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용역깡패... 노동자는 '아프다'

노동인권 탄압 증언대회 열려

등록 2003.11.06 02:40수정 2003.11.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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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노동인권 탄압실태를 알리는 증언대회가 지난 5일 오후 2시 향린교회에서 열렸다. '노동기본권 탄압중단과 이라크 파병결정 철회를 위한 인권단체' 주최로 열린 이 대회는 노동자들을 분신으로 내모는 노동현실을 알리고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을 모색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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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민성

이 자리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박강우 정책국장 이외에 삼성그룹 해고자원직복직 투쟁위원회(삼성해복투) 성시애 대외협력국장, 태광 정리해고저지 투쟁위 김형옥씨 등 모두 일곱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해 현 정권의 인권탄압을 생생히 증언했다.

전국민중연대 정광훈 상임대표는 인사말에서 "반갑다는 말이 인사로 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증오심만 가중된다"며 "자본가들은 기술은 최첨단으로 만들면서 노동자는 봉건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마음에 창을 박는 심정으로 발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해고노동자들은 하루에 한끼만 먹어요"
효성해복투 정용준씨

효성해복투 정용준씨는 방금 "쌀이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2년 반동안 복직투쟁을 한 '대가'였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와도 네 가족이 먹고살기에는 부족한 돈이었지만 그나마도 없으니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친척 명의로 된 집까지 가압류가 들어오면서 친척과의 사이도 멀어졌다.

"언젠가부터 아내가 화장품 방문판매를 나갑니다. 내성적인 성격인데 오죽 힘들겠어요. 처음에는 아파트 한 동을 다 돌았는데도 벨 한번 누르지못하고 돌아왔대요. 그 이야기를 울면서 하는데 내 마음이 어땠겠어요?"

요즘은 아내가 벌어오는 60만원 정도의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해고노동자들은 하루에 밥을 한끼만 먹어요."

아침 겸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고 저녁에만 밥을 해먹는 것이다.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밥을 한끼만 먹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없어서 못먹는 겁니다."

당장 복직된다고 해도 문제다. 그에게만 개인손배 170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손배액 때문에 그는 일을 하게된다 하더라도 퇴직할 때까지 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투쟁을 그만둘 수 없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노동인권 개선을 외친 동지들 때문이다.

"동지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막중한 임무를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 송민성
박강우 정책국장의 '노무현 정부 노동인권 탄압 상황보고'를 시작으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경기도 건설노조, 태광 정리해고저지 투쟁위, 효성 해고자복직 투쟁위원회(효성해복투), 서울대공원 시설관리 노조, 삼성해복투, 화물연대 노동자가 자신들의 어려움과 부당한 현실을 차례로 고발했다.

현 정권의 노동탄압 사례는 크게 공권력 투입, 손해배상과 가압류(손배가압류), 노동자 구속, 용역깡패 동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신판연좌제'로까지 불리는 손배가압류는 모든 노조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다. 노 대통령과 노동부 장관은 "손배가압류의 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으나 공기업인 철도청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75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인천지하철은 해고자의 퇴직금을, 예금보험공사는 한술 더 떠 노조위원장의 집과 선산까지 가압류했다.

이처럼 정부가 손배가압류에 앞장서는 상황에서 사기업의 손배가압류는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2001년 사측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83일간 파업했던 태광산업·대한화섬의 노동자들은 26억 5천만원의 손해배상과 91억원의 가압류를 떠맡았다. 부당해고를 당한 삼성해복투 노동자들 역시 1억 4천만원의 손배가압류를 부과받았다. 급기야 150억원 손배가압류 협박에 시달리던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지회장은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 35m 크레인에서 몸을 던졌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손배가압류 규모는 46개 작업장 1481억여원이었으나 이틀만인 31일 50개 사업장 1496억여원으로 늘어났다. 태광 정리해고저지 투쟁위 김형옥씨는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퇴사나 노조 탈퇴 등을 조건으로 가압류를 풀어주는 반면 태광자본은 해고자들에게까지 가압류를 걸고있다"며 "이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효성해복투 정용준씨는 "현재 집단손배가 200억원, 개인별로 작게는 70억에서 많게는 170억원까지 개인손배가 걸려있다"며 "우리들끼리는 몸값이 비싸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했다. 정씨는 또한 "구속은 신체적 자유만을 구속하지만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의 정신적 자유까지 옭아맨다"며 손배가압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 정책국장은 "손배가압류 청구로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자본과 정부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구속된 노동자의 수도 급증했다. 인수위 당시 "노사분규관련 법위반자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관행을 확립하겠다"고 공언했던 노무현 정부는 지난 9월 4일 발표한 '노사관계 개혁방향'을 통해 노사간 면책합의와 관계없이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지난달 24일 현재 민주노총이 확인한 구속 노동자 수만 144명에 달한다.

