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비밀 "내 손 안에 있소이다"

[인물탐구] 이상수 열린우리당 - 김영일 한나라당 의원

등록 2003.11.09 20:00수정 2003.12.08 20:51
0
원고료로 응원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대선당시 선거자금 관리를 맡았던 두 현직의원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보기나름으로 모든 의혹은 이들의 손 안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손에 쥐고 있는 인물로 바로 대선 당시 민주당의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맡았던 이상수 열린우리당 총무위원장과 한나라당의 전 사무총장이었던 김영일 의원.

이들이 무엇을 꺼내 놓느냐에 따라 검찰 수사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각 당의 대선자금 관련 핵심 인물들에 대한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도 이들의 진술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여, 이들의 검찰조사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는 이상수 총무위원장을 지난 6일 오후 재소환해 조사했으며, 김영일 의원은 이번주 중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두 사람 모두 3선 의원, 법조계 출신 등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각각 대선자금 관리자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들이 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기까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이상수 의원] 재야인권 변호사에서 사무총장까지

a 이상수 민주당 의원이 SK비자금 관련 수사를 받기 위해 지난 10월 14일 오전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이상수 민주당 의원이 SK비자금 관련 수사를 받기 위해 지난 10월 14일 오전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46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이상수 의원은 지난 88년 재야 영입 케이스로 평민당에 입당해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재야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온건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15대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중이다.


이 의원은 고대 법대 3학년 때 3선개헌 반대 전국비상학생총회장으로 활동하다가 강제 징집됐으며, 80년대 재야운동권에서 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 그는 판사시절인 82년 '횃불회' '아람회' 사건 관련자의 영장을 기각한 뒤 법복을 벗었다.

이후 그는 85년 한국노동상담소를 개설하고, 다음해인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주임변호사를 맡았으며, 87년 최루탄에 맞아 숨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인권활동에 주력해왔다. 같은 해 국민운동본부에서 각각 민권위원장과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직선제 개헌투쟁을 이끌었다.


그러던 중 이 의원은 88년 평민당에 들어와 13대 금배지를 달게 되고,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린다. 하지만 14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당시 인기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탤런트 이순재씨에게 일격을 당해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15대 국회의원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어 16대 국회 진출에도 성공해 여당의 '원내총무'라는 중책을 맡았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자신의 정치행로에서 일대 분수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서울시장'이 꿈이라던 이상수 의원. 그는 지난 2002년 3월 원내 총무를 사퇴하고,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김민석 전 의원과 경합을 벌였다. 하지만 후보 경선에서 1만3314표(득표율 52.1%)를 얻은 김민석 전 의원에게 1076표차로 패배, 2번째 쓴잔을 마셨다.

그렇지만 지난 2002년 9월 이 의원은 민주당 선대위 총무본부장를 맡아, 당내 입지가 약한 노무현 후보를 초지일관 흔들림 없이 지지하면서 선대위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대선기간 동안 선대위의 어려운 살림을 잘 꾸려갔으며, 사상 처음 '대선자금' 공개를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그를 한편에서는 '치밀한 성격에 추진력을 겸비했다'하기도 하고, 정에 약하고 '다소 튄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일 의원] 청와대 수석에서 한나라당 사무총장까지

a 김영일 한나라당 전 사무총장이 지난 1월 17일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영일 한나라당 전 사무총장이 지난 1월 17일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영일 의원은 1942년 경남 김해 생으로 이 의원과 마찬가지로 3선 의원으로 법조계 출신이며, 기획 및 판단능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은 지난 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선대위 기획부본부장을 맡아 활약했으며, 이때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또 98년 서청원 대표가 사무총장을 할 당시 사무부총장으로 활약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사령탑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는 서울지검 3차장 검사와 청와대 민정·사정수석 등을 거쳐 정계에 들어온 검사 출신 의원이다. 14, 15, 16대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5, 6공에 이어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3대의 대통령에 걸쳐 두터운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또한 김 의원은 6공 말기에는 청와대 수석으로 재직하면서 '김영삼 대세론'을 따랐던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청와대 근무시절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신상을 줄줄이 외울 정도여서 '움직이는 인물사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6공 때 안기부에 파견돼 박철언 안기부장 특보와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핵심 요직에 중용되지 못하는 '피해'를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지난 2001년 김 의원은 안기부 총선자금 사건과 관련해 'YS 정치자금론'을 제기했다가 설화를 입기도 했다.

