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일암과 반일암, 꼭 이렇게 만들어야 하나

무분별한 개발로 '망가지는' 자연

등록 2003.11.16 03:57수정 2003.11.1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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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때론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곧은 길을 두고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손에 다 들어온 분명한 이익을 명분 때문에 놓아버려야 할 때도 있다. 이렇듯 실리에도 맞지 않고 경우에도 합당치 않지만 고민 끝에 소신 있는 결정을 내렸을 때 참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상식이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누구나 눈살을 찌푸리는 일을,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 게다가 아무 죄의식도 없이 저질러대는 사람에게 소신 있다, 배짱 있다고 말하기는 좀 곤란한 일이 아닌가 싶다.

길섶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 아무데나 박혀있는 돌멩이 하나에도 그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히 생각하던 순결한 마음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에 우선되는 것이 인간중심의 편리주의와 경제적인 이익만은 아닐 것이라는 마음은 가지고 살고 있으리라.

기암절벽, 엄청난 크기와 신묘한 자태를 뽐내는 바위들로 철마다 색다른 절경을 빚어내고 있는 곳. 전라북도 진안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운일암·반일암이다.

진안읍에서 북쪽으로 정천을 거쳐 24km를 달리면 주천면에 이르고, 운장산쪽 주자천 상류를 2km쯤 더올라가면 운일암, 반일암의 장관이 시작된다.

운일암반일암 상류쪽의 공사중인 제방
운일암반일암 상류쪽의 공사중인 제방이규홍
운장산 동북쪽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사이의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 계곡을 운일암, 반일암이라 하는데, 70여년 전만해도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었다 한다.


그래서 운일암이라했고, 깊은 계곡이라 햇빛을 하루에 반나절 밖에 볼 수없어 반일암이라 불렸다 한다.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품고 말없이 곱고 웅장한 자태를 지켜오던 운일암, 반일암이 철없는 인간들의 욕심이 빚어내는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질 않는다.


외로운 소나무의 운명은?
외로운 소나무의 운명은?이규홍
계곡 한쪽에 시멘트 콘크리트로 석축을 쌓아 찻길을 내기 시작하더니 늘어나는 방문객들을 위한답시고 여기저기 주차장이 들어서고, 이런저런 편의시설과 매점,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운일암, 반일암은 그야말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유원지가 돼가고 있다.

수만 년을 지켜온 전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깎여지고 문드러져 차마 볼 수가 없을 만큼 황폐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봄에는 우리나라에만 사는 특산종이자 멸종위기종인 감돌고기의 탁란 사실이 전북대 생물다양성연구소의 최승호 박사팀에 의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또 같은 잉어과인 돌고기도 같은 방식으로 꺽지에게 기생산란을 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새로 쌓는 제방 앞에 널려있는 자연석들은 어디에 쓰려고 남겨둔 물건인지.
새로 쌓는 제방 앞에 널려있는 자연석들은 어디에 쓰려고 남겨둔 물건인지.이규홍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금강과 만경강 상류에서만 살고 있는 희귀어종인 감돌고기의 번식 비밀이 처음으로 확인돼 학술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다는 주장이 일고 있지만 마지막 서식지인 운일암·반일암 계곡마저 국민관광지 조성 공사로 환경이 파괴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요즘에는 청소년 수련장과 물썰매장, 야영장외에 여러 가지 근린시설이 들어서기 위해 주자천 상류쪽에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운 다리가 놓이고 제방공사가 이루어지는 등 운일암, 반일암은 이어지는 중장비소음에 연일 정신이 없다.

자연스레 이루어졌던 제방은 허물어지고 보기에도 삭막한 네모난 전석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는데, 백번 양보해서 꼭 제방을 쌓아야 된다고 해도 보기 좋은 천연석으로 자연미를 좀 살려서 하면 안 되는 것인지 관계당국에 묻고 싶다.

제방 뒤쪽은 곧 개발을 앞두고 있는 부지이다.
제방 뒤쪽은 곧 개발을 앞두고 있는 부지이다.이규홍
진안군의 관계자들은 예산부족을 얘기하며 고충을 하소연하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 않으면 될 일이다.

대개 우리가 꼭 지켜내야 하고 보존해야 할 곳에는 어김없이 인간의 손길이 스며들고, 역시 어김없이 안 생겼으면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반듯반듯 네모난 돌들로 쌓여가는 제방을 보며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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