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으로 만드는가

한소리회 조진경 사무국장 '이주 여성의 현실' 강연 현장

등록 2003.11.08 02:33수정 2003.11.0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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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산업에 유입된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침해실태에 관한 강연 '이주여성의 현실'이 지난 7일 늦은 7시 서울대학교에서 열렸다.

강연자로 나선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조진경 사무국장은 "성매매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근절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성매매 금지국가인가?

a 한소리회 조진경 사무국장

한소리회 조진경 사무국장 ⓒ 송민성

조 국장의 첫 번째 물음은 "우리나라 성매매 금지국가인가?"였다. '그렇다', '아니다' 청중들의 답변이 엇갈렸다. 법적으로 우리나라는 분명한 성매매 금지국가다. 1961년에 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윤방법)은 엄격히 성매매를 규제하고 있다. 성매매를 포함한 불법원인(불법적 행위)에 의한 채무관계는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윤방법이다.

"이 법을 만들어놓고 한편에서는 '요정과' 만들어서 기생관광 부추긴 게 박정희 정권이에요."

'조국 근대화의 실현'을 기치로 '팔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팔자'고 외쳤던 박정희 정권에게 관광업, 그것도 한국 여성들을 볼거리로 '제공'하는 기생관광은 꽤 매력적인 '장사'였다. 국제관광협회의 요정과에서 접객원 증명서를 발급받은 여성들은 일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고 그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조국의 근대화'에 상당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사람들이 '기생관광은 애국'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조 국장은 "아예 국가가 포주로 나선 셈이죠.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놓아도 국민들에게 먹힐 리가 없죠.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우리나라가 성매매 금지국가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다"라고 밝혔다.

'전국의 유흥업소화'


조 국장은 외국인 여성들이 기지촌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원인을 역사적으로 설명했다.

1980년대 경제성장과 자율화가 확대되면서 성산업도 급격히 성장해 유흥업소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성매매를 원하는 구매자들도 늘어났다는 것. 그러나 성매매 수요자의 증가 속도를 공급자가 받쳐주지 못하자 그것을 채우기 위해 폭력조직과 업주들의 인신매매가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온 나라의 유흥업소화'로 발전하게 됐다고 주장하는 조 국장은 성산업의 내수시장 확대로 여성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지자 자연히 기지촌과 같은 열악한 지역에는 '늙고 못생긴 언니들'만 남게 되었다고 말했다. 결국 '젊고 예쁜 언니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 외국인 여성들이라는 것.

조 국장은 대부분의 외국인 여성들은 일본을 선호하지만 한국의 입국절차가 일본에 비해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한국을 찾는다고 말했다. 또 여권 위조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란다.

"일본에서 합법적인 예술흥행비자(E-6)를 받으려면 2년이 걸려요. 그런데 한국은 딱 2주 걸려요. 참 신기하죠? 얼굴만 봐도 한 눈에 어린애라는 걸 알 수 있는데, 걸리는 법이 없어요. 그렇게 해서 10대 외국인 여성들이 많이 들어오죠."

무엇이 그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으로 만드는가?

조 국장은 얼마전 만난 한 필리핀 여성 엘레나(가명·16)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역시 위조된 여권으로 "술따르고 춤만 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한국에 왔다는 엘레나에게 이태원의 모 클럽 지배인은 노출이 심한 속옷을 입고 춤을 출 것을 요구했단다. 손님들 역시 "돈 줄 테니 벗어봐라" "만지게 해달라"며 희롱, 이를 거부하자 지배인은 그를 강간했다고.

조 국장은 이것이 엘레나가 한국에 온 지 한달 반만에 일어난 일이었다면서 기지촌의 상황은 더욱 비참하다고 덧붙였다.

"기지촌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술을 사면 여자가 따라나옵니다. 흔히 '주스를 산다'고 표현하는데 한번 주스를 사면 15분 정도 여자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여자들은 주스를 판 값의 일부만 가지게 되고 나머지는 클럽 주인들에게 돌아가지요."

그나마 일정량의 주스를 팔지못하면 그날의 수입은 모두 클럽 주인의 몫이며 구매자가 성매매를 위해 여성들을 클럽 밖으로 데려갈 때의 비용도 극히 일부분만 이 여성들의 몫이라고 조 국장은 이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언급했다.

적은 수입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업소에 가면 옷값, 화장품값,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받는 선불금과 비행기값, 여권위조비 등은 고스란히 여성의 빚으로 남는다. 이 빚은 높은 이자로 인해 금세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성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업주들은 여권부터 빼앗아요. 그들은 빚과 폭력 등의 위협 속에서 항상 불안한 상태로 살아요. 힘들어서 자살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살인사건도 종종 일어나구요.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조 국장은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거나 혹은 섹스에 중독 되어서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 산업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이 되도록 하는가?"에 대한 조 국장의 대답은 '빈곤'이다. 그는 "윤방법만 제대로 지켰어도 성매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장기를 사고파는 것은 인신매매라고 생각하면서 왜 성을 사고파는 것은 인신매매라고 생각하지 못합니까? 가부장제, 남성주의적 군사문화 하에서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어요. 그 문화를 바꾸어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지금까지 19만여명 이상이 참여한 한소리회의 '성매매 안하기 100만인 서명운동'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나부터 시작하자는 뜻이죠. 작은 실천에서부터 한걸음씩 떼어나가자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이를 통해 성매매에 대해 한번쯤 더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행했어요."

조 국장은 이 외에도 법제적 개정운동과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사업, 국제연대 등의 다양한 방향에서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매매만큼 복잡한 것이 없는 것 같다"는 그는 어렵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 사회를 규정한다"는 말을, 그는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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