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sailor의 2집 < Silence is Easy >
'스타세일러(Starsailor)'의 데뷔 음반 < Love is Here >(2001)가 나왔을 때, 벌써 이들은 미디어가 만들어 낸 라디오헤디즘(Radioheadism)의 먹잇감이었다.
뭐랄까, '트래비스(Travis)'로 시작해 '콜드플레이(Coldplay)', '도브스(Doves)' 등으로 이어지는 '라디오헤드 대체 용품'의 희생양 말이다. 영국 밴드의 장점이다 못해 이제는 고질병(!)으로까지 여겨지는 찬란한 선율 감각과 세련된 리리시즘(lyricism). 거기에다 같은 나라 출신의 누군가(리차드 애쉬크로프트 혹은 제프 버클리)를 많이 닮은 보컬의 음색과 창법 등등은 더없이 훌륭한 자격 조건 아니었던가.
그래서, 스타세일러는 데뷔하자마자 '스타세일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대용품'이 되어 버렸다. 라디오헤드의 초기작들에서 만났던 '우울' 모드의 기타 팝/록을 잊지 못하는 언론과 청자들은 그 비슷한 감성만 들려준데도 아낌없이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잊어 버렸다. 스타세일러 본인들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이 시스템은 어김없이 작동했고, 밴드는 거기에 걸려들었다.
탈출구는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팀 버클리(Tim Buckley)의 음반 제목에서 따왔다는 밴드 이름을 상기하면 답은 간단해진다. 이들의 데뷔 음반 < Love is Here >는 비록 기존 브릿팝 씬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평이한 음반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가능성과 여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대의 포크 음악에서 취한, 따스하고 인간적인 온기였다. 동종 밴드들이 나르시시즘적인 감성의 극단만을 취하느라 미처 잡아내지 못한, 풍성하고 푸근한 온기 말이다. 데뷔 음반의 몇몇 곡에는 분명 그러한 가능성의 실마리가 존재했다. 그것을 본인들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두 번째 음반 < Silence is Easy >(2003)은 어떤가. 마치 이들은 자신들을 옥죄는 시스템 안으로 더욱 더 깊숙이 몸을 던지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첫 곡 'Music was Saved'의 해묵은 글램 록 재현과 이어지는 'Fidelity'의 강렬하지만 안이한 기타 사운드는 이들의 방향을 잘 말해 준다.
이것저것 다 건드면서 그 모두를 브릿팝이라는 영역으로 포괄하는 두서없는 음악을 '변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설적인 음반 제작자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참여해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를 수년만에 재현한 'Silence Is Easy'나 'White Dove' 같은 곡을 두고 '자신들의 장점을 잘 살렸다'고 평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안타깝게도, 어쩌면 스타세일러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었을 사운드 실험으로 이루어진 이 두 곡은 그 평이한 선율로 인해 많이 무디어져 버렸다. 음반 후반부 곡들('Bring My Love', 'Four To The Floor')만큼의 멜로디 라인만 갖추었대도 필 스펙터의 공력은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이외의 트랙들은 대개 '그럴 법한', '그랬음 직한' 음악들로 들어차 있다. 멋진 선율, 코크니 억양의 보컬, 찰랑대는 기타 같은, 우리가 영국산 밴드들에게 흔히 기대하는 것들 말이다.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들의 새 음반이 드러내는 것은 언론과 청자들이 원하는 '콜드플레이 식의 음악, 즉 라디오헤디즘의 재현'에 머무르겠다는 선언이다. 그것은 안일함 내지는 상업성과의 적당히 절충하겠다는 의도이다.
음반 후반부의 'Bring My Love'나 'Four To The Floor' 같은 곡의 멋진 마이너 선율을 듣는 순간에는 잠시 부정적인 판단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영국산 우울록 밴드의 음반에서나 항상 느꼈던 감정이 아닌가. 어쩌면 이는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에서 탄생한 팝/록 밴드의 태생적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타세일러는 데뷔작에서 살짝 드러낸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는커녕, 편안해 보이는 쉬운 길을 택했다. 이 음반에 쏟아지는 매체의 호평이 어찌 되었든, 궁극에는 드러날 것이다. 그 얄팍한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 Silence is Easy >에서 제임스 월쉬(James Walsh)는 "당신은 날 알지조차 못한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미워하는가?"하고 묻는다. 아니,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유감을 표할 뿐이다. 당신의 한계, 어쩌면 태생적인 것인지도 모를 그 한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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