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가는 비상구

중학교 시절 단짝 친구를 기억하며

등록 2003.11.10 00:18수정 2003.11.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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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학교 다닐 때 교복 입기가 싫어서 기회가 날 때마다 사복에 신경 쓰던 세대였다. 그래서 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지날 때면 학창 시절이 생각나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본다. 친구들끼리 재잘거리며 뭉쳐 다니는 모습을 보니 불현듯 내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사춘기 시절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가며 달콤한 일탈을 꿈꾸었다. 늦게 들어와 혼날 때마다 친구와 있었다느니 숙제를 했다느니 말끝마다 친구를 들먹거려 "그 놈의 친구가 밥 먹여 주냐?"며 탓하는 책망도 듣곤 했다. 신의를 강조하는 벗 사이의 믿음 같은 거창한 이유보다는 그 때의 비밀스러움이나 눈물, 웃음, 아픔이나 약속을 공유한 똘똘 뭉친 의리감이 있어서이다.

학교에서, 분식 집에서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것도 부족해 헤어지고 나서도 못내 생각 키우던 시기는 중학교 때였다. 그래서인지 불같은 청춘을 지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중학교 친구들이 제일 보고싶다. 연인들처럼 사소한 일상의 자잘함도 궁금했었고 친구가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을 공유했고 짝사랑의 열병의 대상이었던 남학생에 대한 감정도 부끄럼 없이 이야기 할 수 있어서 편안했다.

부모라는 익숙한 둥지를 벗어나 알을 까고 나오려고 버둥거리던 사춘기의 시작은 매번 시행착오의 교훈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공감대라는 무기를 지니고 있었던 때라서 우정이니 미래니 논하면서 진지했었다.

감정의 변화가 소용돌이치던 때였으니 소소한 것에 목숨을 걸만큼 미워했을 때도 많았다. 서운하고 서럽게 한 적도 더러 있었을 테지만 금세 잊어 버리고 우정을 논하던 친구들이 가을이 되니 더욱 더 그립기만 하다.

키가 작은 편이어서 앞자리에 앉았던 나는 중학교 일 학년과 삼 학년때 짝꿍과 가장 친하다. 단지, 키를 맞춘 짝이었지만 지금껏 우정을 나누고 있으니 짧은 인연은 아니라고 본다. 오랫동안 변치 말자며 손가락을 걸던 순수와 알 수 없는 비장함으로 늦은 밤에 일기장을 펼치고 보고 싶다는 편지를 자주 썼다.


열정을 담은 쪽지를 무진장 쓰게 하던 장본인들은 학창 시절 모범생답게 한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한 친구는 현모양처의 단정한 모양새로 잘 살고 있다. 다른 지방에 있어 만나기도 어렵고 또 만난 적도 오래 되었지만 오랫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정겨운 것은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런지.

비가 흩뿌리고 난 뒤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을 보니 서로 앞다투어 예쁜 낙엽을 주우려고 다니던 때가 새삼 떠올랐다. 지난 날 <친구>라는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도 추억의 책가방 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리라.


관포지교의 경지에 이른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지만 오랜 끈을 붙잡고 살아가면서 힘들어질 때마다 용기를 불러 던져주는 친구가 있어 오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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