요즘 들어 부쩍 증가한 용역깡패 동원 역시 큰 문제로 지적되었다. 효성해복투 정용준씨는 "당시 4~600명 선이던 조합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무려 500여명의 용역깡패들이 동원"되었으며 "그들은 식칼, 쇠파이프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5만볼트 전기봉, 사제 장총 등으로 무장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정책국장은 "심지어 합법파업에까지 용역깡패가 동원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용역깡패들이 투입되어 폭력을 휘두를 경우 노동자들이 이에 저항하면 그 순간부터 합법파업은 불법파업이 된다는 것이다. 불법파업이 되면 으레 노동자들은 구속되고 손배가압류가 들어온다. 박 정책국장은 "불법파업 만들고 노동자들의 뜻을 왜곡시키기가 이리도 쉽다"며 개탄했다.

한편 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사용자 대항권이 부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본가의 권력과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이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노동권을 우리는 한법으로 규장하고 있다. 그것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매년 국제노동기구의 시정권고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 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사용자 대항권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며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대항하는 것인가? 죽어가는 노동자들에 대항해 사용주들이 분신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이와 더불어 총평으로 "인수위 시절 공권력 투입 최소화와 손배가압류 개선을 약속했던 노무현 정부는 출범 9개월만에 약속을 완전히 저버렸다"며 "앞으로도 노동인권 탄압은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이번 발표를 바탕으로 오는 7일 노동인권 탄압실태 조사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며 구체적인 방향과 일정은 좀더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증언대회는 '노동기본권 실현을 위한 인권단체들의 요구' 낭독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일당 2만 2천원 받고 일합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김우한씨

이용석 열사 분신 이후 10일째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김우한씨는 "자기 집 앞에서 개가 짖어도 나가보는 게 인지상정인데 우리가 차가운 길바닥에서 천막치고 농성하고 있어도 이사장은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 이맘때 정규직 노조가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파업을 했을 때 정작 인간답게 살고싶었던 우리는 일만 해야 했습니다."

피복비나 교통비와 같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돈을 받지못하는 처지임에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현실이 싫어서 조합을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그 과정은 당연히 순탄치 않았다. 회유와 협박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을 가지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으니까요."

김씨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비정규직을 없애고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할 근로복지공단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동법을 노동탄압에 악용하기만 했다. 지금까지 협상을 열차례 이상 진행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너희는 태생이 다르지 않냐'는 물음뿐이었다. 얼마전에는 선심쓰듯 '병가줄께'하기도 했단다.

이용석 열사의 분신 자살을 두고 이사장은 "신나의 화력을 시험해보려다 실수로 폭발한 것"이라는 망언을 하고 한 지회장은 만취 상태로 농성장에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다.

"우리를 인간으로 보면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 회사를 경찰 수백명이 막고있고 회사 화장실조차 쓰지못하게 합니다."

병가도 없어 아프기라도 하면 연차, 월차를 쓰고 마지막에는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복지'는 없고 '근로'만 있는 것같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공단에서 일하는 일용직이 100여분이고 3개월 재계약을 하기 때문에 연차도 없습니다. 그분들은 일급 2만 2천원을 받고 일합니다. 여기가 바로 근로복지공단입니다." / 송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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