아저씨였습니다. 그동안 내가 관리해 왔던 야생 오가피나무를 캐고 있었습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오가피나무 대여섯 그루가 있었는데 그걸 애지중지 관리해 왔었습니다. 대나무에 압사 당할까봐 오가피나무 주변에 솟아 오르는 대나무며 죽순들을 뽑아 내고 가시 넝쿨들이 칭칭 감아 올리면 거둬 내곤 했었습니다.

손님들이 찾아오면 적당히 가지치기를 해서 오가피 찻물로 끓여 내오곤 했었습니다. 그런 오가피나무를 뿌리채 몽땅 캐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걸 캐가지 말라 할 권리가 없었기에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한 뿌리도 남기지 않고 죄다 캐갈 기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고만 캐세요…. 저희들 것두 남겨 두세야지유."

"이거 당신네 거 아니잖어?"

"제 것은 아니지만 그래두 제가 살구 있는 집에 딸린 것이구, 또 그걸 관리해 왔으니까, 할 말은 있잖유?"


보통 시골에서는 제 집에 제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흉가나 다름없었던 빈 농가를 2백만원에 구입해 수리해서 살고 있지만 땅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무슨 무슨 종친에서 관리하는 땅 위에 집을 짓고 따로 토지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임자 없는 감나무며 거죽나무, 대나무 등은 대체로 그 주변에 사는 사람이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법적인 권리는 전혀 없지만 묵계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몇 년 사셨어?"

"6년유."

"우리는 이 동네서 60년 넘게 살아 왔으니께, 우리가 캐가도 상관 읎어…."

"그렇다구, 할머니네나 아저씨네 것두 아니잖유…."

"그러니께, 아무나 먼저 캐가믄 임자지…."

"그럼 그걸 다 캐가시겠다는 거유?"

"우리 집에다 옮겨 심으려구 그려."

"옮겨 심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가피는요, 잎하고 줄기만 끊여 먹어도 좋다는데, 여기 그대루 놓고 같이 먹으면 되잖유."

"뿌리를 삶아 먹어야 좋다는디…."

"옮겨 심으시려는 게 아니구먼유, 그래두 한두 뿌리는 냄겨 두셔야지, 참 어지간하시네요. 아무리 땅 임자가 없는 데서 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 따로 있는디, 고걸 뿌리째 다 캐가시믄 되겠어유."

두 할머니와 동네 아저씨는 너 혼자 짖어대고 싶으면 맘대로 짖어대라 우리는 임자 없는 오가피나무나 캐갈란다는 식으로 아무 대꾸도 없이 부지런히 오가피나무만 캤습니다.

"거시기, 집 주변에 나는 것은 그 집 주인한데 권리가 있잖유? 지가 아저씨네 집 주변에 있는 감을 말도 없이 따 먹으면 좋겠시유. 감은 물론이고 감나무를 뿌리채 캐 가믄 기분이 좋겠시유?"

"그건 그렇지만…몸에 좋다길래…."

미안한지 동네 아저씨가 말끝을 흐렸습니다. 미안해 하길래 나 또한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뿌리가 뽑혀 나가는 것을 멍청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참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귀한 오가피나무를 눈앞에서 빼앗기는가 싶어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시골 인심이 뿌리째 뽑혀 나가고 있다는 참담한 기분에 맥이 쏙 빠졌습니다.

사람살이가 다 그러하듯 시골에서 살다보면 이웃 간에 시비가 끊이질 않습니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지간도 시도 때도 없이 싸우기 일쑤인데 이웃 간에 싸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싸움의 정도가 예전과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시골 출신인 내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이웃 간의 싸움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싸움이 벌어졌지만 지금은 예전과 사뭇 다릅니다.

올 봄, 우리 동네로 접어 들어오는 길목에 확장 공사를 했습니다. 지방 의원으로 출마한다는 사람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이 되자 약속을 지켰습니다. 자동차 한 대가 더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의 길이 넓혀졌습니다.

나는 애초에 환경 파괴를 이유로 들어 그 길을 넓히는 것에 절대 반대했었습니다. 그동안 사람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왕래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물고기들이 오락가락하는 보기 좋은 개울에 큼직한 시멘트 관을 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동네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찬성했습니다. 동네에 '눈 먼 돈'을 투자해 길을 넓혀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되레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마을에 터를 잡은 지 겨우 6년 된 나 같은 놈이 환경 파괴 운운하며 반대하고 나섰다가는 돌팔매질을 당하기 십상이었습니다.

내가 확장 도로를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세금 낭비도 낭비였지만 그 시멘트 관을 개울에 묻게 되면 그동안 개울을 오고 가던 민물고기들의 길이 차단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우려가 올 여름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우리 집 사랑채 옆 개울에는 늘상 민물고기(중태기)들이 올망졸망 몰려다니곤 했는데 올 여름부터는 거의 눈뜨고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돼버렸습니다. 어쩌다 서너 마리가 눈에 띌 뿐이었습니다. 장마철이면 마을 앞 큰 개울을 통해 거슬러 올라오던 민물고기들이 갑자기 들어선 시멘트 터널을 건너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민물고기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일 년 사이에 다슬기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다슬기가 줄어들자 다슬기를 먹이로 살아가는 반딧불이조차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도로가 넓어짐으로 인해 동네 인심조차 사나워졌습니다. 시멘트 도로가 넓어지기 전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 한 모통이에 조심스럽게 벼를 말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도로 전체를 점거해 버리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자동차가 오고 가는 길마저 막아 버렸습니다. 자동차가 벼를 밟고 지나갈까봐 아예 경운기로 도로 앞뒤를 차단해 버리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서로 먼저 벼를 말리겠다고 이웃 간에 싸움까지 벌였습니다. 나는 한달 내내 투덜거리며 길이 막혀 아슬아슬하니 비좁은 샛길로 돌아 다녀야 했고 동네를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은 샛길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동네 사람들 죄다 그런 건 아니지만 무엇이 이토록 우리 동네 인심을 사납게 만들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좋은 동네 만들겠다고 넓힌 시멘트 도로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좀 더 편해 보겠다고 넓힌 도로 때문에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개울을 통해 오고 갔을 민물고기들이 단 한순간에 사라져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심성조차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50미터도 채 안 되는 시멘트 도로 하나가 보이지 않게 동네 인심을 사납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나대로 동네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애초에 도로를 넓힌 것도 그랬고 또 넓힌 도로에 벼를 말린다는 이유로 자동차 길을 차단했던 것도 그랬습니다.

오늘 내가 오가피나무 때문에 화를 낸 것도 따지고 보면 동네 사람들에 대한 그런 불만들이 폭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오가피나무를 캐가는 할머니와 동네 아저씨에게 그냥 캐가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어차피 캐가게 될 것을 몸보신하시라고 그냥 좋은 말을 건네며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를 내는 순간 나 자신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심성까지도 망가뜨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 말입니다.

오가피나무를 캐갔던 두 할머니와 동네 아저씨 또한 나로 인해 기분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 편치 않은 기분은 분명 다른 사람에게 전염병처럼 옮겨졌을 것입니다.

그 전염병은 나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이미 개울에 시멘트 관이 들어서고 부터 우리 동네 인심의 한복판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네 인심이 어떠니 떠들어 대며 좋지 않은 기운들을 누군가에게 전염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3년 늦가을, 우리 동네 인심의 중심에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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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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