그 당시(2001년 1월) 김 의원은 안기부 자금 파문과 관련해 "내 짐작으로는 문제의 자금은 YS의 정치자금이었다"며 "92년 대선자금이 남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기부의 15대 총선 지원자금의 출처가 `YS 통치자금'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파문이 일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저의 발언 때문에 본의 아니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이회창 총재를 난처하게 했거나 두분 사이에 오해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결코 원치 않았던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후 김 의원은 2002년 한나라당이 8·8 재보선과 12월 대선에 대비하기 위해 대폭적인 당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대선 선대위 본부장을 겸하는 사무총장이 된다. 이에 대해 앞선 대선 때 기획부본부장을 맡아 보여준 업무 능력을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높게 평가하고 대선 실무총책으로 일찌감치 염두에 뒀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또 김 의원이 15대 대선 패배 이후 사무부총장으로,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서청원 대표와 호흡을 맞춘 전력도 플러스요인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회창 후보, 서청원 선대위원장, 김영일 총괄 본부장 '트리오'로 이어지는 단선지도체제 속에서 김 의원은 일사불란하게 당을 운영하는 등 당내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총력지원체제를 구축했다. 더구나 그는 대선에서 선거 실무사령탑인 사무총장으로서 중앙당 후원회에서 118억원의 후원금 실적을 올리는 등 공격적인 살림살이를 꾸려왔다.

또 한나라당 내에서 보수성향으로 꼽히는 김 의원은 각종 정보수집을 통한 대여공격에 적극 가담하면서 '공격수'를 자임했으며, 외부인사 영입을 위해서도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아울러 그가 지도부 라인의 유기적 협조와 분담 등의 역할을 수행해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 상승을 이끌어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 당내의 평가이기도 하다.

늘 주목받는 두 의원... '돌출발언' '이색행동' 속출

이상수 의원과 김영일 의원은 자신이 속한 당의 대표나 대통령 후보로부터 신뢰를 받고 활동해왔다.

그렇지만 이들은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돌출발언'이나 날카로운 '각을 세운 말'들을 남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이상수 의원이 지난 2001년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낼 때이다. 당시 이원형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느닷없이 '서승모 게이트'주장을 펴면서 '민주당 고위 당직자'를 핵심으로 지목했다. 이 의원은 바로 이재오 한나라당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람이 나다. 당시 담당 부장검사에게 전화한 것은 사실이나 변호인 자격으로 전화한 것이며, 검찰이 구속하려 했는데 법원에서 기각했던 일이어서 아무 일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고 자진 해명했다.

또한 이 의원은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지난 3월 7일 "대선 때 100대 기업을 다 돌았고 당 후원금 120억원을 모았다"고 말해 대선자금의 논란을 가중시켰다. 또 3일 뒤 이 의원은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사무총장으로서 검찰에 '속도조절'을 요청하는 전화를 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이후 이 의원은 지난 9월 5일 민주당 당직을 사퇴하고 통합신당(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7일 검찰로부터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첫 소환통보를 받았으며, 10월 14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이 의원은 검찰 조사에 앞서 "지난 대선 직전 SK로부터 25억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김영일 의원은 '돌출발언'보다 그 동안 참여정부의 실정에 비판을 가하는 발언을 주로 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 재산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김 의원은 무슨 이유에선지 다음과 같은 행동을 보였다.

김 의원은 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를 지역구로 하고 있어 노 대통령 주변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노 대통령이 자란 진영은 김해 내에서도 고립된 지역"이라며 "그쪽에서 일어난 일은 나도 잘 모른다"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입을 다물며 말을 아꼈다.

또 김 의원은 지난달 23일 최돈웅 의원의 SK비자금 100억원 당내유입 여부와 관련,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그러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나서 검찰이나 언론에 내가 설 역할이 있다면 그때 가서 하겠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국민 기대 부응'이냐, '메머드급 핵폭탄'이냐

이상수 의원과 김영일 의원은 대선 당시 자금관리자로, 또 당내에서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당의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 맥을 짚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이 의원과 김 의원에게 불법적인 대선자금에 대한 모든 진실을 밝혀 국내 정치풍토가 한단계 발전하는 '역사의 새물결에 동참하라'고 당부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지난 2002년 '병풍' 논란이 일자 김영일 의원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김 의원은 '세유삼망(世有三亡, 세상이 망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이란 고사성어를 인용, "분란이 있는 집단이 단결하는 집단을 공격할 때, 사악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공격할 때, 순리와 민심을 거스르는 사람이 순리를 따른 사람을 공격할 때 세상이 망한다"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은 "국민이 바라는 것은 병풍도 정치공작도 아니라, 부패를 청산하고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시점에서 김 의원이 했던 이 말은 검찰 조사를 앞둔 김 의원 자신이나 이미 두차례 조사를 받고 오는 10일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겠다는 이 의원이 기억해야 할 말이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세로 이상수 의원과 김영일 의원이 검찰 조사에 임해 진술을 할지, 아니면 이들의 발언이 '매머드급 핵폭탄'이 되어 정치권으로 되돌아올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이미 이들이 손에 쥐고 있는 대선자금의 '판도라 상자'는 열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