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없는 것들이라구요?

겨울의 길목에 핀 꽃과 나비 감상하세요

등록 2003.11.17 21:30수정 2003.11.1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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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싸늘한 계절입니다. 입동이 지난 지도 일주일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일 테이지요.


이 싸늘한 계절에 핀 꽃을 보셨나요. 난방 장치 훌륭하게 갖추어진 실내가 아니라 서릿발 흔적이 채 마르지도 않은 들녘에 핀 꽃 말입니다. 강원도 영월에서 때 아닌 꽃이 피었습니다. 강원 산간 지방에 눈 내린다는 뉴스가 있으면 잔설이라도 흩뿌려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 영월입니다. 그런 추운 지방에서 꽃이 피다니요. 정말 철도 모르는 철부지 녀석들입니다.

이기원
국지산 가족 등반대회 참가차 찾은 흥월초등학교 울타리에 있는 개나리가 활짝은 아니지만 제법 많이 피었습니다. 이른 봄에 먼저 노란 꽃을 피운 다음 녹색 잎이 솟아나는 개나리입니다. 바보같은 개나리는 지금이 이른 봄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세 시간 정도 산행을 마치고 걷던 밭둑에서 이번에는 노란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양지바른 곳이긴 했지만 역시 철 모르고 피어나긴 개나리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곧 불어닥칠 추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태연한 자태로 앉아 있네요. 흘러가는 바람결에 녀석의 작은 몸피 위로 추위가 제법 묻어 있었습니다.

이기원
산행을 마치고 다시 도착한 곳은 출발지였던 흥월 초등학교였습니다. 폐교가 되어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지 꽤 되었지만 교정은 여전히 아담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등반대회 마지막으로 행운권 추첨이 사람들의 발목을 묶어 놓았습니다. 행여 내 번호가 당첨되지 않을까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로또 복권이 당첨되길 바라는 이들과 비할데가 아닙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가족이 한 장씩 들고 있는 행운권 번호와는 동떨어진 숫자만 뽑히더군요. 마냥 내 번호 뽑히길 바라면서 맥쩍게 앉아 있기도 무료해서 이리저리 서성이다 또 놀라운 녀석을 발견했습니다. 작고 예쁜 나비 한 마리였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부담스러운지 몇번을 나풀대며 주변을 서성이던 나비가 마른 풀 틈새에 앉아 쉬고 있습니다. 개나리며 민들레와 함께 철부지 대열에 합류한 바보입니다.

이기원
기온이 점점 떨어진다는 일기예보가 있더군요. 사진에 담아둔 개나리, 민들레, 나비들은 다가올 추위를 어떻게 견뎌 낼까요. 철 모르고 나대다가 닥쳐온 추위 앞에 속절없이 주저앉을까 걱정됩니다.


하지만 믿고 싶습니다. 추위에 꽃잎은 떨어질 지언정 겨우내 봄을 기다리며 또다른 꽃잎을 준비할 개나리며 민들레의 저력을 말입니다. 그 무렵이 되면 이 들녘엔 예쁜 나비의 날개짓도 시작되겠지요. 더불어 우리들의 지친 어깨에도 힘이 솟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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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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