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겨울의 길목에 서성이는 곤충들을 보며

등록 2003.11.16 20:46수정 2003.11.1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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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너무 추운 것 같아 거실에 두었더니 이내 날갯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네요.

너무 추운 것 같아 거실에 두었더니 이내 날갯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네요. ⓒ 김민수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산책을 하다보니 추위로 인해 나뭇가지에 붙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잠자리가 있기에 집안 거실로 거처를 옮겨주었습니다. 죽은 듯 꼼짝도 안 하더니만 거실의 훈훈한 기온에 기운이 났는지 날갯짓을 하며 거실을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본능의 발로인가요? 저녁햇살이 비취는 쪽으로 날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순간 또다시 망설여집니다. 이 추위에 내보내면 죽을 터인데 내보내면 안 된다는 마음과 어차피 거실에 두어도 어차피 죽을 터인데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말라는 마음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a 미동도 하지 않아서 그대로 죽은 줄 알았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아서 그대로 죽은 줄 알았습니다. ⓒ 김민수

아무리 남녘 땅 제주라고 해도 겨울은 겨울입니다. 서울이야 한 겨울에도 얄미운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기도 한다지만 저희 집은 시골이라서 그런지 여름에 기승을 부리던 모기들은 한 풀 꺽였고, 추운 날씨를 못 견디겠다고 파리들이 목숨을 걸고 거실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시절에 잠자리라니 놀랄 수밖에요.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전에 찍어두었던 나비며, 무당벌레, 메뚜기들을 보면서도 철모르고 나온 것들 같아서 그들의 짧을 생을 안타까워했는데 죽은 듯이 가냘픈 나뭇가지를 꼭 붙잡고 제주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는 잠자리를 보니 '어허!'소리가 절로 납니다.

a 여러 각도에서 마음껏 찍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마음껏 찍을 수 있었습니다. ⓒ 김민수

한창 때는 그렇게 찍으려해도 찍기가 쉽지 않더니 오늘은 온 몸이 얼었으니 제가 돌아가며 찍어도 죽은 듯 합니다. 살아있는 잠자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사방으로 돌아가며 찍은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잠자리에게 아픈 시간들일지 모르지만 저에겐 행운의 시간이었죠. 바보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보곤충들도 있나 봅니다.

a 한라산 중산간도로 근처에서 만난 메뚜기입니다.

한라산 중산간도로 근처에서 만난 메뚜기입니다. ⓒ 김민수

이제서 막 깨어난 형상, 아직 날개도 자라지 않는 메뚜기를 만났습니다. 낙엽들만 그득한 숲에서 무얼 먹고 살아갈까 걱정도 되고, 좀 일찍 태어나지 왜 이렇게 추운 계절에 태어났는가 물어도 보지만 묵묵부답입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곧 혹한의 겨울이 다가올텐데 이렇게 철없이 날아다니고, 뛰어다니는 곤충들과 우리네 삶이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서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이야기가 있는데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서 얻은 소출이 풍성하니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고민을 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고민이죠. 그는 이렇게 그 고민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나 그 부자는 그날 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도로 찾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허망한 계획입니까?

a 송악꽃을 찾은 벌입니다.

송악꽃을 찾은 벌입니다. ⓒ 김민수

언제 자신의 때가 끝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언제 그들의 삶이 끝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서 또다시 숙연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언제 내 삶이 끝나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난 지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다구.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야!'

우리들은 때로는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합니다. 또는 가버린 과거에 대해서도 연연해합니다. 그러다 가장 중요한 지금, 현재를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a 토란잎에 앉은 나비도 거의 움직이질 않습니다.

토란잎에 앉은 나비도 거의 움직이질 않습니다. ⓒ 김민수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도 짧은 순간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들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엽적인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번 지엽적인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다시 평정심을 찾느라 회복시키는 시간은 몇 배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작은 토란잎 위에 앉은 나비, 지난 태풍 매미로 이파리를 전부 잃었던 토란대에 새순이 나오긴 했지만 겨울을 나진 못하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저 땅 속에 있는 뿌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을 보내고 나면 다시 새순을 내고, 무성한 이파리를 낼 것입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보이는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죠.

a 감자잎을 분주히 오가는 무당벌레-요즘 만난 것 중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감자잎을 분주히 오가는 무당벌레-요즘 만난 것 중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 김민수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제주에는 푸른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감자잎을 분주하게 오가는 무당벌레, 무당벌레가 좋아하는 것이 진딧물이라고 하니 감자잎 어딘가에 아직도 진딧물이 있는가 봅니다.

가을의 끝이라고 하기보다는 겨울의 길목이라고 해야 어울릴 계절에 간혹 보이는 곤충들은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생을 인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도 합니다.

그래요. 그들이 푸른 창공을 바라보면 날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의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연연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날 수 있으면 날고, 뛸 수 있으면 뛰고 지금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겨울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곤충들을 보면서 느끼는 삶의 소리, 그것은 오늘을 마지막처럼,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어떻게 살아야 오늘 하루를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늘 후회없이 살아가고 싶으면서도 후회하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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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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